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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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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산책]푸른 하늘과 잔잔한 강과 시원한 바람

걷기 좋은 가을날 여유 즐기기 좋은 곳 ‘밀양 삼문동 둔치공원’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서 어디서든 산책을 즐기기 딱 좋은 계절이다. 바쁘게 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말 하루만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뿐만 아니라 근심과 걱정 다 내려놓고 유유자적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천천히 한 세 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있다면 안성맞춤이겠다. 이 조건에 딱 맞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초록의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기도 하고 강물이 유유히 흐르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모여서 각종 운동을 하기도 하는, 그리고 고대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조각이 길을 따라 펼쳐져 있기도 하다. 그뿐인가 어느 코스에선 소나무 숲을 지나며 피톤치드를 양껏 들이킬 수도 있다.


부제목에 달아놓았듯이 이곳은 밀양 삼문동 둔치공원이다. 밀양의 삼문동은 밀양강이 에워싸서 흐르는 그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섬의 가장자리엔 그야말로 강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다양한 공원이 있다.


어디서 출발해도 3시간이면 제자리로 돌아오기에 주말이라면 복잡하지 않은 그라운드 골프장 양쪽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책을 즐기면 되겠다. 도심산책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던 지난 22일은 화창한 날씨에다 마침 밀양예술제 기간이어서 여러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파크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


강변 산책로에서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즐기는 시민.


이날 산책은 파크골프장에서 출발했다. 길옆 주차선이 그어진 곳에 차를 대고 파크골프장으로 걸어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파크 골프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라운드 골프와 유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파크골프는 일본에서 처음 생긴 레포츠로 골프공보다 크고 부드러운 무게 80~95그램의 플라스틱 공을 사용한다고 한다. 한동안 구경하다가 강변 산책로 쪽으로 걸어나와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했다. 방향은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잡았다.


그라운드 골프장이 있는 산책로에 설치된 ‘밀양강둔치공원 종합안내도’ 간판.


강변 습지와 밀양강과 만나는 제대천, 그리고 롯데인벤스가아파트.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기분으로 그렇게 방향을 잡았건만 대부분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방향은 물이 흐르는 방향과 같이 했다. 그게 순리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과 교차해 걸으면서도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풍광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했다.


산책길 가까이 오른쪽 화단엔 예쁜 ‘문빔(moon beam)’이 심어져 있었다. 영어 이름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달빛’쯤 되겠다. 이 꽃은 북미가 원산지로 벌티실라타 금계국, 애기달빛코스모스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통한다. 개인적으로 애기달빛코스모스란 이름이 좋다.


은은한 향기 때문일까, 시민화단으로 조성된 문빔에 나비들이 신났다.


다양한 색상읭 국화들도 산책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이 애기달빛코스모스에 나비들이 한창 신나게 놀고 있다. 따스한 햇볕, 노오란 꽃밭, 그리고 주홍부전나비 한 쌍의 ‘접무(蝶舞)’.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잘 만들어진 무용퍼포먼스를 본 듯도 하다.


그라운드 골프장의 수변 쪽에는 이런 화단뿐만 아니라 운동 시설도 갖춰져 있어 시민들이 종종 찾는다. 바로 앞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어 더 그러할 테다. 정자 쉼터에서 싸온 간식을 먹는 이들도 있다. 그야말로 편안한 휴식처인 셈이다.


조금 더 걸으면 작은 보가 나타난다.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힘센 연어라면 이 정도의 보라면 한 번에 튀어오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물고기들을 위해 보 옆에 장애인통로처럼 따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배려를 읽는다.


장미원.


곧 장미원이 나타난다. 유럽식 정원의 느낌이 드는 이 장미원에는 여러 장미들이 식재되어 있다. 지금은 한창 시절이 지나 별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도 새빨간 꽃잎을 피워 열정을 보여주는 장미들이 제법 보인다.


화이트 심포니, 가든 프린세스, 페티토, 안젤라, 슈와르쯔마돈나, 닉키, 레드플레임, 벨베데레, 마리에케, 참오브파리, 컴페션…. 몇 번을 듣고 보아도 잊어버리고야 말 것 같은 장미의 이름들. 무궁화처럼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해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장미원을 벗어난다.


남천교 아래를 지난다. 오른쪽 제방이 붙어 있어 좁은 길이 나타난다. 멀리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관광명소로도 꼽히는 영남루가 보인다. 강물에 비친 하늘이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연푸른색과 하얀색의 단순한 조화가 여느 작가의 단색화 못지않다.


밀양교 교각에 그려진 감내 게줄당기기.


