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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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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18:44

[전설텔링]”첩룡을 죽이라니까!”

용들의 삼각관계에 휘말려 생긴 노여움 풀던 곳 ‘가야진사’


낙동강변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는 본처 용과 첩으로 들어온 용의 싸움에 휘말린 조 사령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조 사령이란 사람의 실수로 첩룡을 죽여야 하는데 잘못 칼을 휘둘러 남편 용인 황룡을 죽였다. 그러자 본처인 용이 마을에 재앙을 내렸고, 그저 마을 사람들은 용의 마음을 달래느라 아주 오래전부터 용신제를 지내오고 있다는 이유 있는 스토리가 전해져 온다.



가야진사 제단을 둘러싼 네개의 홍살문.



제단에서 바라보면 첩첩이 문을 통과해 위패를 모신 가야진사가 보인다.



가야진사.


먼저 양산문화원에서 펴낸 ‘양산고을 옛이야기’ 책에 소개된 내용 중 이야기 부분만 옮겨 읽어보자.


옛날 양산 고을을 옥당이라 칭할 때의 이야기다. 양산군수의 명을 받은 조 사랑이 경상감사가 있는 대구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현재의 가야진사 부근인 원동 용당리로 접어들 무렵부터 여인 하나가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용당리는 인근 나루터로 인해 사람 통행이 잦은 곳이라 조 사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해질 무렵 주막에 들어선 조 사령은 인근 나루터로 북적이던 주막이 웬일인지 썰렁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모에게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주모가 난처한 얼굴로 주막이 썰렁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요 며칠 새 주막에서 묵은 남정네들이 하루에 한 명씩 야밤에 커다란 구렁이에 놀라 기절했다는 것이다.


방안에서 쉴 준비를 하고 있던 조 사령은 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끌려 밖을 내다봤다. 옆방으로 들어가는 여인은 다름 아닌, 낮에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여인이었다.


꺼림칙함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조 사령도 밤이 깊어지자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여인이 들었던 옆방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에 조 사령은 잠을 깨고 말았다.


밖으로 나간 조 사령은 용기를 내어 여인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자 안을 들여다 본 조 사령은 깜짝 놀라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당연히 방 안에 있어야 할 여인은 보이지 않고 흡사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형상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벌벌 떨고 있던 조 사령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움직이려 하는데 놀랍게도 구렁이 형상의 괴물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용이 되어 승천하기 직전의 이무기로 저 앞 황산강 용소에 사는 황룡의 본처라며 간곡한 청이 있으니 제발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용소에는 자신과 남편 황룡, 첩룡 세 마리 용이 살고 있는데 황룡이 첩룡의 꾐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야 할 여의주를 첩룡에게 주고 함께 승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일 정오에 남편 황룡과 첩룡이 용소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할 터이니 첩룡을 죽여달라고 했다.



가야진사에 모셔진 황룡과 청룡들을 그린 삼룡도.



가야진용신제전수회관 앞에 세워진 삼룡석상.


조 사령은 신과 마찬가지인 용을 죽일 만한 용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이무기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면 복이 따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날 조 사령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배를 저어 용소를 찾았다. 정오가 되자 이무기의 말처럼 황룡과 청룡이 강물 위로 솟구치며 싸우는 것이었다. 조 사령은 싸우는 용들을 향해 준비해 간 장검을 힘껏 내리쳤다.


커다란 비명을 울리며 용 한 마리가 강물로 떨어졌고 주변 강물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어제 만난 본처 용이 청룡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본처 용은 울부짖으며 조 사령이 죽인 것은 첩룡이 아니라 남편인 황룡이라는 것이었다.


화가 난 본처 용은 조 사령을 원망하며 용궁으로 함께 가야 한다며 조 사령을 끌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뒤따랐다. 마을 사람들은 용이 노한 것이라고 믿고 해마다 용신제를 지냄으로써 재앙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가야진용신제다. 제를 지낼 때는 돼지를 용소에 던지면서 “돼지가 가라앉습니다(沈下豚)!”하고 세 번을 반복해 외치며 용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용신제의 제상에는 반드시 메 세 그릇과 잔 세 개, 탕 세 그릇을 놓는다.


그것은 용소에 황룡 한 마리와 청룡 두 마리가 살고 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가야진사 사당 내의 제상 위에는 가야진지신(伽倻津之神)이란 신주 위패가 모셔져 있고, 뒷벽에는 세 마리 용의 모습이 그려진 삼룡도가 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가야진사에서 지내는 용신제는 매년 음력 3월 초 정일(丁日), 즉 ㅅ3월 들어 첫 번째로 맞는 정()자가 들어가는 날에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이 음력의 그날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터라 근사치에 있는 날 중에 휴일을 잡다 보니 양력 55일 어린이날에 하게 됐다.



용신제 제물로 바쳐지는 돼지.



가야진지신’이란 글이 새겨진 위패.



용신제례가 끝나면 위패는 다시 덮개를 닫은 뒤 가야진사 안에 모셔진다.


가야진사의 용신제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다. 가야진사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신라의 종묘는 제2대 남해왕이 시도대왕 혁거세의 묘당을 세워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라고 한다. 신라는 대사, 중사, 소사로 나누어 지냈는데 가야진 용신제는 중사에 해당한다.


중사는 제후가 왕명을 받들어 명산대천에서 올리던 제사로 오악(산신), 사해(해신), 사진(지신), 사독(천신)으로 구분되는데, 가야진용신제는 사독에 해당한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던 가야진용신제는 일제강점기 홍수로 사당이 헐린 데다 일제가 제례를 금지해 어려움에 처했지만 마을주민들이 밤에 몰래 천태산 비석골에 가서 제사를 지내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2010년 한국문물연구원에서 발굴작업을 했는데 이곳에서 조선 초기 각종 분청자기를 다량 발견되었으며 이 유물들은 양산박물관에 옮기어 전시하고 있다. 마침 지난 5일 용신제가 있는 날이었다. 용신제는 부정가시기, 칙사맞이굿, 용신제례, 용소풀이, 사신풀이 등 5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신제 행사에 관해선 다음 기회에 풀어보기로 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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