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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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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해설)

이평이 살았던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와 충효테마파크를 찾아서



효자 이평에 얽힌 전설은 실제와 가상이 적절히 섞여 있는데, 이것은 마을 아이들에게 효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803년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에서 태어난 이평은 크게 벼슬을 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각각 3년과 27개월 시묘살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전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평을 나라에 효자로 추천했다는 일종의 연판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효자로 ‘지정’ 받지는 못했고 시묘살이를 하면서 가산이 많이 기울었고 후손들이 힘들게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효자 이평과 유사한 전설은 전국에 산재해 있습니다. 하나의 유형으로 굳어진 전설입니다. 효자와 호랑이가 친구가 된다거나 형제가 된다는 설정이지요. 사람과 호랑이가 이런 관계를 맺게 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효심이 지극해서 호랑이가 감동받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호랑이가 어리석어서 사람의 꾀에 넘어간 경우입니다.





고성군은 이평의 효경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가면 유흥리 뒷산 일대에 충효테마파크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 소개된 이평 전설을 읽어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뛰어난 효자 한 분이 이곳 삼계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성은경주 이씨며 이름은 평이라 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이평은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마을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뒤 봉화산 기슭에 장례를 지내고 묘 앞에 막을 지어 정성을 다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 효자는 단순한 시묘살이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인근의 산골짜기에서 1개씩 돌을 져다 모아 묘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 효자의 효행담이 인근 마을에 전해지자 이 마을에서 십여 리 떨어진 고성읍 무량리 큰 서당 글꾼들이 이 효자의 소문을 듣고 하루 저녁에는 효자의 행실을 확인하고자 묘막에 와보니 막은 텅 비어 있고 효자는 간 곳이 없는지라 “소문만 널리 난 엉터리 효자다!”면서 막에 불을 지르고 가버렸다.


그때 효자는 마을 가까이 있는 선친의 묘를 둘러보던 중이라 묘막에 불이 난 것을 뒤늦게 알고 급히 뛰어가 보니 이미 다 타버린 뒤였다. 효자는 이를 자신의 정성이 부족함이라 여기고 그때부터 막도 없이 모친의 봉분 옆 맨땅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묘살이를 계속하였다.


이러한 효자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음인지 어느 날 밤부터 돌을 져다 나르는 효자 뒤에 한마리의 호랑이가 늘 같이 따라다녔고 끝내는 호랑이와 친하여져 효자와 같이 시묘도 하고 묘성도 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날 밤, 막에 불을 지르고 갔던 서당 글꾼들이 다시 찾아와 보니 봉분 옆 한 평 남짓한 시묘 터에는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았으며 그 주위에는 사람 발자국과 나란히 호랑이 발자국이 있어 과연 소문대로 호랑이와 같이 시묘살이하는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감탄하며 태워버린 묘막을 다시 지어주었다. 그러나 이 효자는 끝내 그 묘막에 거처하지 않고 삼 년을 맨땅에서 시묘를 했다.


시묘를 끝내고 호랑이를 돌려보낸 어느 날, 비몽사몽간 효자의 꿈에 통영 원문재의 함정에 빠져있는 호랑이가 보이면서 구원을 요청했다. 효자가 즉시 원문재로 달려가 보니 이미 날은 밝기 시작하는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고 몽둥이와 창을 가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둘러싼 함정 속에는 같이 있던 호랑이가 빠져 있었다.


효자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호랑이는 나와 같이 사는 내 호랑이요, 이 호랑이는 예사 호랑이가 아니니 해쳐서는 아니됩니다. 여러분의 요구가 무엇이든 다 들을 테니 호랑이를 살려 내게 돌려주시오.” 하면서 사정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니, 어디 이런 정신나간 사람이 있어?” 하면서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그렇다면, 내 호랑이임을 증명해 보이겠소” 하며 함정으로 뛰어 내려가 “아이구, 니가 어찌하여 이런 곳에 빠졌느냐”며 머리를 쓰다듬으니 정든 개가 주인을 반기듯 효자를 따르니 이를 지켜 본 주민들은 크게 감복하여 그 연유를 묻고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그 후에도 이 효자의 시묘정신은 더욱 극진해지고 효행담은 널리 알려졌으며 삼 년간의 시묘살이 중 호랑이와 같이 쌓아 올린 효성은 지금도 봉화산 기슭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때의 시묘터에는 1평 가량 잔디가 나지 않고 있다.


이 효자가 세상을 떠나자 유림 100사람이 뜻을 모아 효행비를 건립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나라에서도 효자라는 시호를 내려 그 자손이 소장하고 있다.”


테마파크에 소개된 이평 전설은 마을주민들이 세웠다는 불망비에 적힌 내용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재미나게 읽도록 각색을 했겠지요.





