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다문화정책, 지방분권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 경남도민일보와 경남신문에서 어제 창원대학교 NH홀에서 열린 다문화 정책 토론회를 다뤘다. 나는 토론자로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의견을 내놓았고 나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경험을 토대로 정책과 서비스의 딜레마를 얘기했다.
방청석에서 나온 얘기 중 하나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중국인이라고 했다. "남편이 문제다. 국제결혼하는 남편들을 대상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문제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요지다. 나와 같은 인식이어서 그럴까. 다문화가족에 대한 여러 정책이 있지만 가장 핵심 사항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내가 발표한 토론문. 경남도민일보 기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경남의 9만 1000명 다문화가족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또는 경남건강가족지원센터 운영위원 처지에서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꺼냈다. 7분 제한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원고대로 말하진 못했고... 빨리 말한다고 했는데... 1분 안에 끝내라는 신호까지 받았으니...으... 음. 원고를 보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썰로 풀어내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ㅋ
한국남 대표님의 발제 중에서 ‘딜레마’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먼저 다문화가족 입장에서 제가 경험한 몇 가지 일들과 또 그 때문에 종종 보아온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을 말씀드린 뒤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 변화에 바라는 점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합니다.
1. 2006년 몽골 출신 여성과 결혼해 12년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몽골의 어순이 한국과 같아서 아내는 한국어를 다른 국가 여성들보다는 쉽게 습득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 아이와 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한국어를 자주 쓰게 되고, 제가 출근했을 때는 문자로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다 보니 언어 습득이 더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2년 정도 경남도청에서 운영하는 명예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내 자랑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저는 솔직히 아내의 능력이 한국 사회와 경제 분야에서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4년 정도 경남이주민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상담 간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노동관련 법에도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으로 취직할 기회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경남이주민센터를 그만 둔 이후 아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기업체에서 사무직 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워드나 엑셀 등 사무직 직원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회사에 지원서를 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당하고 말았지요. 일을 시켜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일을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버린 거죠. 전 이런 한국인들의 선입견이 이주민을 포용하는 데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까지 통제할 법이나 정책이 있을까 싶고요. 이런 부분이 아무리 좋은 다문화 정책을 갖추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2. 이번엔 한국 생활 2년 만에 결국 이혼하고 몽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의 사례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는 몽골에 있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근무했습니다. 25살 연상의 한국 남자와 결혼해 창원서 살았는데 아내가 통역을 맡아 몇 번 왕래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 달 조금 지난 시점일 겁니다. 남편이 폭력을 휘둘렀다며 그가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갈 곳이 우리집밖에 없다 보니 몇 시간 후 그의 남편도 우리집에 왔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도망을 갔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피신이었는데 말입니다.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집에서 음식도 하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는 겁니다. 몇 번을 참았는데 도저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바디랭귀지를 좀 썼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자기를 때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많은 다문화가족 남편들을 만나봤는데 상당수 자신의 물리력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입에 달린 욕을 하며 화를 내는 정도를 폭력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게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부부와 상담을 하면서 더 놀란 것은 그 남편이 자기 아내를 1500만 원 주고 데려왔다는 겁니다. 그건 자신이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쓴 금액이라고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돈이 자기 아내에게나 아내의 가족에게 간 것도 아님에도 말입니다.
아내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보니 아무리 화해를 시켜도 평화스러운 생활은 그야말로 임시방편이었던 셈이었습니다. 결국 여성은 진짜로 도망을 가게 되었고 그 남자는 우리집에 와서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 몽골 여성은 쉼터를 전전하다가 먹고 잘 수 있는 직장을 구해 생활하였는데, 출입국사무소에 체류연장을 해야 하는 때가 되자 어쩔 수 없이 남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그 몽골여성은 한동안 남편과 살았습니다. 함께 우리집을 찾아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평화는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한계까지 온 거겠죠. 그 몽골여성이 하는 말 “이젠 정말 한국이 싫어졌다”더군요.
2년이 되었지만 아이도 없고 국적도 받지 않은 상황이라 몽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의이혼을 해버렸으니 다른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지요. 그 몽골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서 얻은 게 무엇일까요? 다문화 가족의 이혼율이 점점 느는 실정입니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요. 발제자께서 이주여성전문상담소가 필요하다 하셨는데 솔직히 전 남편들의 인식전환과 이해심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문화가족의 행복은 보장할 방법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남편들을 대상으로 한 깊이 있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세 번째는 이주노동자 문제입니다. 정식 절차를 밟아 한국에 노동자로 활동하는 외국인도 많지만 근무처 이동 등 문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법 신세가 되는 사례들이 제법 많습니다. 업주와 갈등 관계에 놓이면서 도움을 받지 못해 잘못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초청으롤 들어왔다가 불법으로 일을 하며 기간 안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눌러앉는 사례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도둑을 맞아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고 아파도 병원에 맘놓고 입원할 수도 없습니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니 의료비도 많이 들어가니 웬만해선 그냥 약국에서 약 사먹는 정도에서 버팁니다. 똑 같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받아야 하지만 불법이라는 족쇄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거지요. 그냥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모든 게 한방에 해결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의 처지에선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아파도 참고 견디는 것이겠지요. 이런 사람에게도 복지혜택을 준다면 우리나라에 불법이주민이 양산되는 결과를 불러오겠지요. 이 문제도 역시 딜레마입니다. 불법에 놓인 이주민이 많은 현실에서 이들이 기본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은 과연 있긴 할까 고민이 됩니다.
4. 선주민과 이주민의 파트너십,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발제문 중에서 그 문장이 눈에 띄는 것은 지난 연말 쯤 창원대 NH홀 이곳에서 학생들의 다문화 교육 과정 발표회가 있었는데, 한 팀이 이주민과 함께 하는 축제 ‘맘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고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축제를 봤던 일반 관객이나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맘프’를 ‘그들만의 축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선주민이 축제에 끼어들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선주민들은 그저 외국인과 이주민이 벌이는 찬치를 구경만할 뿐이라는 거죠. ‘다문화가정 축제 한마당’이라는 프로그램도 그들만의 잔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주여성들의 초중등 교육현장에서의 다문화강의 등과 같은 다문화사회를 올바로 인식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많이 개발되어야 하겠지만 각국 이주민들이 모여 행사를 펼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행사도 선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더 빨리 다문화사회가 건강하게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때가 오면 ‘다문화’라는 단어의 효용성도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지방정부의 다문화 정책 개발은 앞서 말씀드린 ‘딜레마’에 빠져있는 부분, 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야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치적 판단이 선결되어야 할 문제일 겁니다. 그런 게 해결되면 어쩌면 훨씬 수월하게 다문화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상입니다.
경남도민일보 보도.
경남신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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