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예술연구회2 [한하균 오동동야화30]서울서 유치진·홍해성과 인연 닿은 정진업 정진업이 서울로 연극 공부를 하러 가서 만난 사람이 유치진과 홍해성이라고 한다. 물론 이광래가 내쳤더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인연이었겠지만, 어쩌면 번역 일을 하면서 '극예술연구회'가 주최한 강습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여간 다행한 일은 아니었겠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여다 보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겠다 싶다. 월초가 서울에 갔을 때의 광래는 극작가로서보다도 오히려 문화부 베테랑 기자로 더욱 명성이 높았을 때였다. 광래는 연극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고향 후배를 매몰차게 되돌려 보낼 수는 없고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우선 검열대본 번역일을 맡겨 보기로 했다. 당시는 우리나라 말로 연극을 할 수 있을 때였는데(왜정 말기에는 일본말로 대사를 주고 받아야 했으니까) 우리 나.. 2017. 7. 20. [한하균의 오동동야화]마산의 신극운동 앞 순서의 글에서 마산에 신극이 태동하던 1920년대 후의 여러 단체들이 순회공연을 했다고 했다.(표참조) 표(동아일보에서 추출하여 뽑은 것)를 참고로 살펴보면, 첫째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공연하였다는 것, 둘째 고학생 돕기 운동이 태반이었다는 것, 셋째 일본제국에 대한 문화적 대항 내지는 민중계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소나기가 갑자기 퍼붓듯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의 위장된 문화정책의 영향에 따라 1920년대 초반(21~23년) 몇 차례 공연이 있은 뒤 일제의 마각이 드러나면서 다시금 휴면기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931년에 접어들어 마산의 휴학생들과 지식청년이 힘을 합하여 극단을 창단하기로 하고 공연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발기인은 목발 사장으로 너무나 유명한 김형윤(경남신문 전신인 마산일.. 2017. 6.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