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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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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게차로 첫날 나무 팔레트를 다 부숴먹었다. 헐.

근 20년 기자생활을 청산한지 10개월여 만에 전혀 성격이 다른 직업을 택했는데 직책이 기사다. 글자만 보면 기자나 기사나 별 차이가 없는데 하는 일은 천양지차다.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인 반면 새로 택한 기사직은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지게차 기사다. 포크를 들어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화물을 옮기는 일을 한다. 중장비 기계를 이용해서. 흠, 지게차 운전 실력이 고도화되면 포크 끝에 펜을 달아 글을 쓸 수 있으려나... ^^

 

지게차 공부를 시작해서 취업하기까지 3개월 조금 넘게 걸렸다. 공부는 쉬워도 취업은 쉬운 게 아니었다. 지게차 시험을 칠 때 이론은 한 달 공부해서도 92점을 받을 정도로 쉽게 합격했고 실기 또한 학원에서 배운 대로 실수하지 않고 쳤더니 82점으로 통과해 자격증과 면허증을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취업은 쉽지 않았다.

 

불경기라 그런지 일자리도 별로 없는 데다 기업체들의 여름 휴가가 끼어서인지 핸드폰 역시 조용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아내마저 일터에 나가길 그만 두어 벌이 없이 한 달을 지내려니 보통 갑갑한 게 아니었다. 고용센터나 학원에서 소개해주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생활정보지를 보고 한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오라기에 이력서를 작성해 갔더니...

 

그 회사는 경력자를 뽑는다고. 진작 말을 했으면 안 갔지. 웃기는 게 이력서를 한참 보더니 사무직에만 있었던 것을 꼬투리로 잡았다. 대학 졸업하고 신문사에서만 근 20년을 보냈으니 험한 일을 하겠느냔다. 할 수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 그 면접관은 내가 신문사 부장 출신이란 게 걸렸던 모양이다. 어쨌든 검토해보고 연락을 줄테니 돌아가라기에 집에 와서 기다려봤지만 역시나였다.

 

직장을 여러 곳 옮겨본 적이 없긴 하지만 대학도 그랬고 첫 직장인 신문사에서도 그랬듯 지원을 하고 탈락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벌써 퇴물이 되었나 생각하니 서글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업체에선 나의 지난 경력으로 능력이 판가름나고 있었다. 물론 새로 배운 기술이니 서툴기 짝이 없다. 이런 초보를 써먹을 기업은 흔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나이 든 초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모양이다.

 

반쯤 포기하고 생활하기를 또 며칠이 지났다. 함께 공부한 사람들의 취업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어디어디 일자리가 있는데 확인해보라는 전화도 온다. 전화를 하면 번번이 내몫이 아니다. 그러다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칠서 공단에 있는 지게차 회사에서 두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함께 공부했던 사람과 같이 면접을 보러 갔다.

 

지게차 회사 사장이 직접 면접을 했는데 같이 갔던 사람은 시간대가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게 지난 금요일의 일이다. 사장은 바로 채용하긴 그렇고 테스트를 해야하니 다음날인 토요일 다시 오란다. 아쉬웠다. 함께 면접을 본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면 좋을 텐데. 돌아오는 길, 나에게 테스트 잘 보란다.

 

토요일 10시까지 갔다. 사장이 공터까지 지게차로 날 태워서 데려가더니 나무 팔레트를 지게차 포크로 뒤집어보란다. 시범을 보이는데 별로 어려워보이진 않았다. 알겠노라고. 사장은 내가 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사무실로 돌아간다. 엥. 안 보나... 보든 안 보든 열심히 뒤집었다. 그런데 뭐야?! 몇 번 뒤집고 나니 나무 팔레트가 반은 부숴진다. 나중엔 뒤집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다른 직원이 오더니 밥먹으러 가잔다. 반만 남은 팔레트를 포크 한쪽에 끼우고 돌아왔다. 5톤 지게차는 평탄한 도로에서도 왜 그리 덜컹거리던지...

 

콩국수 곱배기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엔 사장을 따라 지게차가 들어간 업체를 둘러봤다. 테스트에서 팔레트를 다 부숴먹을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이 들통났는데 1톤 트럭에 태워 공단 구경을 시켜주다니... 묘했다. 합격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냥 회사 규모 자랑하는 차원인가...

