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86)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67)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03-29 13:29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니 새벽 세시 반, 이제 말랐나보다.

아이들 혼자 두기 뭐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빈소엔 어머니와 아내가 지키고 있다.

아내는 한국에 와서 근 6년 만에 처음 상을 당한다.

아내의 눈도 퉁퉁 부었다. 좀 전에 전화가 왔는데 아직 안 자나 보다. 아침부터는 매우 고될 것인데...

서인이는 막내가 자다 깨어 울까봐 옆에서 자다가 아빠가 들어오니 제 방으로 말 없이 건너간다.

중3, 이제 알 것 아는 나이여서 그런지 내가 들어올 때까지 제대로 잠 못자고 울었나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승환이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모양이다. "할머니가 숨을 안 쉰대"했는데,

"무슨 말이예요? 무슨 말이예요?"하고 자꾸 반문하더니 할머니 빈소에 모시고 새벽에 돌아와보니 잘도 자고 있다.

막내는 벌써부터 잤는데 아직 한 번도 안 깬 모양이다. 엄마 아빠 없을 때 안 일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할머니는 올해 아흔 하나다. 기미년 다음해인 경신년에 태어나셨으니 만으로 치면 올해로 꼭 아흔이다.

어찌보면 호상이다. 물론 고혈압 때문에 수십년을 약을 놓진 않았지만 특별히 고통스런 지병이 없이 한평생 사셨으니.

요즘 평균 나이로 보면 기록될 만큼의 장수는 아니지만 증손주를 다섯이나 봤고, 평생을 남의 집 전세로 전전하다 말년엔 비록 촌이긴 하지만 손자이름으로 된 우리집도 구했고, 그토록 소원이었던 우리집에서 돌아가셨으니 불행한 삶은 아니었겠다.

 

할머니는 큰 손자인 나와 창원 소답동에서 둘이 살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손자 뒷바라지 하느라 가장 많은 고생을 했던 시기였는데.... 직장 다녀오면 손자 피곤할 거라면서 발도 씻어주고.... 직장생활 힘 없으면 안 된다고 가물치도 소답장에서 사다가 고아주시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할머니 침대에서 누워 생활하신지 벌써 5개월은 넘었는데... 가까이서 살갑게 대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예.

할머니 속병 없어서 한 일년 더 사실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저승사자 따라 나서면 어짭니꺼.

북면 가서 뵐 때마다 "나는 안 갈란다. 나는 안 갈란다"하시더니 와, 말도 없이 가시는 겁니꺼.

........

할매, 하늘에 가시걸랑 꼭 할아버니 만나서 행복하게 사시이소. 전쟁토에 헤어져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 구월구일마다 제사로 만나지만 이제부턴 절대로 헤어지지 말고 꼭 붙어서 사이소. 할매, 사랑해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