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연극 이야기-화요명작예술감상회 2강
극단 상상창꼬 김소정 예술감독의 '재미있는 연극이야기' 2강은 1강에서 예고했듯이 양식극에 관해서다. 얼핏 양식극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울 수 있겠다. 양식극이란 줄거리를 가진 서사극에 대비되는 극의 표현양식으로 부조리극, 이미지극, 비주얼 연극 등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 양식극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줄거리가 없으며, 둘째 주인공이 캐릭터는 있으나 배경 설명이 없고, 셋째 결말이 없는 오픈 엔딩이라는 것이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언해피엔딩도 아니고... 어? 연극이 끝난 줄도 모르는 가운데 연극이 끝나는... 이러한 엔딩 처리는 소설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TV에서도 베스트극장이라든지 TV소설 등에서 써먹기도 한 스토리 양식이다.
2강의 첫 작품은 그 유명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이 작품이 양식극 강좌의 첫 주인공이 된 이유는 부조리극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았거나 대본을 읽어본 이는 알겠지만 극의 전개 상황이 정말 재미없다. 몇몇 등장인물이 나와서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수준이다.
무대는 황량한 시골길이고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고도 씨. 에스트라공은 신발을 벗으려 애를 쓰고 블라디미르는 도둑에 관한 얘길 한다. 잠시 후 포조가 노예 러키를 긴 끈을 목에 걸고 등장한다. 이들 역시 별 시덥잖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그저 별 의미 없는 행동들.
포조와 러키가 떠나고 잠시 후 소년이 나타나 한마디 한다.
"오늘 미스터 고도는 안 온대요."
2막도 별 다르지 않다. 다만 바짝 말라 가지가 앙상했던 나무에 초록색의 잎사귀가 몇 개 달려 있다는 것만 빼고. 역시 1막처럼 소년이 나타나 한다는 말은,
"오늘 미스터 고도는 안 온대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낙담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다. 죽는 게 그리 쉬운가. 자살을 내일로 미룬다. 혹시 내일이라도 고도는 오려나?
정말 재미 없는 이 작품은 수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관련 논문만 하더라도 강의실 한가득이라는 김소정 감독의 설명이다. 학교 다닐 때 한창 연극에 빠졌더랬는데, 그때 고도를 손에 쥔 적이 있었다. 작품 해설을 위한 자료는 도서관 논문 코너에 도서카드 서랍 한통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손에서 놓은 이유는 단지 하나, 너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신 손에 쥔 대본이 유진오닐의 '몽아'였다. 결과적으로 많이 아쉬운 작품이긴 했지만.
그건 그렇고, 그렇게 재미 없는 작품 이 <고도를 기다리며>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어쩌면 문학사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뭐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일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하이데거는 '권대'라고 표현했단다. 더해서 까뮈는 일상을 '무의미'라고 했고. 그 이유가 삶의 끝을 '죽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는 길은 '고도'에서 두 등장인물이 시도했던 그 자살밖에 없는가? 아니다. 까뮈는 "버텨라" 하고 말했다. 버티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반항'을 제시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는 대부분 '영웅'이 된다. 그런데 시지프스는 죽음의 신을 속였다는 죄로 영원히 하데스 언덕에 바위를 올려야하는 형벌을 받는다.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또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고된 노동이 그에게 떨어진 형벌이다. 까뮈는 여기서 시지프스의 자각을 발견했다. 바위가 굴러떨어진 다음 산을 내려오면서 그가 한 생각.
'다시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자각을 하게 됐단 얘기다. 그것을 까뮈는 반항이라고 했다. 반면 하이데거는 죽음까지 버티기로 '시간죽이기'를 제시했다. 이 시간죽이기가 적나라하게 반영된 작품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라고 한다.
다음, 두 번째 작품으로 타데우즈 칸토르의 <비에폴 비에폴>을 봤다. 타데우즈 칸토르는 '죽음의 연극'을 주로 다루었다. 그가 죽음에 천착한 데엔 이유가 있다. 그의 성장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폴란드 사람으로 유대인이다. 그가 겪은 환경, 바로 독일의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해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한 홀로고스트 사건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철권통치 아래에서도 그는 지하에서 연극을 통해 저항운동을 했다. <빌로폴 빌로폴>은 그의 유년시절 방이 배경이다. 단검이 장착된 소총을 어깨에 걸친 군인들이 인형처럼 한무리를 지어있고 여자 인형으로 분장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군인 한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 모양이다. 인형놀이를 하다 주인공은 구형 사진관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데 그것이 대포로 변한다. 대사는 거의 없이주인공의 인형놀이는 한참 진행되고 군인들이 여성을 유린하는 장면도 보여준다.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극에 나타나는 십자가와 군인이 들고 가는 인형의 모습이 유사하다.
타데우즈 연극의 또다른 특징은 연출인 타데우즈가 무대에 등장해 큐사인을 넣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해설자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구조일터. 그의 무대에 등장하는 오브제, 즉 각종 소품과 인형, 십자가 등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 본 작품은 로버트 윌슨의 <셰익스피어 소네트>다. 로버트 윌슨은 건축가였다고 한다. 무대에 건축미학을 접목시켜 설치하고 원색 조명을 많이 사용하여 이미지극을 창출했다. 역시 극은 줄거리가 없고 사건도 없고 그래서 갈등 구조도 없다.
<셰익스피어 소네트>에선 추상적이고도 큰 무대장치에 배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때론 아주 느리게 움직이기도 한다. 연극의 형태에 대한 색다른 체험이었다.
마지막 작품은 필립 장띠의 비주얼극 <표류>와 <나를 잊지 마세요> 두 작품을 봤다. 이 작품들은 연극이라기보다 오히려 무용에 가까웠다.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허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좁은 공간 위 상자 속에 있는 사람들이 상자를 쓰고 상자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과 파도치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표류>, 커다란 천을 이용해 독특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나를 잊지 마세요>. 작품들이 너무 무용적 요소들이 강해 글로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이미지나 비주얼을 강조한 연극들이었는데, 김소정 감독이 지금까지 보여준 신체극의 몇몇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이러한 극의 양식은 아직 국내에 널리 퍼져 있지 않다. 아방가르드는 그 표현양식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 미술에서도 어느 정도 구상화가 시대를 장식할 무렵 추상화가 나타나 주류에 도전했던 것처럼 연극 역시 그러한 역사의 매커니즘을 따라갈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김소정 감독은 이러한 연극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한국 연극에서 이러한 양식극을 부분부분 도입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게 대세가 되지 않을까"하고 점치기도 했다. 다음주는 뮤지컬로 3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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