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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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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오늘 아침 11시에 시험을 쳤는데 그 결과가 인터넷으로 오후 2시에 발표가 되는 세상이다. 부산 금곡동에 있는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와 점심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q-net 공단사이트에 들어가 내 수험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점수까지 다 나온다.

 

아침에 부산 금곡동 시험장에 가느라 약간 분주하게 움직였다. 북면에 계신 어머니께선 부랴부랴 지원이 본다고 일찌감치 버스타고 오셨고 나는 아이들 다 보내고 나서 갈 채비를 했다. 채비랄 것도 없지만 가방에 어머니께서 다려주신 민방 감기약을 한 통 넣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 나에게 시험을 잘 쳐라는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은 어머니 한 사람 뿐이다. 어제 아이들에게도 오늘 아빠가 부산에서 시험을 친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부랴부랴 집을 빠져나가기에만 바빴다.

 

가는 길에 같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짝꿍 오지훈 씨를 태웠다. 벌써 한 달이나 되었는데 아직 호칭이 없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다보니 마땅히 부르기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열살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은 그냥 날더러 형님이라 쉽게 부르는데 오지훈 또래의 사람들은 성인이라도 나와 스무살 넘게 차이가 나다보니 형님이라 부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맞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름 뒤에 씨를 붙여주면 그만이지만... 스무 살 넘게 차이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반이다보니 어색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네비게이션인지 바보게이션인지 그놈 믿었다가 하마터면 두 사람이 시험도 못 치를뻔 했다. 금곡으로 가야할 것을 거의 구포쪽으로 방향지시를 하는 바람에 10분은 넘게 지체되었다. 그러잖아도 빡빡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는데. 업그레이드를 하든지 폐기하고 손이게이션이나 입이게이션에 의지하는 수밖에.

 

산업인력공단 부산지사에 도착하니 반 동무들이 걱정 반 반가움 반으로 반긴다. "왜 이리 늦었어요?" "공부 잘 하는 사람은 이리 늦게 와도 돼요?"

 

4층 강당에서 3개 반으로 나뉘어 시험을 치렀다. 총 150개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1반 맨 오른쪽 맨앞 자리에 앉았다. 좌석에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는데 진해 석동에 사는 홍진익(오지훈보다 1살 작다)서 내 자리를 확인했는지 알려준다.

 

앞 교탁에 선 사람은 시험에 관련된 사항들을 알려준다. 이 시간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목이 따가워 기침을 몇 번 한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제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사우디 전을 괜히 봤나 싶을 정도로 몸이 피곤했다. 잠이 안 와서 거실 식탁에 앉아 문제집에 있는 문제 별표해 놓은 것 10개를 딱 보고나서 잠이 쏟아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쨌든 시험을 치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

 

시험지를 받고 시작하기 3분 정도 여우가 있었다. 미리 문제를 풀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어차피 60문제 30분도 안 되어 다 풀 텐데 비겁하게 먼저 푼다고 덕될 것도 없으니까. 모르는 문제가 갑자기 알아지는 것도 아니고.

 

예상대로 30분 만에 다 풀었다. 문제지에 파란색 볼펜으로 답안에 동그라미를 치며 풀어나갔는데 답안지에 사인펜으로 색칠을 할 때 실수를 했다. '다'가 답인데 '다'자의 디귿 윗부분이 파란색 선과 맞물려 '나'자로 보였던 것이다. 성급하게 답안지 '나'에 마킹을 했다가 아차 하고 손을 들어 교체를 했다. 손만 드니까 감독관은 알아서 새 답지를 가져왔다. 나중에 나와서 보니까 세번이나 바꾼 반 동무도 있었다.

 

30분만에 시험지와 답지를 감독관에게 제출하고 나오니 벌써 나온 사람들이 답안 체크를 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내가 나오니 나에게 물어본다. 그런제 질문이 이상하다. '무슨 문제에 답을 뭐라고 적었어요'라고 묻는게 상식인데 '무슨 문제 답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내가 채점관도 아니고 강사도 아닌데...

 

그런데 결론은 학원에서 배운 게 많이 나왔다. 아마도 배운 것을 그대로 기억한 사람이라면 많이 틀려도 두 세문제 놓쳤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김회석과 윤성민이 내 차에 합류했다. 이번엔 네비게이션을 믿지 않고 김해에서 새로 난 도로에 차를 올렸는데 진해로 통했다. 하는 수없이 안민터널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아본 것은 합격 불합격 여부였다. 주민등록번호과 이름을 치니 '합격'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는 그것보다 내가 몇 점이나 받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합격이야 떼어논 당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스무개 이상 틀려본 적이 없으니까. 서른 여섯개만 맞춰도 합격이니까.

 

점수를 알아보기 위해선 수험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함께 입력해 넣어야 한다. 물론 이름은 당근이고.

 

91.66점. 60문제로 환산을 해보니 55개 맞았다. 흠, 잘한 편이다. 공부하면서 친 모의고사의 평균점수 이상이다. 처음엔 100점을 받아보려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생소한 분야의 공부이다보니 한달만에 100점을 받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며칠 전 100점의 꿈을 접으니 마음이 편했다. 시험치는 날도 문제집 하나 들고 가지 않는 여유도 부려보고 말이다.

 

아이들이 옆구리 찔린 채 '와'한다. 짜슥들 저거는 한 번도 평균 90점을 넘겨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아내는 "100점 못 받았나, 에이"한다. 그러면서 우리 남편 머리 좋네 한다. 이로써 나의 단기 기억력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겠다 자신이 생긴다. 대학도 고3때 3개월 공부해 들어갔으니 말이다. 참 더 단기 기억이 좋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대학 때 혼자서 대사를 나뱉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2개월 반 연습해서 공연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을 치거나 연극이 끝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 하루 공부해서 합격한 운전면허 필기시험(83점 받았다), 물론 20년이 되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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