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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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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2월 12일 금요일 신문

 

신문은 이른 아침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부터 나와의 대화를 위해 현관문 밖에서 기다린다.

아파트 계단. 벌써 여러 사람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갔지만 정작 자신이 만나야 할 독자는 날이 희끄무레 밝아와도 내다보지 않는다.

 나는 여섯 시가 되어서야 알람소리에 묵중한 기계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가는 궤도를 잠시 벗어나 현관문 쪽으로 탈선한다. 문을 열면 신문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나는 심더렁한 표정으로 무심히 집고는 다시 문을 닫는다. 화장실로 향하는 궤도에 다시 몸을 올린다.

 신문은 오늘 아침 제일 먼저 설을 맞아 아주 어린 아이들이 경로당 할머니를 찾아가 세배를 올리는 모습을 요란스레 알려준다.

 그렇지 낼모레면 설이구나. 그런데 나는 설이 반갑지 않다. 지출해야 할 돈은 많은데 그것을 감당할 처지가 못 돼서다. 할머니도 누워계시고 어머니마저 며칠 전 게단에서 비끗하는 바람에 밀걸레를 짚고 다니는 형편이 되다보니 온 가족이 모여도 즐거움보다 걱정이 집안분위기를 장악할 듯 싶다.

 '아, 미안!' 신문은 내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눈치챘는지 <책은 희망이다>를 보라고 한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제목에 내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내용 끝까지 주저리 주저리 읽어준다.

 산림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 소개할 만한 제목의 책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탁월한 선택에 따르지 못하는 문장력은 조금 아쉬움을 남게했다. 그러나 글의 핵심은 잘 읽어냈다. 나같은 독자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글이다. 잘난 것 없고 특출난 실력이 없어도 조직 내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사람이 결국 그 조직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람임을.

 그런데 무엇 하나라도 톡톡 튀어야 살아남는다는 요즘 세태를 보면 잘 합치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제목에 미소를 보이던 내가 끝까지 읽은 후에는 오히려 우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신문은 사설에 반가운 내용이 실렸다며 소개한다.

 '드디어 3.15의거 국가기념일 되나'. 그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터라 기운차게 써내려간 글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민주성지라는 마산에서 일어난 정치풍토와 시민들의 의식을 떠올리며 기대반 우려반 가슴 속에서 저울질하고 있다. 기껏 국가기념일이 되었는데 시민들은 또 마산 출신 정치인들이 그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을 관성대로 해댄다면...

 사설을 보고도 유쾌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자 신문은 뒤에서부터 제목만 떠벌리며 지면을 홱홱넘긴다. '아 따분해!' 내가 따분해하자 그럼 TV프로라도 보라며 양면 널찍이 펼쳐진 표를 드러내고 씨익 쪼갠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어떤 방송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지 한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늘 이 프로는 꼭 봐야지 함녀서도 시간을 놓쳐 지나쳐버리기가 일쑤다. 아마도 습관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고싶은 프로도 하나 없다. 곤궁한 생활에 마음마저 여유를 잃어버린 탓일 게다.

 신문을 덮었다.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야할 때가 온 것이다. 머릿속에서 무너가 아쉬움이 휙하고 지나간다.

 '이번엔 왜 설 특집기사가 안 보이지?'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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