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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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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3일 경남도민일보.

"1975년 8월 17일날 1차로 목이 댕강 날아가고, 2년 전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8월 11일 목을 댕강 쳐서 저는 해임된 전과가 두 번 있습니다."

수호투쟁위원회 [東亞自由言論守護鬪爭委員會]  
  
 1975년 3월 18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에서 강제 해고된 100여 명의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등이 결성한 자유언론수호단체.
 
구분  언론단체 
설립연도  1975년 
설립목적  자유언론을 수호하고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쟁 
주요활동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 기관원 출입금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  
 
동아투위라고도 한다. 1974년 1월 8일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 2호로 인해 유신헌법을 반대, 부정, 비방하는 모든 행위를 보도할 수 없게 되자, 그해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이 동아일보사 사옥에 모여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였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압박하여 광고를 끊게 하였으나, 대신 전국에서 밀려든 유료 격려광고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장기적인 광고 사태와 정부의 탄압으로 결국 19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에 앞장섰던 130여 명의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등이 강제 해고되었다.

이들은 다음날인 18일 언론회관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 기관원 출입금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을 요구하며 자유언론을 수호하고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였다.

특히 1978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을 맞아 발표한 ‘진정한 민주·민족언론의 좌표’와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 사건 일지’는 언론을 탄압하는 모든 제도와 법이 철폐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제도언론에 맞서 언론의 사명을 일깨운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활동은 한국의 언론사와 민주화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1980년대 민주언론협의회와 《말》지, 나아가 국민주를 토대로 한 신문인 《한겨레》 창간에 밑거름이 되었다. 2001년 2월 19일 정부에서는 이 위원회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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