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연극 이야기-화요명작예술감상회 1강
연극은 재미 있다. 해본 사람은 연극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안다. 한때는 연극에 안 미치려고 발버둥친 적도 있었기에 그 매력을 안다. 아니 그건 매력이란 단어보다 마력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 시기가 그러했다. 연극에 미쳐 생활을 보장하는 직장을 갖지 못하면 안타까운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야 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실력이 출중해서 살아남고 또한 연극을 이끌어갈 정도의 열정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 연극 수준을 이만큼 끌어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준이 높아진 한국의 공연예술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먹고살기 팍팍했던 시절이 일부 중산층에는 지나간 듯하고 그래서 눈을 문화로 돌리는 것은 아닐까 가늠해 본다.
지난해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진행된 수요문화대학 1, 2학기 수업을 모두 들었더랬다. 소극장 규모가 500석이 넘는다. 매번 이 좌석을 80퍼센트 이상 채웠던 걸로 기억한다.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이번 화요명작감상회도 그러했다. 주제가 그러한 것처럼 명작을 보며 설명을 듣는 수업이다. 연극이면 어떤 연극이 명작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배우고 미술이면 어떤 명화들이 있는지 그 명화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재즈면 재즈대로, 가곡이면 가곡대로, 클래식이면 클래식 대로 어떤 유명한 작품들이 있는지 보고 설명을 듣는 수업인 것이다.
화요명작감상회는 수강생 정원이 50명이다. 그런데 이번 강좌에선 수강생이 50명을 훨씬 뛰어넘어 70명 정도 된 것 같다. 그래서 강의실도 원래 제5강의실에서 진행하려다가 인원수 때문에 국제회의장으로 옮겨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첫날 극단 상상창꼬 김소정 상임 예술감독의 강좌 '재미있는 연극 이야기'다. 이런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나 괜한 블로그 글쓰기하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10시 알람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 부랴부랴(참, 부랴부랴가 불이야 불이야의 준말인 건 다 알고 있으려나) 양치하고 세수하고... 하지만 머리 감을 시간은 도저히 없어 헝클어진 대로 옷만 주섬주섬 끼워입고 튀어나왔다. 다행히 버스가 아귀맞춘 기어처럼 제때 와줘서 3분 늦은 출석을 체크했다.
이제야 본론.
김소정 감독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연극과 셰익스피어, 그리고 태양의 서커스 극단의 작품을 준비했다. 고대의 연극은 어떻게 공연되었는지, 그리고 연극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영국의 셰익스피어에 관한 허구와 진실, 연매출 1조 원을 넘게 벌어들이는 세계 최고의 공연단체 '태양의 서커스'는 어떤 작품을 만드는가 하는 내용이 이날의 강의 내용이다.
첫 번째 작품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한 사람인 아이스퀼러스가 쓴 <오레스테이아>다. 원 제목은 <오레스테스>라고 한다. 영상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화질도 떨어지고 스크래치 소음도 많이 들어있었다. 마치 낡은 LP판을 듣는 듯한...
<오레스테이아>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아가멤논> 2부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 3부는 <자비로운 여신>이다. 이 연극은 그리스 시대의 연극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디오니소스(술의 신) 축제에 공연된 것이다. 흠.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신이다. 이 신의 이름이 로마시대로 내려오면 바카스란 이름으로 바뀐다. 말도 안 되는 표현 '피로회복'이란 광고 문구로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바로 그 강장음료의 이름이기도 하다. 피로회복이 왜 말이 안되냐면, 피로는 회복이 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계속 피로해서 좋을 게 뭐 있다고.
말이 곁가지로 새어 너무 멀리 가버렸다. 궤도를 다시 찾아, 이때의 연극은 아주 큰 원형광장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그냥 우리가 말하듯하는 대사로는 언어전달이 택도 없었단다. 그렇담 그리스 시대의 배우들은 어떻게 발성을 했을까?
당시의 대사는 모두 시로 이루어졌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모든 대사는 웅장한 목소리로 읊어 대사전달이 쉽긴 했지만 워낙 공간이 크고 또 시끌벅적한 분위기였기에 소리를 울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냈던 게 가면이라고 한다.
