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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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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6일 오후 7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 우려대로 참석자가 별로 없다. 스무 댓명 정도 왔을까. 낯익은 얼굴이 몇몇 보인다. 박종훈 전 교육위원이 보이고, 정혜란 전 논설위원, 그리고 독자모임 운영위원들. 아, 김용택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단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는 전성은 전교장이 지은 책의 이름이고 이날의 주제는 교육에서 사랑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정했다. 전 교장은 거창고등학교 교장시절의 이야기와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사례로 풀어내며 진정한 학교의 역할과 학교가 정권으로부터 분리돼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메모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학교 교육은 교육 중의 하나다.
중국에서 황실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한 것이 기원이다.
그래서 학교는 국립에서 출발했다.
학교의 역할은 장교나 관리 양성소로 시작했다. 이 목적 이외의 이유로 학교를 세운 일은 없었다.
학교가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세기도 안 됐다.
축구 골을 넣고 성호를 그리는 것은 하면 안될 일이다. 골먹은 사람도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이 골을 넣는 쪽에 사랑을 베푼 것이란 말인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기억하는가. 독일과 프랑스 전쟁때 알사스 로렌지방에서 있었던 일을 쓴 것이다. 전쟁에서 기독교 사제가 하느님에게 뭐라고 기도를 해야하는지 고민을 담았다.
영화로도 나온 명작 <서부전선 이상없다> 역시 전쟁 속에서 군인의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참호 속에 숨어있던 한 병사가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군인,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지 못한 채 입을 막고 칼로 찔러 죽여버렸다. 그의 품에서 꺼낸 사진 속에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발견한다.
히틀러 리벤지(?)에선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고등학교 교장이 아이들을 데려다놓고 연설을 한다. "국가를 위해 애국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아이들 머리 속에 애국심이란 것을 불어넣어 전쟁의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게 교장이 할 일인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같은 작품도 괜찮은 작품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반 기독교주의 학자들인데 학교 교육 문제를 교육본질의 문제에서 접근했다.
우리나라엔 교육부장관은 있지만 교육부가 없다.
일본은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부장관은 몇십년이 되도 바꾸지 않는다. 그것도 초 중 고교 교장 출신이 한다.
전두환 때 교육부엔 피바디 마피아란 말이 성행했다. 진주마피아라고도 했다. 미국 피바디대학만 졸업하면 한국교육개발원 지내고 교육장관으로 나아가는 것은 거의 코스였다.
박정희 집권후 사립학교 규제법을 되살렸다. 의무교육을 강조하면서 국가가 학교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옛날 성균관 대학교는 왕조가 관리와 군대를 양성하고자 만든 기관이다.
국가가 국민을 장악할 때 1순위가 종교, 2순위가 교육, 3순위가 문화다. 그래서 학교가 불행한 것이다.
미국 학교보다는 유럽의 학교가 덜 불행하다.
교육행정하는 사람은 학교와 상호 보완적 조직으로 하는 것이 이 땅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시키는 대로 하면 예산을 잘 주고 아니면 불이익받게 하는 것은 문제다.
교육지원청 조직 대폭 줄여야 한다.
교육부, 교육청, 교육지원청 3단계가 있을 필요가 없다. 이런 계층적 조직은 통치와 감시를 수월하게 하려는 일제의 산물이다. 박정희때엔 몇 통 몇 반하는 조직까지 만들지 않았나. 국민을 감시하기 좋은 시스템이었다.
인사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잡아돌리던 것을 지금도 그런다. 잡아돌릴수록 뭔가 생기니까 그런것 아닌가. 두가지 원칙이 있었다. '고향엔 발령내리지 않기' '2년마다 한번씩 돌리기'


