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89)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0)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04-19 00:0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아마도 초겨울 쯤이었을 것이다. 내 품에는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안겨있었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우게 된 때문인지 늘 안고 귀여워했다. 아마도 이 때, 고양이랑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어머니께 부탁을 했을 것이다.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는 것이 아니면 사진기를 장농 깊숙한 곳에서 쉬 꺼내지 않는데 이날만큼은 어머니도 내 심정을 이해해주셨다. "얼마나 좋았으면..."

 

고양이의 이름은 '나비'다. 정말 흔한 이름이다. 지금은 고양이 이름을 이렇게 유치하게 짓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당시 고양이 이름은 '나비'를 비롯해, '살찌니' '복실이'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개 이름 중엔 '메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개와 고양이 이름을 시대적으로 분석해보아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 때는 '두환'이라는 개이름이 사람들 입방아에도 오를 만큼 널리 지어진 적이 있었던 것처럼 개이름이 역사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단정짓진 못하리라.

 

모든 새끼들이 그렇겠지만 '나비'는 정말 귀여웠다. 접시에 담긴 우유를 핥아먹을 때도, 내 검지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본능적으로 이빨로 깨물 때에도, 어머니가 짜시던 털옷 실타래를 가지고 놀 때에도 '나비'는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친구였다.

 

'나비'가 5개월 쯤 되었을 때부터 서서히 나를 실망시키기 시작했다. 쥐를 잡아다가 장농 아래에 들어가 쳐박아놓질 않나, 멀쩡한 응아용 종이상자 놔두고 장농 밑에 들어가 실례를 하지 않나, 밤만 되면 담벼락 타고 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내질 않나 정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났다.

 

한 번은 좀 얄밉다고 잡아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야단을 쳤는데, 고양이가 야단친다고 알아듣겠냐마는, 아 이놈이 손가락을 세게 깨무는 것이 아닌가. 저를 그만 괴롭히고 놓아달라는 얘기겠지. 이런 배신이 있나. 맨날 밥 챙겨주고 생선 반찬이 올라오면 일부러 살점을 남겨서 저 주고 그랬는데, 이놈이 정말 이럴 수 있나 싶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올랐다. 그래서 부엌으로 집어던졌는데 얘가 발라당 뒤집어지면서 죽어버린다.

 

나는 순진하게도 죽은 줄 알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다가가니 이놈이 벌떡 일어서서 달아난다. 뭐야. 미안함에 이은 야릇한 배신감. 그때부터 '나비'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당 한구석에 마련된 제 집에도 대중없이 나타나 먹을 게 있으면 먹고 가고 없으면 그냥 조금 앉았다 가곤 했다. 동생과 나도 학교 갔다 오면서 '나비'가 보이면 한 번씩 보아줄 뿐 끌어안고 쓰다듬고 하는 옛날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놈이 어머니의 눈밖에 나면서 명줄을 재촉하게 되었다. 한 날은 밖에서 큰 쥐를 잡아와 부엌에서 회를 친 것이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나비'를 더 이상 집에 둘 수 없다고 여기신 것이다. 며칠째 '나비'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었는데 보수동 개다리골이라고 개나 고양이를 잡아 고기나 중탕을 하는 동네에서 동생이 '나비'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 얘길 듣고 같이 가보니 정말 '나비'가 철망 상자 속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봐도 반가운 기색이 없다. 생뚱맞은 표정에 우리를 보고도 모른 체 하는 건지 삶을 체념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미동도 없다.

 

저 혼자 길거리 돌아다니다 개장수에게 잡혀간 건지,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부엌사건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동생과 나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께 물었다. 팔았단다. 어떤 할매한테 팔았는데 그 할매가 개 중탕집에 다시 웃돈 받고 팔았을 것이다. 동생과 나는 어머니께 '나비'가 불쌍하니까 다시 사자고 떼를 썼다. 하찮은 고양이 불쌍하다고 생돈을 더 쓸 만큼 여유있는 생활이 아니기에 어머니의 대답은 단호했다. '절대불가.'

 

우리도 포기해야 했다. 대신 매일같이 개다리골 '나비'가 갇힌 곳으로 찾아갔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던가. '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중에 하나였다. 중탕이 되었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거나... 동생과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어머니가 그렇게 야속했던 적도 없었다. 그 이후로 참 오랫동안 우리는 집에서 짐승을 키우지 않았다. 정은 붙일 때보다 뗄 때가 더 힘들어.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