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89)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0)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04-19 00:0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예전 직장 동료와 거짓말 논쟁을 벌이면서 아무리 '하얀 거짓말'이라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하얀 거짓말이라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는 거짓말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거짓이 다른 거짓을 낳고 또 다른 거짓으로 이어지면서 결국엔 의도와는 달리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동료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거짓이라도 희망을 준다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나는 단호하게 사실대로 말하고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반론했다. 그러면서 검은 거짓이든 하얀 거짓이든 무조건 거짓말은 안 된다고 했다.

세월이 조금, 그러니까 채 5년도 안 된 시점에 와서 나의 그 완강했던 신념이 송두리째 뽑혀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또 그 거짓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사주를 했는데 난 이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날 외국인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받았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저녁 때 아내로부터 그 여성의 사정을 전해들은 나는 당분간 집에 피신해 있으라고 했다. 그 여성의 사정을 소상히 적을 순 없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밤에 그 여성의 시댁 가족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떤 외국인 여성이 집에 오지 않았느냐는 내용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시댁 가족이 우리집에 전화를 한 것은 아내가 몇 번 통역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11시를 넘긴 밤이라 깜짝 놀란 나는 긴장된 순간이지만 태연한 척 자다 깬 듯한 목소리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내 아내를 찾았지만 아내는 지금 잔다며 다음날 전화하라하고 끊었다.

그 외국인 여성은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다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반갑지않은 손님으로 낙오되는 것이 싫었고 결혼에 실패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겁이 났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술만 먹지 않으면 사람이 좋다고 한다. 다른 시댁 식구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한 며칠 지나고 나니 이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단체를 통했다. 단체에서 며칠 보호하고 있었던 걸로 하면 남편이 안심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단체에 부탁을 하는데서 나의 거짓말에 대한 신념이 또 무너졌다. "전화 왔을 때 우리집에 없다"고 했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대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며 핸드폰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은근히 화가 솟구치기도 했다.

내 사정이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도 거짓말하는 것을 벌레 만지는 것보다 더 싫어하지만 나의 솔직함에 대한 대가로 그 여성이 다시 난처한 상황에 빠지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단체에서 내 부탁을 얼마나 심사숙고했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그 여성의 남편은 아내를 다시 만나면서 그 단체의 사람이 설명한 대로 믿는 눈치였으나 나중에 의심하더라는 이야기를 내게 했다. 

그런데 그 여성의 남편이 우리 식구와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다. 내 아내는 단지 통역만 하는 사람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처지였는데 어찌 이런 제의를 받게되는지 한참 고민이 되었다. 그 여성이 남편에게 말했을리는 만무하다. 한국말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함께 있으며 과정을 거쳐왔는데 그럴 수는 없는데... 그 단체가 털어놓았을 가능성이 더 농후했다. 어쩌랴.

한달이 지나면서 그 부부와 벌써 서너번 만남을 가졌다. 식사도 함께 하고 노래방에 가서 함께 즐기기도 했다. 아주 친한 이웃처럼 되었지만 아직은 그날의 사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거짓말한 것이 탄로날 것이고 나의 명예는 손상을 입겠지. 그러나 어쨌든 그 때의 거짓말로 인해 그 외국인 여성은 다시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이로 인해 나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거짓말에 대한 결벽증이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꼭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해다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융통성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어마만큼의 세월동안 얼마만큼 크게 자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이 하얀 거짓 융통성이 어떤 계기로 검은 옷을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새항 아므라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