다시 밀양교 아래를 지난다. 밀양교 교각에는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익숙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밀양 감내 게줄당기기다. 놀이의 모습이 게의 형상을 나타내 그렇게 이름붙여졌다. 그림을 보아하니 영남루 맞은편 밀양강 둔치에서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즐기는 풍속화라 할 수 있겠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좀 그려넣었으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밀양교 옆에선 종종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위치여서 그럴까. 마침 이날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벼룩시장 옆에는 밀양풍물굿보존회의 정기공연이 3시 공연을 앞두고 한참 준비중이었다. 다른 일정만 아니었으면 기다렸다가 함께 즐겼으면 싶었는데, 목적이 산책이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영남루 앞으로 오리배 한 척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맞은편 가까이 영남루가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이라는 평이 그냥 나온 게 아니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영남루를 배경으로 오리배 한 척이 지나간다. 아빠와 아들이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우리도 저거 좀 타보자.”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거절했는지 후회가 된다. 다음엔 무조건 들어주기로 마음먹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밀양강 둔치는 잔디가 잘 조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서인지 관리가 제대로 되는 것 같다. 야외공연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농구장 시설이 나온다. 맞은 편에 기차교량이 가로로 길게 줄을 그은 듯 누워있다.


삼문동 송림.


이 지점의 오른 쪽 제방 너머에는 밀양청소년수련관이 있고 문화체육회관, 삼문동공설운동장이 있다. 역시 문화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앞에 소나무숲이 보인다.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해 겨울 ‘도심산책’ (news.gyeongnam.go.kr/?p=92510)에서 다뤘던 곳이다.


기억과 당시의 기분을 재생해보는 경험은 재미있다. 어렸을 적 살던 집을 찾아가 보는 것만큼이나. 다시 송림 안으로 들어선다. 작년과 달리 가을이어서 그런지, 따스한 햇볕이 솔잎에 자극을 주어 피톤치드가 막 뿜어져 나와 그런지 더욱 상쾌한 기분이 든다.


삼문동 송림 밖 강변에 마련된 벤치에 연인들이 풍광을 즐기고 있다.


밀양예술제 기간이어서 이 삼문동송림 강변 쪽 길에는 밀양문인협회 회원들의 시화들이 걸려 있었다. 약간 발품을 더 팔더라도 이곳 송림은 한 바퀴 돌아보는 곳도 좋다. 숲 가운데 마련된 쉼터에 앉아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여유다. 숲에서 강변으로 빠져나오자 강변 벤치에는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이라고 짐작하며 또 괜히 혼자 온 것을 후회한다.


송림을 벗어나 산책로는 오른쪽으로 급격히 휘어진다. 4단으로 만들어진 보가 나타난다. 수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보의 중간에는 물이 별로 없다. 이곳은 밀양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지점인데 대부분의 물은 영남루 쪽으로 흐른다. 여기 이 보는 여름이면 물놀이장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딱! !”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더니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을 한창 즐기고 있다. 아직 한 번도 해보진 않았지만 한참을 구경하고 있으니 재미가 있다. 당구를 치는 듯한 그런 느낌도 있다. 언젠가 게이트볼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니 세월의 무상함에 또 새삼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재금 시인의 시비도 있는 이곳을 벗어나면 마치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조각공원이 나타난다. 산책로를 따라 나란히 거의 800미터 거리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 암각화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암각화가 새겨진 조각공원.


암각화 조각은, 중국의 것은 대개 내이멍구 지역에 있는 암각화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으며 국내의 것은 울산 울주의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울주 지역의 다양한 암각화와 함안, 경주, 영천, 남원 등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된 암각화들이 소개되고 있다.


사람의 형태를 제대로 표현한 암각화도 있고 별자리를 표현한 듯한 것과, 가축의 모습을 나타낸 것, 무당이 사용했을 법한 의복이나 도구, 남녀의 성을 상징하는 모습까지 다양한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데, 지역적으로 그림체가 조금씩 특징을 달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늘과 밀양강, 그리고 교각이 어우러진 풍경.


용두교.


용두교 아래에는 어르신 대여섯 명이 자리를 펴놓고 둘러앉아 ‘그림맞추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 어르신들의 머리 위로 다리 아래 교각에는 ‘영남루 아래에서 배를 띄우다’란 시가 적혀 있다. 조의제문으로 유명한 사림파 거목 김종직의 시다.


암각화 조각품과 산책로가 멋진 그림을 이룬다.


“난간 밖의 맑은 강 만이랑의 구름 아래/그림배가 횡단하니 주름살 무늬 생기누나/저물녘에 반쯤 취해 상앗대를 버티고 보니/양쪽 언덕 푸른 산이 쉽분 더 분명하구려”


조각공원이 끝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길은 휘어진다. 휘어지는 꼭지점 너머에 나무들이 무성히 자란 작은 섬이 있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 섬이다. 삼문동 용두교 아래로 흘러온 물과 영남루로 둘러서 흘러온 물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이 다시 합쳐지는 것을 반기는 듯한 느낌이다. 물이 이렇게 서로 만나면 태극의 조류가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밀주교 아래를 지난다.


벤치와 낙엽이 완연한 가을 풍광을 보여준다.


출발점에 거의 다 왔다. 유채·코스모스 단지를 지나면 풋살경기장과 족구경기장, 그리고 다시 파크 골프장이 나온다. 유유자적하며 걸은 3시간. 종종 한눈을 팔기도 하고 또는 온갖 상상에 넋을 잃기도 하며 보낸 시간이다. 그저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릿속에 그려진 한폭의 그림만 남았다.


푸른 하늘과 잔잔한 강과 시원한 바람. 진경산수화가 별거더냐.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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