이평 전설과 흡사한 전설에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전하는 호랑이 보은담이 있습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옛날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묘살이를 하는데 첫날 밤 호랑이가 나타나 묘를 한 바퀴 돌고선 상주를 지켜주었습니다. 상주는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가 무서웠으나 옆에서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든든하였다고 해요. 호랑이는 밤이면 오고 아침이 되면 갔습니다. 3년 시묘살이가 다 끝날 무렵 상주가 꿈을 꾸는데, 그 호랑이가 나타나 자기가 지금 해남 무슨 동네에서 덫에 걸려 있으니 니가 오면 살고 안 오면 자신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상주는 상복을 입은 채로 배를 빌려 타고 호랑이가 일러준 곳으로 가니 꿈에서 본 대로 호랑이는 덫에 걸려 있고 포수들이 총을 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상주는 허둥지둥 달려가 포수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하고는 이 호랑이는 자기 호랑이라고 하였습니다. 포수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히 상주를 보다가 호랑이를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면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주가 호랑이를 쓰다듬자 호랑이는 눈물을 흘리며 상주의 손을 핥았다는 겁니다.


이 전설은 1979년 진도에서 당시 81세 이덕순 씨의 이야기를 듣고 채록한 것입니다.(디지털진도문화대전)





충효테마파크는 삼계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입구까지는 승용차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차량 8대 정도 댈 수 있는 주차장도 있고요. 테마파크 산책로 입구에는 세 개의 안내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성군 관광안내도이고 나머지 두 개는 테마파크 안내도와 테마파크를 조성하게 된 목적과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문입니다.





테마파크 안내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올라가는 곳곳에 충과 효에 관한 안내판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처음으로 만나는 안내판이 한자 ‘효()’ 자의 의미를 설명한 것입니다.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태운 모습이 ‘孝’자 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충()’ 자 인데,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런 안내판을 따라 올라가면, 효란 무엇일까요, 시대별 효사상, 효도 10, 웃어른께 인사하기, 부모님께 효도하기 등의 안내판을 만납니다. 그런데 찾아간 날이 비가 온 다음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먼지 앉았던 곳에 빗물이 떨어지고 또 먼지가 쌓이면서 보기 흉하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평의 모친 묘소까지 이어진 테마파크 산책로는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 형성된 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놓은 그대로의 길. 그 때문인지 친근함까지 더해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약간 힘들다고 느끼는 딱 그 정도까지입니다. 묘소를 50미터 정도 남겨둔 위치부터는 가파른 경사가 버티고 있습니다. 통나무를 계단처럼 덧대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놓아 그나마 조금 편하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평 모친의 묘소는 지난 비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앞부분이 약간 무너져내렸습니다. 주변 석축은 크게 둘러 있었고 묘 아래쪽에도 평지작업을 위해서인지 석축을 쌓아 묘터의 경사를 줄인 다음 묘를 조성하였습니다. 모친의 무덤 옆에는 1평 정도의 크기로 잡풀이 별로 없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연유는 모르겠으나 신기하다기보다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을 가운데 두고 묘소 건너 쪽에는 묘소만큼의 터에 움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변으로 안내판이 있는데 여기엔 이평에 얽힌 전설이 소개되어 있지요. 이곳에서 몸을 산 아래쪽으로 돌리면 탁 트인 유흥리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가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평은 마을까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곳에서, 말하자면 출퇴근해도 될 텐데 고집스레 움막에서 시묘살이했다는 게 참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었겠다 싶습니다.





충효테마파크를 구경하고 내려와서 실제 이평 선생이 살았다는 삼계마을을 둘러볼 참으로 갔습니다. 지금까지 안내를 맡아주었던 최옥선 고성문화관광해설사가 친절하게도 마을과 이평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최관호 녹색농촌체험마을 대표를 수소문해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마을에 이평의 무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의 묘소가 멀지 않는 곳에 있다는 뜻밖의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안내를 부탁해 함께 가보았습니다.





효자 시호를 받았어도 자손이 넉넉히 살지 못하면 묘소에까지 신경을 쓸 수 없는 게 세상사인 것 같습니다.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이평 선생의 묘소엔 비석 하나 서 있지 않았습니다.





삼계마을은 녹색체험마을이기도 하지만 충효를 강조하는 체험마을로도 지향하고 있는 듯합니다. 마을 입구에 아주 작긴 하지만 충효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장소이지 싶네요.





취재를 다녀 온 후 이튿날 당일 인터뷰했던 삼계마을 최관호 대표로부터 이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이평 선생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이 하나 생각나서 알려드립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 봉양을 위하여 나무를 지게에 한 짐 지고 고성 장에 가서 나무를 팔고 생선을 한 꾸러미 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어요. 고성 장바닥 소전머리에 늙은이 둘이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옆에 초라하게 생긴 한 초동이 바둑 두는 구경을 하고 있는데, 바둑을 두던 한 노인이 구경하던 초동을 보아하니 곡 죽을 운명이라. 그 초동을 보고 얘야, 어 지금 방금 대가면으로 가는 이 길을 빨리 가노라면 지게에 생선을 한 꾸러미 지고 가는 초동이 있을 테니 그를 얼른 따르라고 하였어요.


초라한 그 초동은 그 생선을 지고 가는 초동을 급히 따랐는데 삼계마을에 다다랐을 즈음에 난데없는 벼락이 그들 앞에 쳐서 떨어졌는데, 생선을 지고 가는 초동과 뒤를 따른 초동은 벼락을 모면할 수 있었어요. 생선을 지게에 지고 가는 사람이 바로 이평 선생이었어요.


이처럼 효성이 지극하였기에 벼락도 이평 효자를 피해갔다는 전설입니다.”


[관련기사]


(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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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텔링)효자 이평과 무량산 호랑이(마지막편)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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