 

돌아와서는 사무실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사장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직원과 통화하는 내용으로 봐서 중고 지게차를 사러 어딜 간 모양이다.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그 직원이 핸드폰을 닫더니 나보고 퇴근하란다. 일단 집에 가란 말투는 아닌 게 다행이다. 그런데 내일이 일요일인데 한 번 더 테스트를 해야하니 아침 일찍 오란다. 아, 한 번 더 기회를 주려는 모양이다.

 

집에서 지게차 회사까지 22킬로미터다. 왕복으로 치면 기름값이 하루에 5000~6000원 든다. 부담이다. 일도 굉장히 힘들고 임금은 얼마 안 된다는데 교통비로 다 날리면 남는게... 게다가 일요일도 부르면 나가서 일을 해야하고... 사장 말로는 일에 메일 수밖에 없다는데 이 회사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밤 1시가 넘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는데 그냥 느낌 대로 할까 하다 그래도 제 2의 직장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인데 소홀히 결정할 순 없었다.

 

나이 사십일곱에 먼 미래까지 들먹거릴 처지는 아니지만 수년이 지나면 더 큰 지게차를 타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결정했다. 다니기로. 남은 건 일요일 2차 테스트에서 사장이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달렸다.

 

일요일, 오늘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칠서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 시외버스터미널에 적힌 시간표대로라면 나타나야할 버스가 정류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 차를 기다리려면 무려 1시간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하는 수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자동차 키를 챙겼다.

 

사무실에 가니 아무도 없다. 사무실 문은 열려 있다. 노니 장독 깬다고 커피잔과 쟁반 설거지를 하고 사무실 정리를 좀 했다. 40분을 기다려 9시가 넘었는 데도 사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했다. "지게차로 연습을 좀 하고 있을까요?" 그러란다.

 

좀 괜찮은 나무 팔레트를 챙겨 공터에 가서 연습을 했다. 어제 보다는 훨씬 낫다. 하나도 부러뜨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신중하게 하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포크로 올리다가 삐딱하게 되면 다시 내려서 시도했다. 한 시간에 여섯 번 정도 제대로 넘겼나?

 

시동을 끄고 내려와서 몸을 좀 풀고 다시 연습을 했다. 집중! 또 두어 번 성공했다. 낑낑거리며 거의 성공할 즈음에 공터 옆길에 사장이 지게차를 몰고 와선 오란다. 지게차 키를 뽑아 갔더니 옆에 태우고 어느 업체로 향한다. 아침에 일감이 생겨 가는데 가서 보란다.

 

크레인에 붙일 파일을 옮기고 크레인 뒤편 무게추를 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어려워보이진 않는데 워낙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이라 불안했다. 타이어가 터질 것 같고 지게차가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5톤 지게차가 그 일을 쉽게 해결한다. 지게차의 활용범위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돌아와서 다시 연습을 했다. 한참 하고 있으니 사장이 다시 나타났다. 성공하는 모습을 제대로 한 번 보여줬다. 공터 옆에 둘이서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지게차에 대한 이야기, 지게차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밥 먹고 또 이야기... 내가 마음을 굳혔는지 확인하는 과정인 것 같다.

 

사실 처음엔 나를 쓰기에 좀 망설였단다. 기자 출신 사무직에만 있었던 사람이 견뎌내기 쉽지 않은 노동이기 때문인데다 자격증은 있어도 현장에서 적응하기엔 역부족일 것 같아서였단다. 그럼에도 나를 채용하기로 맘을 먹은 이유는 '먹물'이 차후에 회사를 위해 기여할 역할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한 말이 지게차 계통의 기사들은 보고서 하나도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어 답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조만간 회사가 법인체로 전환하고 나면 회계도 하고 공문을 다룰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단다. 나로선 반가운 이야기다. 이 회사에 내가 쓸모 있는 구석이 보여서다. 사장이 내일 근로계약서를 쓰잔다. 내일부터 칠서에 있는 지게차 회사에 정식으로 출근한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얻는 직장이다. 기자였던 사람이 기사가 되는 순간이다. 새로 시작하기엔 좀 삭은 나이이긴 한데 사람이 나이로만 사는 것이 아니니 다시 한 번 열정에 불질러 볼까나.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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