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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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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말, 쉬운 듯하면서도 정말 성립 가능성 희박한 단어다. 동지끼리야 공감이 뭐 어렵겠냐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공감은 쉬운 게 아니다. 공감이 쉬운 거였다면 우리나라가 벌써 통일하고도 남았겠지.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기 어렵고 부모는 자녀가 왜 엉뚱하고 쓸데 없는 행동을 매번 반복하는지 상식을 가진 인간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툭하면 어깨를 으쓱거리고 손가락을 이상하게 펴서는 쭉쭉 펴는 행동을 하는, 힙합에 빠져 있는 아이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팸플릿.


또 아이는 구멍난 양말 기워주는 엄마가 이해하기 어렵고 형광등 조금 켜놓았다고 따라다니며 스위치를 내리는 아버지가 이해 안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귀가 시간 조금 늦었다고 자꾸 전화질 해대는 부모가 귀찮기만 하다.


뭐 이 정도 사례뿐이랴. 세대 간의 갈등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때엔 밥숟가락 위에 멸치 얹어주는 것도 갈등이요, 밖에 나가 밤 늦게 어딜 싸돌아 다니는지 먼저 전화 한 통 없는 자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괘씸하기도 하다.


어쩌면 공감할 수 있는 일보다 반감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세대 사이에 더 많이 끼어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0년도 안되는 선후배 간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요즘 세대에 하물며 부모자식 간에랴.


세대 간의 갈등과 이해를 주제로 한 연극을 보았다. 밀양 메들리의 <세대공감>. 전체 주제가 세대 간의 공감이긴 하나 드라마는 '엄마'와 '차이' 두 에피소드 외에 사회 초년생을 청년실업자로 시작하는 여성의 처지, 아내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일상을 그렸다. 물론 이들의 이야기들도 넓게 보면 공감이 필요한 처지이긴 하다.


극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패널.


'토로'. 강민지가 연기했다. 그가 닥힌 현실. 밀린 방세를 내야 한다. 수중에 든 돈과 내일 벌어들일 돈을 다 합쳐도 방세는 어림도 없다. 그의 하루 일정은 빡빡하다. 잠잘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도 살려면 게으름을 부려선 얼른없다. 그런데 재수 없고 안 풀리는 사람에겐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몇 푼 되지도 않은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출발 몇 분 전에 취소되었다는 통보가 온다. 진절머리가 난다.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세상의 루저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청년실업자가 팝콘 튀듯이 넘쳐나는 오늘날 세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이 있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며 멋들어지게 살아갈 날을 꿈꾸는 그에게 이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은 그야말로 '개뿔'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 말을 뇌까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개뿔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하지만 난 아파도 병원갈 돈도 없다."


두 번째 에피소드 '엄마'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엄마의 존재를 되새겨보는 스토리다. 뻔한 스토리여서 이를 새롭게 하려고 관객과 소통하는 기법을 활용했다. 엄마 역을 얼떨결에 맡은 관객은 대본을 받아 연습한 것처럼 스토리의 흐름을 잘 타고 연기를 펼쳤다. 여러 공연에서 느낀 것이지만 요즘은 일반 관객의 연기 수준이 장난 아니게 높다. TV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눈에 띄더니.


'엄마'란 존재의 본질은 무엇일까? 드라마는 '희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희생을 바란 적도 없고, 자식에게 희생할 생각도 전혀 없다. 스무 살 넘으면 그때부턴 무조건 독자적 노선을 밟아야 한다. 내가 그랬듯 자식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할 것이다. 당분간 잠자리는 무상대여해 주더라도.


세 번째 에피소드 '잔상'은 좀 독특한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꿈이 진짜인지 진짜가 꿈인지 알 수 없는,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1년 전 생일 때 죽은 아내의 모습이 나타나 일상을 보여준다. 아파도 병원에 갈 생각도 않는, 그러면서 남편이 아프면 온갖 걱정 다하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미련퉁이 아내의 모습에서 아내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후회스럽다.


1년 전 생일 때 노래방에서 코가 비틀어지도록 놀면서 아내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그래서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잔상은 남편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아내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내의 방에는 국화 한송이가 꽃혀있고 자신의 사진이 놓여있다. 그렇다면 아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남편이 죽은 것인가? 이런 혼란. 아쉽지만 반전이 명쾌하지 못하다. 이해를 잘 하면 줄거리가 풀리는데 이 꿈이라는 장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커다란 미로 속에서 똥이 마려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탈출을 포기해버리는 처지에 빠져버린다. 어쨌든 잔상은 부부 간에 필요한 것은 '애틋한' 관심과 배려다.


공연 끝나고 커튼콜 끝나고.... 기념 사진 촬영을 설명하는 배우들.


잔상을 통해 느낀 것은 한마디로 '있을 때 잘해'다. 오승근의 노래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그래 공연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오승근의 노래가 자꾸 되뇌인 것은 너무 주제 의식에 천착한 결과인데..., 어찌 소리 없이 울리는 그 노래가 오승근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내 목소리도 아니다. 아내의 목소리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 찔리는 게 있나보다. 그래 이제 술도 좀 줄여야지.


네 번째 에피소드, '차이'. 오브제는 핸드폰. 핸드폰은 세대마다 용도가 모두 다르다. 내 나이 쯤으로 설정된 드라마 속의 엄마는 나보다 훨씬 촌사람이거나 일찍 정신적으로 늙어버린, 시대 변화 부적응 인물일 것이다. 어째 50대 중후반밖에 안될 그 나이에 스마트폰으로 사진 하나 제대로 못 찍는단 말인가.


뭐 어쨌든 80을 넘기신 어머니와 나의 대화가 비교되는 그런 에피소드이긴 하다. 50대 중반인 내가 밥상머리 앉아서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어머니에게 정상적으로 비치는 장면은 아닐 것이므로. 나역시 아무리 팔십을 넘겼다 하지만 카톡에 사진 하나 올리지 못하는 원시인으로 변해버린 어머니가 이해 안되긴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이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라고 이야기한다.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이 깨춤을 춰도 되고 영상통화를 누르고서 귀에 갖다 대어도 된다.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고려를 세운 임금이 왕건인지 왕산악인지 몰라도 이해하고 유명한 패션 브랜드 샤넬이 코코샤넬로 불렸고 그 코코란 말은 '직업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을, 또 샤넬이 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지은 소설가 알렉상드로 뒤마의 애인 마리 뒤프레시이며 이 여인은 뒤마의 소설 속에서 마르그리트로 나오고 다시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에선 비올레타 발레리였다는 사실, 그리고 동백아가씨로 불린 연유가 직업여성이었던 마리 뒤프레시가 늘 흰 동백꽃을 가슴에 꽃고 있다가 생리 때가 되면 붉은 동백을 달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자는 얘기다.




부모 자식 간에, 스승과 제자 간에, 사회 장년층과 청년층 간에,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계급 간에 서로 이해하는 공감대만 제대로 형성된다면 이 사회는 멋지게 변화할 것이다. 헌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건 인간 세계에선 불가능한 화두일 것이다. '공감 같은 소리 하고 있네'란 반론이 바로 튀어나오는 듯하다.


그래,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낮에 후배에게 말 한 마디 잘못한 것. 그래 그럴 수 있어, 너무 자책하지마! 자기 자신부터 이해해보자.


공연 마지막 장면은 배우와 관객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씬이다. 메들리에서 홍보영상으로 사용할 것이란다. 공연예술의 아이디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끝은 없겠지만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면 그게 한계라고 느끼게 될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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