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도둑들이 이야기하는 진짜도둑 이야기
마산연극협회 26~28일 ‘마술가게’ 공연…시원하게 사회 풍자
소극장 공연의 매력은 아무래도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와 세밀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극의 전달력은 중·대극장에 비해 훨씬 높아진다. 말하자면 관객이 극 속으로 더욱 강하게 빨려 들어가게 되고 그만큼 감동의 규모도 커진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소극장 연극을 선호하는 마니아도 상당수 형성돼 있는 게 작금의 문화현상이다.
지난 28일 오후 4시 창원 창동 가배소극장에서 열린 마산연극협회의 ‘Magic Shop(마술가게)’ 공연을 봤다. 이상범 작, 극단 상상창꼬의 김소정 연출로 이뤄진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경상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초보 도둑이 베테랑 도둑을 가게 주인으로 착각하고 잘못을 비는 장면.
연극은 도둑들의 이야기다. 일면 판타지한 구성으로 일면 아주 리얼리티한 기법으로 극이 진행됐다.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은 옷가게에 두런두런 소리가 난다. 누군가 있을 턱이 없을 텐데 무슨 소리지? 가게 마네킹들의 이야기다. 하루에 옷을 네 번이나 갈아입어 피곤하다는 둥, 벌써 며칠째 옷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둥, 또 비싼 건 잘 팔리고 싼 건 안 팔린다는 둥. 사람도 아닌 마네킹들이 세상 사람들을 흉보고 있다.
그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간 마네킹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리 줄거리를 몰랐대도 이 사람이 도둑인 줄은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 도둑이 아니라 가게 주인이면 불부터 켰겠지.
이 도둑은 베테랑인가 보다. 훔치러 들어왔으면 재빨리 목적달성을 위해 금고부터 찾아봤을 터인데, 마네킹과 춤도 추고 진열된 옷도 골라본다. 게다가 술병까지 꺼내 한 모금 마시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런 사이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불을 끄고 숨는 동작이 좀 전 여유를 부릴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토록 신속할 수가 있을까. 플래시를 들고 더듬거리며 들어오는 등장인물도 척 보니 알겠다. 도둑은 도둑이되 초보 도둑이다.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진 않아도 두려워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동작들에서 바로 티가 난다.
서로 피할 수 없는 한 공간에서 두 도둑이 맞짱을 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테랑 도둑이 불을 켜고 초보 도둑을 혼낸다. 초보 도둑은 그를 가게 주인인 줄로만 여기고 잘못을 빈다. 그러게. 우리 사회에 주인도 아닌 사람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경우가 이런 것일까?
가게 주인이 아니라 그 역시 도둑임을 알게된 초보 도둑이 베테랑 도둑에게 대드는 장면.
나중엔 그 역시 도둑임을 알게 되었을 때 초보 도둑은 ‘똑같은 도둑이면서’라는 명분으로 베테랑 도둑에게 대들지만 힘과 노련미에 밀려 찍소리 못한다. 이런 과정에서 둘 사이엔 상하관계가 형성되고 결국 공범으로 암흑세계의 끈끈한 의리로 연을 맺게 된다.
초보 도둑이 금고를 찾고 베테랑 도둑이 금고를 연다. 한 움큼의 돈다발을 득템한 도둑들. 어떻게 분배할까? 베테랑 도둑은 그쪽 계통의 상도덕 상 자기가 주는 대로 받는 게 정한 이치라는 논리를 펴지만 그게 초보 도둑에게 먹힐 리 없다. 하지만, 어쩌랴. 경력에 밀리고 힘으로도 밀리니 베테랑가 떨어트려 주는 ‘콩고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몇 푼 더 얻으려고 알랑방귀를 뀔 수밖에 없다.
초보 도둑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
그런데 이들은 왜 도둑이 되었을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비켜갈 수가 없다. 별을 달 만큼 단 베테랑는 베테랑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고 초보는 또 초보대로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여유 있게 살 수 없는 현실에서 도둑질보다 손쉽게 거금을 쥘 수 있는 직업(?)이 없다고 여길 만한 경력이 있다.
도둑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세상엔 진짜 큰 도둑들이 있다고 불평한다. 자기들은 피라미라면서. 그런데 경찰은 큰 도둑은 안 잡고 자기들만 잡으려 한다는 게 불만이다.
베테랑 도둑이 자신의 과거 사기꾼으로 돈을 손에 좀 쥐었던 경력을 이야기하는 장면.
“진짜 더럽네.”
그럼에도 도둑들은 ‘도둑질’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화두에서 갈등을 한다. 도둑질이 나쁘단 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도둑들은 자신들이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니 말해 무엇하랴.
도둑들의 ‘도둑논쟁’은 엉뚱하게도 ‘옷’이 도둑의 성격을 규정짓는 일종의 ‘주홍글씨’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초보 도둑이 제시하는 근거는 엉뚱하고도 기상천외하다. 태초의 도둑은 성경에 나오는 아담이며 자기들은 그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고 사관지 뭔지를 따먹는 바람에 옷을 입게 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양심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베테랑 도둑의 모습.
판사 옷을 입었는지, 검사 옷을 입었는지, 경찰 옷을 입었는지, 세무공무원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도둑의 종류가 구분되니 옷이란 게 어떤 도둑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란 논리가 재미있다.
서서히 술에 취한 도둑들은 옷과 도둑이라는 상관관계를 더욱 확대해석하며 옷이란 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초보 도둑은 옷을 다 벗자고 제안하고 둘은 의기투합해 벌거벗고 원시인처럼 행동하며 즐거워 한다.
옷이란 죄의 종류를 나타내는 것이 불과하므로 옷을 벗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발가벗고 자유를 누리며 춤을 추는 모습.
“이제 우린 자유다!”
벌거벗은 두 도둑의 코믹한 춤들이 웃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무슨 소리가 난 모양이다. 서둘러 옷을 껴입고 옷가게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둘의 의리는 깨어진다.
도둑들이 떠난 옷가게엔 다시 마네킹들이 수다를 떤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다.
“점장이 장사 안 된다고 신경질 내면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지?”
베테랑 도둑엔 박현민이, 초보 도둑엔 강주성이 맡았다. 이들은 도둑뿐만 아니라 마네킹 역할까지 소화했다. 공연 중에 선보인 두 사람의 현란한 댄스 솜씨도 볼만한 요소였다. 25살의 젊은 도둑이 춤을 더 잘 출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별까지 수두룩하게 단 나이 지긋한 도둑이 팝핀에 비보잉까지 소화해내는 모습은 관객의 박수를 끌어낸 의외의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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