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뭘볼까]행복은 달빛, 그 5가지 에피소드
극단 상상창꼬 신체극 ‘라디오 여자’ 11일부터 창동예술촌 가배소극장 공연
달빛 은은한 밤, 음악이 흐른다. 라디오에선 세상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며 쉼표 없이 살아가는 마리오네트 인생,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하며 사는 인생, 자신감은 모두 잃어버린 채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린 인생, 마네킹 다리를 부둥켜안고 거리에서 뻗어버린 술 취한 인생, 그리고 자신을 속박하는 자신을 벗어던지고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인생들.
궁극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그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극단 상상창꼬는 그런 삶의 여정을 다섯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표현한다.
‘라디오 여자’. 극단 상상창꼬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오는 11일부터 13일, 그 다음 주 18일부터 20일, 평일엔 오후 7시 30분 한 차례, 토요일과 일요일엔 오후 4시와 7시 30분 두 차례 마산 창동예술촌 가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라디오 여자’는 신체극이다. 몸연극이라고도 부르는 이 극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대사를 읊는 연극과 대사 없이 몸동작만으로 연기하는 마임을 융합한 정도의 극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극단 상상창꼬의 앞선 작품 ‘후에’의 경우 마임을 주로 하면서도 몸동작을 하는 배우가 간간이 대사를 쳤다면, 이번 ‘라디오 여자’는 방송진행자 외엔 전혀 대사가 없다. 아주 어쩌다 비명 같은 통곡이 있을 뿐이다.
‘한밤의 달빛 연주’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장혜정 MC.
상황을 대사 없이 마임으로만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배우들은 신체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고 표정 연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이 통하는 사람만 알아듣지만 몸짓언어, 보디랭귀지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확장성이 크다고 하겠다. 신체극의 매력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 잠 못드는 밤의 한 장면.
잠깐 줄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에피소드. 잠 못드는 밤. 피곤하다. 하루의 일상에서 쌓인 피로는 수면으로 풀어야 다시 다음날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 피로감을 해소할 잠이 좀체 오질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누워 있으면 잠이 들겠지, 싶어도 그놈의 잠이라는 것이 눈꺼풀을 닫아주질 않는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면 나을까. 일어서서 구르기도 하고 이런 저런 몸동작을 쉴 새없이 이어가 본다. 이제는 잠이 오려나. 누웠다. 쏟아져야 할 잠은 멀뚱멀뚱 저만치서 기다릴 뿐이다. 잠아, 제발 오너라. 결국 아침이 오고 그는 잠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것을 배우 이계환이 신체극으로 표현한다.
에피소드 바이올린의 한 장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진석은 공연을 앞두고 어머니 가게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도시락을 들고 따라온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냥 도시락을 받고 나왔더라면.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고 두문불출한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 그러한 청년의 몸짓을 배우 강주성이 표현한다.
에피소드 질투의 한 장면.
여자들의 질투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세 번째 에피소드 질투는 아주 사소하고도 단순한 것에서 비롯되는 여자들의 질투를 코믹하게 다뤘다. 키 작은 여자,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몸매가 어느 정도 괜찮은 여자, 그리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받쳐주는 여자, 이 세 여자를 제압하는 가슴 큰 여자. 여자들은 서로 질투에 자존심을 얹어 티격태격하지만 멋진 남자의 등장에 질투를 멈추고 만다. 멋진 남자에게 향한 구애는 예상치 못한 행동에 여자들은 모두 쓰러지고 만다. 대체 어떤 행동을 했기에…. 반전의 묘미다.
네 번째 에피소드 그 여자의 다리는 술에 취해 밤새 거리에서 마네킹 다리를 껴안고 황홀한 밤을 보낸 어떤 아저씨의 사연이다. 필름이 끊기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인사불성일 때 남자는 무엇에 집착하게 될까? 옛날엔 도깨비에게 홀려 빗자루 잡고 씨름을 했다는 얘기가 있더니 이 아저씨는 여자의 다리에 한이 맺혔나 보다. 마네킹 하체를 예쁜 여성의 다리로 완전 착각을 하고 온갖 쇼를 길거리에서 벌이고 있다.
에피소드 여행자의 한 장면.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여행자. 원룸 보증금을 들고 사라진 친구 때문에 이 집 저 집 전전하는 여자, 결혼을 앞두고 떠나버린 남자 때문에 슬퍼하는 여자, 모두 자기를 싫어한다고 여겨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여자, 손가락이 마비되어 버린 피아니스트, 자신을 스토킹하는 여자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남자. 이들의 이야기가 오예진·이예슬·김혜지·이선영·강주성에 의해 차례로 펼쳐진다.
여행 트렁크를 든 네 여자와 한 남자. 이들은 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버스 터미널에 모였다. 지겹고 따분하고 불행했던 현실을 박차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그곳에선 분명히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막은 그렇게 내린다. “한달연(한밤의 달빛 연주)을 기다려주시고 함께 해 주신 모든 여러분, 내내 행복한 저녁이었으면 합니다. 저는 장혜정이었습니다.” 라디오 MC는 극을 쓰고 연출한 김소정 감독이 맡았다.
전석 1만 5000원. 예매 시 30% 할인받을 수 있다. 문의: 010-3232-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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