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홍 시인이 20년 만에 다시 다듬은 시집 '아내에게...'
(지역민이 낸 책)<아내에게 미안하다> (서정홍 지음)
서정홍 시인의 삶의 여정은 ‘노동과 글’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시를 읽으면 노동으로 흐르는 땀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하기야 서 시인 자신이 초등학교 졸업하면서 노동을 시작했으니 오죽할까. 시집 뒤쪽 발문에서 송경동(희망버스 기획자) 시인은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를 거론하며 김병욱이란 시인을 언급했다. “김병욱이란 시인은…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꼿꼿한 이였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한 ‘서정홍이란 시인’은 ‘김병욱이란 시인’보다 훨씬 단단한 강자다”라고.
그런 것 같다. 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2005년부터는 합천 황매산 기슭에서 농부로 살면서도 그의 손에서 글이 떠난 적 없으니.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그의 신념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고 단단하니 강자일 수밖에 없겠다.
이번 시집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20년 전에 발간했던 것을 고치고 빼고 덧붙여 새로 낸 것이다. 시인은 시집 앞쪽 ‘시인의 말’에서 “고침판을 내면서 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서른 즈음, 젊디젊은 날들이 떠올랐습니다”라고 했다. ‘가난과 외로움, 아픔과 슬픔’이 가득했을 58년 개띠 시인의 젊은 시절이 연상돼 가슴이 짠해진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혼자 살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모두 누구 덕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할 수도 있겠다. 잘해주고 싶지만 잘해주지 못하는 현실, 그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시인에겐 ‘아내’가 아닐까 싶다.
시집의 첫 시가 ‘아내 이름’이다. “가난뱅이 사내 만나/ 일밖에 모르고 살아서/정겹게 이름 불러 주던 벗들/ 먹고사느라 바빠 다 잊어버리고 살아서/내가 아니면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아내 이름은 경옥입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화장품병, 참기름병 거꾸로 세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랑 이야기는 애틋하다. 그래서 “벌건 대낮에/ 여성회관 알뜰회관 교육회관으로/ 취미교실 다니는 여성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했을 수도 있겠다. 시인이 노래하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활을 반추한다. 나는 정말 참된 세상을 향해 제대로 걸어가고 있나 하고. 단비 펴냄. 160쪽. 1만 1000원.
'이책 읽어보세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 비판 시선 가득한 시집 '엄마들은 성자다' (0) | 2020.02.04 |
---|---|
읽을 만한 어린이 책들 (0) | 2020.02.04 |
읽어볼 만한 새 책 '우리 소나무' 등 6권 (0) | 2020.01.30 |
재미 있는 한자 공부 '하루에 한 번 파자시' (0) | 2020.01.30 |
읽어볼 만한 새책 '예술인 복지에서 삶의 향유로' 등 (0) | 2020.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