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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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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연극 강좌. 문종근 객석과무대 예술감독의 강연이다. '마산연극의 이해'. 마산의 연극 역사는 종종 공부를 해왔던 터라 복습하는 한 달이 되겠다.


강의는 산대도감이 있던 시절부터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가무악탈놀음을 다루던 조선시대 관청.

그래서 신파극이 생기기 전까지 판소리, 탈춤, 창극 등이 공연예술로 많이 시연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들어서면서 일본이 국내 곳곳에 신파극단을 만들어 공였했고 일본인 중심의 신파극은 임성구에 의해 조선인 중심의 신파극단이 생긴다.

이후 현대 사실주의 연극의 시작이랄 수 있는 토월회 출범. 몇 개 작품을 올리지 못하고 문을 닫음.

현대극의 본격적인 시작은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또한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체된다.

이 시기 유치진도 압력에 못이겨 친일행적을 남기게 된다.




지금까지는 전국 차원의 연극사를 개괄 정리했다.


20년대부터 마산에서 연극이 시작됐으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떤 연극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한하균 선생, 연극 때문에 중풍. 사모님이 연극 자료 모두 없애버려.

그래서 연극은 포스터나 팸플릿, 티켓 등의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당시 신문에 난 기사에 의해 기독교 관련 연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20년대 마산지역에 와서 공연을 했던 배우는 김기진, 김석원, 마해송, 홍난파, 홍해성 등.


악극단 공연.

막간극. 무대 세트 바꾸는 과정. 30분간 공연. 이 때 윤심덕 노래. 김우진 희곡 작가. 

사의 찬미 1920년 레코드 취입. 도나우강의 푸른 물결 곡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여 제목을 붙인 노래. 7월에 취입. 발매.

8월 간부연락선 타고 돌아오는 배에서 유서를 남기고 동반투신.


1932년 극예사 단체 만듬. 김여찬, 이훈산 발기. 천전막, 윤종화느 박성욱, 기무산.

주축멤버는 이광래, 김형윤, 서성삼, 이일래, 옥준수, 강폐정, 조영란 정진업, 김연옥, 이덕상, 박훈산 등.


이광래. 호는 온재. 마산 연극의 1세대. 이광래의 형 이일래. 산토끼 작곡가. 

일 와세다대학에서 연극공부. 

1935년 신춘문예 '촌선생' 당선. 서울행. 이때 극예술연구회 입단. 유치진과 주축멤버로 활동.

평생 40여 편 작품 만들어. 사실주의, 상징주의 등 다양하게 작품활동.

6.25 딸 잃고 학교에서 후진양성.

1950년 서울서 원방각 극단 창단


1940년대. 마산 문창교회 청년회 이일래, 이년우, 김수돈, 정진업 등 계몽운동 전개. 주로 성극 공연. 함세덕의 '추석'도 공연.

1950년대. 51년 국립극단 배우들이 마산으로. 김동원(김세환 아버지) 다방 만들어 마산 인물과 친분 쌓아.

김수돈 연출 <군상> 공연. 정진업, 임향, 복혜숙, 김영옥 등 출연. 국제극장.

얘들이 서울로 돌아가서는 잠시 공연활동 주춤.

마산의 연극인들이 학교에 들어가 연극활동. 마산상고, 마산고, 마산여고, 제일여고, 성지여고, 창신농고 연극반 창설.

1958년 극예술연구회 창단되면서 연극 활성화.

정진업. 문장지에 '카튜샤' 추천 받아 등단. 화인 김수돈도 추천받아 등단.

이광래가 만든 황금좌에 들어가 만주 순회공연 참여. 이후 마산서만 연극활동.




김수돈, 창신학교에서 교사생활. 니혼대 다시 공부하러 갔다가 1942년 3월부터 마산서 유치원 교사로 활동. 

김수돈 일화. 러브 스토리. 다양한 학교에서 교사생활. 제일여고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 7년. 

정진업과 함께 시인이면서 연극. 한때 좌익으로 몰려 도피생활.


이일래, 김수돈, 정진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한하균 선생의 경남도민일보 연재물 '오동동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http://dino999.idomin.com/956


신파극, 기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60대 접어들면서 마산 연극에 공백기 발생. 62년부터 배덕환, 한하균 등이 마산예술인극장 창립. 3세대 연극인들 본격적인 활동 시작. 

배덕환 교수의 아들은 마산교구 주교로 있어.

63년 마산연극협회가 만들어져. 산하에 극단 상주 구조로 전환.

64년 <영웅과 병사>

69년 <나폴레옹과 이발사>


70년대 들어와서 현대 연극 활성화 시기.

70년대 중반 이후 마산 연극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져.

1971년. 해인대학이 경남대로 개명. 

창원연극은 80년대 이후 개진.

이 시기 4세대라 할 수 있는 이상용 등장.

이상용 작가, 이종일 연출가

75년 2월. 마산가톨릭문화원 지하 백랑다방에서 '마산데아트르' 동인극회 만들어 <공모살인> 공연. 하나 하고 해체. 이상용 징집으로.

76년 이후 주도적으로 대학극이 이끌어가는 시대. 마산연극의 전환점이랄 수 있는 시기.

마산 출신 서울활동 연극인, '마산학생연극회' 신용수, 하영화, 신현숙, 강상훈. 김진식 주축.

유신독재 시절. 연극운동으로 시대에 항변하는 시기이기도.

이들에 의해 마산간호전문대 극회 1976년 5월 창단, 마산대 극회, 창원전문대 극회 등등 공연.

마산학생연극회 주로 번역극 공연. 

1977년 5월 경남대극회 창립. 최태황, 이종일, 현태영, 문종근 등

1977년 77연극동우회. 정해완 연출. 서울서 청포도극회 출신. 77은 1회 공연으로 해체.

77년 또 하나의 중요한 극단인 불씨극회 창립. 가톨릭여성회관 소속. 신용수, 안병윤, 김경수 무대디자이너 등 노동자들이 참여. 1983년 극단 불씨촌으로 개명. 86년까지 활동.


1980년 극단 무대예술 창단.


문종근 첫작품 <할멈들의 발톱> 8명 출연. 김형사 역. 첫날 연습. 짧은 문장. 18개. 3개월 연습. 하루 4시간. 처음 리딩 시간. "야, 들어와. 안자. 이름이 뭐야? 주소? 너, 도둑질했지? 너 왜이래?" 라고 해야하는데 니" 와이래?" 하는 바람에 관객 웃고. 연출, "다시 해!' 목소리 약해서 그러나 싶어 더 크게 "야, 와이래?" 그래서 배우 꿈 접고 연출 공부. 당시 연출기법 가르쳐주는 사람 없어 독학. 86년 극단 마산 들어가 계속 연출작업. 2000년도 나와 객석과 무대 창단 활동. 총 90여편 작업. 많이 할 때는 5~6편 작업. 아동극 돈이 된다. 그래서 아동하게 돼. 아동극 팀 오전 한바탕 뛰고나면 오후엔 청소년극 연습, 저녁엔 성인극.

대박난 작품 한 편도 없어. ㅋㅋㅋ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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