학생들의 재능과 소질을 숫자로 나타낸 것은 가장 저급한 정보다.
나는 늘 시집을 지니고 다니며 잘때에도 머리맡에 둔다. 요즘 정현동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는데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학생을 평가할 땐 이런 내용을 적어야 한단 얘기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학교를 국가로부터 독립시키는 일과 아이들 재능과 소질 관심을 최대화시켜야하는 일이다.
이발사 하고 웨딩사진 찍는데 대학이 무슨 소용이냐?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올렸더니 전문대학에서 난리가 났다.
대학을 위해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이들을 위해 대학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대학도 학년제에 문제가 많다. 1년만 공부해도 되는 과목을 4년이나 다니게 하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또 10년이 필요한 공부면 10년 학년제로 해서라도 제대로 배워 사회에서 써먹도록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장한나가 중학교를 졸업 안했는데 대학을 들어가려니 안된다는 것이다. 검정고시를 쳐야 갈 수 있다. 이런 미친 짓이 어디있나? 11살에 뉴욕 줄리어드대에 특별장학생으로 입학했는데 한국에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쳐야 음대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게 어떻게 아이들을 위한 일인가. 빨리 클 수 있는 애는 빨리 크게 해야 한다.
경남에 1년동안 200명의 의사가 필요하다면 도 단위로 적정수를 정해 국가고시를 치게 해서 일하게 해야 한다.
미국의 작은 주는 이웃의 주와 자격을 호환할 수 있게 협약해서 운영한다. 이러니 확실히 분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003년 전국에 교육청 50개만 하자고 제안했더니 4월이 선거라고 "넣어 두시오"하더라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국제변호사 하나도 못내고... 대체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어. 그때 국제변호사가 1400명 정도 있었는데 연봉이 20억 정도였다.
서울대에 농업경제학과, 농업화학과란 것들이 있는데 경제면 경제고 화학이면 화학이지 앞에다 농업은 왜 붙였는지 몰라. 몇몇을 위해 억지로 과를 만든거다.
말이 농업이지 졸업한 사람중에 농업하는 사람 한 명도 없어.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겁니다. 젊었을 땐 아이들 쥐어박고 하지만 나이 들면 안 그렇다.
아이들 문제 생기면 쫓아가서 손발 빌고 데리고 와서는 니죽고 나죽자하면서 속터져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교육학을 한 사람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면 안 된다. 돈받고 논문 써주면 안된다.
교육학을 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따뜻한 세상을 만들까 고민해야 한다.
역사 과목의 목적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 옆의 나라는 나쁜 나라 하는 인식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가르치면 안된다.
국사만 공부할 게 아니라 동북아사를 해야 한다.
또 초등학교에 사회과목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정당이나 정책에 대한 판단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정리하자면, 교육 내용을 다섯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숫자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은 범죄다.
2. 모든 교육은 직업 직능교육이다. 의사 변호사 교육은 직업교육 아닌가?
3. 교과서를 국가가 지배하지 말라.
4.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교육과정 정책을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
5. 최소한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우리의 장단과 가락을 가르쳐야 한다.

엄밀히 따지면 사립은 없다. 유럽에서 말하는 사립이 없단 얘기다.
우리나라는 학교가 교육청의 평가를 받는데 미국은 교육청도 평가를 받는다. 평가기관과 교육청 학교가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움직인다.
말하자면 욕지도의 상황은 욕지도 사람이 제일 잘 안다. 그것을 교육행정기관이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스가 복지비를 많이 써서 망했다는 사람이 있다. 부자들이 세금을 안 내고 한 정치부패로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안 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자료도 없이 아무렇게나 떠들어서야 되겠는가.
정치는 정의를 구현하는 게 목적이고 경제는 생산성을 높여 고루 잘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권력은 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힘, 돈, 정보(지식)은 언제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언론의 사명은 정보를 나누어가지는 데 있다. 나누어 가지는 것이 사랑이다.

공부를 잘하고 게다가 부잣집 이이면 학교가 따로 관심을 두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없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게 교육이고 사랑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직업 직능 교육에 500억 쓰자고 했더니, 산자부에 3000억이나 남는 예산이 있으면서 반대하더라. 그런데 서울대에서 한 BK21사업엔 2000억을 써더라.
없는 아이들 챙기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

역사는 억압에서 자유로,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착취에서 공존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웅들에 의해 역사가 변해온 것이 아니다.
거창에 독서회가 있는데 그냥 책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 것 뿐이지만 세월이 흐르니 인식이 달라지더라. 유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30%대로 떨어진 것이다.
서슬퍼런 시절 두려워서 골방에서 숨어지낸 사람과 이런 무리에 의해서 역사는 변해온 것이다.

우리의 교육 미래, 그래서 희망적으로 본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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