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이, 나무토막에서 돼지를 발견하다
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3월 27일 진동 진관사에 어머니와 함께 갔다. 오랜 만에 지원이를 데리고 절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날씨가 너무 좋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모시고 갈 때마다 자가용을 이용했었는데 이번에는 절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마다 지원이를 두고 한마디씩 한다.
"아이고 예쁘네. 엄마랑 왔나? 할머니랑 왔나?"
아빠가 옆에 앉아있는데도 아빠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평일 낮에 아빠가 절에 가는 버스에 오른 게 자연스럽지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지원이는 아직 대답을 못한다. 즐겨 듣던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즐겨 듣던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몇 살이고?" "......" 아마 아빠의 혼란스런 상태를 알아차리고 그 할머니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한지도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리니 지원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광경이 강아지 집이다. 강아지 집보다 훨씬 큰 불상이 세 개나 있건만 그건 지원이의 관심밖이다. 가까이 가니 강아지가 아니라 큰 개다. 짖는 소리부터 변성기를 훨씬 지난 티가 난다. 그래서인지 지원이는 그 개의 짖음에 대꾸를 할 때도 '멍멍'하지 않고 '월월'한다.
할머니가 한참 불공을 드리고 있는 대웅전 옆길로 올라가자 자그만 암자와 돌로 만든 불상들이 있다. 갑자기 지원이가 소리쳤다.
"돼지, 돼지!"
지원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 돼지가 한 마리 지원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돼진 줄 어떻게 알았어? 정말 닮았네."
지원이는 이제 겨우 그림책에서 각종 동물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아, 그러고보니 TV만화에서 돼지의 응용된 그림을 보긴 했겠다. 그래도 나무토막을 보고 돼지를 연상한다는 것은 '대단한 걸'.
나무토막은 누군가 일부러 돼지 모양을 알아차리도록 배치한 듯 놓였다. 스님이 그랬을까? 아니 그랬을리는 없겠다. 노스님까진 아니라도 연세가 상당한 분인에 이런 유치한 배려를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소행이라고 여기는 수밖에.
지원이는 돼지모양의 나무토막을 한참 만진다. 썩은 나무여서 혹시 세균감염이라도 될까봐 걱정이 된다.
"지원아, 내려가자!"
"아니, 아니. 재밌어."
'재밌어' '멋지다' '예쁘다' 이런 말들을 요즘 부쩍 많이 한다.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두 글자로 된 단어만 표현했는데 이젠 간단한 동사와 형용사를 사용할 줄 안다. 물론 아직 두 단어 이상을 한꺼번에 조합해서 말하진 못한다. 겨울 할 수 있는 말이 '엄마 어디?' '언니 어디?' '오빠 어디?' 정도다.
마냥 집에 있는 것보다 데리고 어디든 나갈 때 어학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낀다. 집에 있을 때엔 컴퓨터나 TV를 가리키고 "이거 뭐야?"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밖에 나가면 경치가 좋아도 "와, 멋지다."하거나 싸늘하면 "어, 추워." 동물병원을 지나며 강아지를 봤을 때 역시 한 마디 한다. "아이, 귀여워."
그런데 오늘처럼 햇살 좋은 날, 언니 오빠도 일찍 집에 온 이런 날 '방콕'과 '방글라데시'에 죽치고 앉았다. 언니 오빤 공부하고 우린 낮잠자고...
어제 지원이 낮잠 안 잔 대신 일찍 자는 바람에 어찌된 줄 아니? 깊게 잠들어야 할 한밤중에 깨어 우는 바람에 엄마 아빠는 선잠깨어 잠 못 들어 겨우 세 시간 정도밖에 못잤다는 사실을. 졸지에 아침 반찬을 아빠가 했다는 거 아냐? 오늘은 낮엔 푹 자거라. 안 놀러가도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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