가면은 소리를 울리게 하여 더 멀리 더 크게 대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단다. <오레스테이아> 영상을 보니 모든 배우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김소정 감독의 말로는 이 중에서도 유일하게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극의 해설자였다고 한다. 물론 쓰고 나올 때고 있었고.
<오레스테이아>는 아가멤논 대왕이 살해당하고 그로 인한 복수극이 줄거리다. 뭐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룬 극이 아닐까 싶다. 그 만고의 진리라고 여겼던 것도 오늘날에 와서는 꼼꼼하고 기계적인 법이라는 잣대 때문에 진리의 반열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에서 더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법보다 복수에 더 후련해하긴 한다.
두 번째 명작, <셰익스피어 인 러브>. 불후의 명작, 전 세계적으로 성경책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책장을 장식하는 그의 희곡집이 말해주듯 셰익스피어는 연극을 얘기할 때 빠지면 무덤을 박차고 언제든지 뛰쳐나올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한창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영화에선 함께 연극했던 여배우(사실 셰익스피어가 공연하던 그 시절 여자는 배우가 될 수 없었다)를 사랑하게 되고 여자가 무대에 섰다는 이유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는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는 영화다.
김소정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셰익스피어 당시 공연장은 실내가 아니라 실외였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공연장은 원형이고 플로어(1층)와 갤러리(2층)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엔 일반 시민들이 관람하는 곳이고 2층은 귀족들이 앉아서 관람하는 장소다. 플로어엔 관극하는 시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김홍도의 씨름에 나오는 엿장수도 등장해 엿 사라고 외쳐대기도 한다. 어떤 이는 공연 중에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 요즘 같으면 얼른없다. 몇 세 이하 입장금지, 핸드폰은 잠시 꺼두세요, 이런 문구가 당연한 시대이니.
아, 셰익스피어 시대 여성이 배우가 되면 안 된다는 명분은, 참 나... 너무나 엉뚱해서 사실일까 의심스럽기만 한데, "여자가 배우로 무대에 서면 남자를 홀리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를 홀리기 때문에? 음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로미오 역을 맡아 연기하면서 줄리엣 역을 맡은 바이올라에게 홀림을 당한 것인가?
세 번째 작품은 태양의 서커스 극단 작 <바레카이>와 <라누바>다. 둘 다 기예와 아크로바틱... 아, 같은 말인가, 그야말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몸동작을 스토리에 입혀 만든 세기의 걸작이다.
<바레카이>(2002년 작)는 집시 언어로 '어디든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첫 장면이 이카루스의 추락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떨어지는 장면을 공연장 천장에서 늘어뜨린 줄에 의지해 표현했다. 이야기는 이 청년이 마법의 숲에서 겪는 모험담이다. 물론 해피엔딩이다. 마음에 맞는 아리따운 여자를 만나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장면이 엔딩인데... 영상을 전부 본 게 아니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어찌 영상을 볼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유튜브에 있을라나?
그리고 또 하나 <라누바>는 트램펄린을 이용한 화려한 아크로바틱이 매력이다. 배우들이 모두 무중력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듯하다. 5미터가 넘는 무대세트 위를 한 번 몸을 튕겨 걷듯이 오르고 여럿이 한꺼번에 통통 튀어오르는 모습이 그렇게 정교할 수가 없다. 라누바는 파티라는 뜻이라고 한다.
태양의 서커스 단장은 '발상의 전환'이란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는 데.. 음. 개그맨 전유성에게서 강의를 들었을 때가 생각나는구만. 발상의 전환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시의적절과 합리성이 겸비돼야 한다는 것인데 발상의 전환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은 고도의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상력, 그것은 기존의 연극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추구하는 극단 '상상창꼬'의 작업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주 화요일 강의는 화술이 아닌 양식연극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네. 다음 강의 땐 사진이라도 좀 찍어서 자료로 활용해야겠다. 포스팅이 까만 글자들의 잔치로 채워져 재미가 없어졌다. 아쉬운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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