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수필]함박꽃, 화무십일홍 다음에는...
5월 봄기운이 한창 쏟아지자 화단에 있는 작약이 그만 함박웃음을 터뜨렸습니다.
4년 전 곁에 있던 모란이 누군가에 의해 뿌리 밑동까지 잘려나간 채 사라진 후 빈자리가 아쉬웠는데 올해는 화단 가득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집 작약은 빨강과 분홍, 두 가지 색으로 촌집 마당을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간혹 벌도 찾아오긴 합니다만 파리가 더 좋아하는 거 보니 괜히 샘이 나기도 합니다.
얼마 전 비가 왔을 때 고개 숙인 작약이 걱정되었습니다. 너무 큰 얼굴이 땅바닥까지 축 처져 있었는데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할까 봐서요.
기우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해님이 방긋하자 따라서 작약도 함박웃음을 내비쳤습니다.
요즘 아침이면 표정을 펴고 저녁이면 눈을 감는 함박꽃을 봅니다.
자연의 섭리란 늘 반복되는 듯해도 그때마다 새롭다는 듯 깨우치게 됩니다.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너무 재미없겠지요.
가만히 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 기분에 따라 꽃도 다른 표정을 짓는 것 같습니다. 내가 즐거우면 함박꽃도 신나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고 내가 침울하면 함박꽃도 겉으론 웃는 표정이지만 왠지 그 활짝 핀 표정 속에 우울함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또는 즐거울 때에도 나는 함박꽃 앞에 자주 앉아 쳐다봅니다. 빨간꽃은 빨간꽃 대로, 분홍꽃은 분홍꽃 대로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삼자대면인가요?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랬지요. 지난번 비가 오고 난 다음 하나 둘 꽃잎을 떨어내기 시작합니다. 한 보름 정도 힘껏 웃음을 터뜨리며 청춘을 불살라버리는 것 같습니다. 작약이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면 열매가 익어갑니다. 하루에도 표가 날만큼 알맹이가 커집니다. 이런 때 정말 비가 오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습니다.
이 열매가 다 익어 밤의 아람처럼 속을 벌려 알갱이들을 땅에 떨어뜨릴 땐 어느새 여름이 훌쩍 지나고 있음을 느끼겠죠. 세월은 또 그렇게 한 바퀴 돌며 우리를 나이 들게 합니다.
중년의 가장에겐 그 나이테만큼 주름살이 늘어감을 알기에 그저 세월이 야속하다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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