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처음으로 단둘이 영화관엘 가다
오늘의 시간은 그야말로 푸른 목장에서 뛰어노는 양떼들처럼 아무렇게나 방목되었다.
아침은 아이들이 먹고 싶은 때에 차려서 먹었다.
아이들에겐 모처럼 내일도 쉬는 날이라 부담없이 늦잠도 자고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딸은 연극하러 학교에 가고,
아들과 나는 목욕하고서 영화관엘 갔다.
'월드 인베이전?" 뭔 말인지 몰라도 시작부터 마칠때까지 총소리 폭탄터지는 소리 그것 말고는 귀에 들어온 소리가 없을 정도였다. 정신도 하나 없이 쏙 빼놓은 영화라 다른 걸 볼 걸 후회하고 있는데 아들이 말한다.
"아빠, 아빠는 이 영화가 어떻다고 봐요?" 하잇, 자슥이.... 아빠가 물어볼 말을 지가 먼저... 그러고 머뭇하는데...
"딱 내 타입이예요. 난 전쟁영화가 좋아요."
"아빤 전쟁영화 싫다."
"예? 재밋잖아요.... 그럼 무슨 영화 좋아해요?"
"전쟁영화 빼고 다~"
미국에서 만든 대부분의 전쟁영화처럼 이것도 '영웅주의과 미국 애국주의'가 빚어낸 작품이다. '자랑스런 미 해병'이 주인공이다.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농락하는 외게인들을 단 몇명의 미 해병이 '눈부신 활약'을 펼쳐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그 동네 작품이다. 대신 다른 작품들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측면에선 덜 노골적이긴 하다.
어린 아들의 눈에야 신나게 총질하고 외계인들이 죽어나가고 위급한 상황에서 민간인도 총을 들고 외계인을 향해 쏘는 모습이 용감해보였을 수 있다. 아들에겐 아직도 전쟁이란 이주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일 게다. 사람이 죽고 외계인이 쓰러지는 것은 정말, 단지 게임일 뿐이다.
아들은 진짜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에이,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죠..." 자기도 알 것은 다 안단다. 그래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너무 전쟁 영화나 게임을 좋아하다 사람 생명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게 되진 않을까...
"아빠, 아빠랑 저랑 영화 처음 봤죠?"
"다른 영화 본 게 없었나?... '타잔'도 보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보고 많이 봤네."
"아니, 아빠랑 단 둘이 이렇게...."
"그런가? 그런 거 같네. 아빠랑 자주 영화 보고싶어?"
"아빤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난 괜찮아요."
며칠째 아빠로부터 야단을 맞아서 그런지 오늘밤의 아빠랑 '나이트'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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