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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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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04:45

이 글은 페이스북 상상창꼬 페이지에 올려 공유했던 글이다. 오늘 다녀온 밀양 메들리의 <세대공감>은 상상창꼬에서 단체로 관람한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러가기 전 밀양의 연극 흐름을 알고 싶었다. 메들리의 역사가 50년이다. 25년 전 밀양연극을 취재하기 위해 밀양을 찾았을 때 그때도 변변한 극단은 메들리 뿐이었다. 작년 <다섯손가락>을 봤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메들리는 확실히 세대교체가 된 듯했다.


1982년 이동진 작 손경문 연출로 공연된 <배비장 알비장>.


1978년 12월 공연된 몰리에르작 손경문 연출의 <팔자 좋은 의사선생님>. 사진.자료 출처:<경남연극인물사1>



밀양엔 전통이 아주 오래된 극단이 있다. 얼마 전 경남도민일보에도 기사가 난 극단 메들리.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았다. 50주년 기념 첫 공연은 <세대공감>(연출 김은민) 창작극이다. 어제와 오늘 총 3차례에 걸쳐 공연되고 있다. 오늘은 오후 4시와 7시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공연된다. 상상창꼬 단원들은 7시 단체관람을 하기로 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밀양 연극이 어떻게 발전을 이루어왔는지, 대략 밀양연극사라도 알고 관람한다면 도움되지 않을까 하여 짧게나마 정리해 본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 근대연극의 효시로 1911년 임성구가 창단한 혁신단의 <불효천벌>을 꼽고 있다. 숭례문 밖 일본인 극장 어성좌에서 공연한 것이 처음이었다. 경남에서도 이 혁신단의 레퍼토리를 가져와 공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잠깐, 이 부분. 학교에서 배우기로 우리나라의 신극 효시는 이인직의 <은세계>다. 원각사에서 열린. 그러나 신문 기사에 그렇게 나와 있다는 것 외엔 공연을 한 건지, 연극형태였는지, 배우는 누가 출연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임성구가 일본 신파극 <뱁의 집념>을 번안한 <불효천벌> 효시로 삼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남에서 처음으로 '신극'이란 이름으로 공연이 이루어진 것은 어떤 작품일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드러난 기록으로 보아 1912년 진주사립광림학교에서 올린 연극이라고 하는데 교장 박택이 성극 대본을 썼고 거렬휴가 졸업반 학생들을 지도해 공연했다고 한다. 조웅대의 진주연극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밀양의 연극은 조금 세월이 흐른 후에 본격화한다. 1921년 밀양구락부가 창단되는데 주로 소인극 형식의 공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경남연극인물사, 경남연극협회, 김소정) 밀양구락부는 밀양뿐만 아니라 부산과 김해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연극은 신파연쇄비극 <고학생 성공> <지기> 등이며 이후 양산과 안의, 하동 등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한다.


국내 연극 흐름이 그러했듯 밀양의 연극도 광복 이후 활발하게 진행된다. 일제강점기 때 황금좌에서 활동했던 김열이 귀향하면서 안영, 황용우, 박노석, 김원술 등과 함께 <한양극장>에서 <탁류>를 공연하면서 본격화의 테이프를 끊게 되었다.


1945년 12월 기독교청년회원들을 중심으로 뒤마 원작 <아! 무정>을 순회공연했고 1947년에 열린 제1회 밀양문화제는 밀양 연극활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1957년까지 왕성한 활동이 이어지는데 이 시기 대동예술사란 극단이 창단되었고 학교 중심의 연극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밀양농잠학교의 <해후>(안정 작, 박창숙 연출), 밀양여고 <바보온달>, 밀성고 <푸른성인> 등이 있다.


1964년 연극협회 밀양지부가 결성되고 1967년 손경문을 비롯한 젊은 연극인들에 의해 극단 메들리가 창단된다. 50년 전의 일이다.


메들리는 연극만 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경남도민일보 기사에서 소개한 것처럼 "이름은 '음악(Music)' '예술(Art)' '희곡(Drama)' '문학(Literature)' '젊음(Young)'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엔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는 문화조직이었다.


당시 주축 멤버는 손경문을 비롯해 박근원, 박진갑, 이두옥, 안현일, 김용식, 이용주, 조영래, 최차복, 김흥묵, 유나경, 박말분 손무상, 윤성수 등이었다고 한다.


초창기 올린 작품은 <내가 반역자냐>(67.8), <아리랑>(68.8), <원고지>(68.9), <탄갱부>(68.10), <갈색 머리카락>(69.1), <청춘은 조국과 더불어>(69.2) <우스운 사람들>(70.8) 등이다.


이후 밀양 연극은 한동안 침체기를 겪은 다음 간간이 공연을 이어오다 1978년 메들리 창립멤버였던 손경문이 돌아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이수일과 심순애>, <산국> 등 수많은 작품을 지도하고 연출하면서 밀양 연극의 활성화를 다시 불러왔다.


메들리는 밀양의 연극사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메들리의 부침이 밀양 연극의 부침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메들리는 90년대 2000년대 와서 또 침체기를 겪었다.


이 과정을 경남도민일보는 이렇게 전한다.


"1989년 연출가 손경문의 신학대학 입교를 시작으로 잦은 단원 전출과 개인 사정이 겹치면서 침체기를 맞는다. 지난 1993년 경남연극제에 <표류하는 너를 위하여> 출품 후 활동이 끊겼다. 메들리를 뿌리로 두고 각자 활동을 벌이던 단원 등은 2011년 맥을 잇기로 의견을 모은다. 박진갑, 김흥묵, 최차복 등 단원과 연극협회에서 활동하는 김은민, 김정애, 이정미 등이 뜻을 함께했다. 현재 극단 메들리 단원은 30명가량. 주 활동 인원은 10여 명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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