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지에 실은 경남 연극 두 편
모아진을 구독하고 있는데, 월 1만원. 여러 잡지를 볼 수 있다. 사실 모아진을 구독하게 된 이유가 이 <한국연극>이란 잡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 덕에 월간미술이라든지 공연과 리뷰 등등 다른 잡지들의 글도 간간이 챙겨 읽는 편이다. 한국연극에는 지난 3월부터 경남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전달 20일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다지 많은 연극소식을 챙길 수가 없다. 그것도 월초에 하는 공연들이다. 월 중순이나 말에하는 공연은 확정적이지 못해 싣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월간지의 한계다.
이번 달엔 장자번덕의 '와룡산의 작은 뱀'과 아시랑의 '처녀 뱃사공'을 실었다. 기념으로 내 블로그에 옮긴다.
사천 극단 장자번덕 <와룡산의 작은 뱀>
11월 1~2일 오후 7시 30분 사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뜰 난간에 똬리 튼 작은 뱀 한 마리/ 붉은 비단 같은 무늬 온 몸에 아롱지네/꽃덤불 아래서만 노닌다고 말 말게나/하루아침에 용 되기 어렵지 않을 걸세”
이 시를 읽노라면 지은이의 기개가 넘쳐남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왕순, 고려 제8대 왕 현종. 그가 5~6세 되던 해 사천 배방사에 왔다가 뜰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작은 뱀을 보고서 지었다는 시다. 극단 장자번덕이 ‘2017경상남도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으로 준비한 작품으로 사천 브랜드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공민왕이 들려주는 고려 현종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가무백희악극’으로 진행된다. 가무백희악극이란 노래와 춤, 극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연행되는 것을 말한다. 극은 가산 오광대와 만석중놀이 등 남도의 연희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장자번덕은 왜 공민왕을 통해 현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현종은 왕권 확립의 기틀을 세운 왕으로 이때부터 고려왕조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고 봤다. 그러나 고려 말 나라는 원의 간섭으로 90여년 사위국으로 살아야 했고 그 끝에 공민왕이 있어 변발을 풀어헤치고 원의 옷을 벗어던졌다. 반원정책을 펴고 영토회복, 국권회복운동을 펼치자 원은 공민왕에게 폐위조서를 내린다. 반쪽짜리 왕이 된 공민왕은 그 설움을 떨쳐내기 위해 세시풍속이었던 연등회를 준비한다. 연등회는 고려 태조 때부터 정월 보름에 거행되다 987년 성종 6년에 중지된 행사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1364년 공민왕 13년, 기씨 형제와 친원파 척결로 기황후의 미움을 사 원으로부터 폐위조서를 받은 공민왕, 백성의 사기를 살리기 위해 전국 규모의 연등회를 기획한다. 연등회의 주제는 ‘결(結)’. 표면적으론 맺음의 결이지만 원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내고 왕건의 자손으로서 고려의 기틀을 바닥부터 다시 다져서 새로이 ‘완성’하기 위함이 내재해 있다.
공민왕이 연등회 가무백희에 현종을 불러낸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라 권문세족의 눈치가 아닌 민심을 살펴 왕권을 세운 선조 국왕이기 때문이다. 연등회엔 당시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광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입과 몸짓을 통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정가람 작, 이훈호 연출. 중학생 이상 관람 가능하며 관람료는 1만 3000원 균일가다. 문의 : 010-8738-5898.
함안 아시랑 <처녀뱃사공>
11월 3~4일 오후 3시, 7시 30분 함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어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1959년 황정자가 불러 크게 히트를 치면서 애창가요가 됐고 1976년엔 금과은이 이어 부르면서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노래, ‘처녀뱃사공’이다. 이 노래가 지어진 데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를 함안의 극단 아시랑이 ‘주크박스 가무악극’으로 무대에 펼쳐보인다.
처녀뱃사공은 실제 1953년 유랑극단을 이끌던 개그맨 윤부길이 함안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면서 악양나루터에서 배를 타게 되었는데 사공이 처녀여서 사연을 물어본 즉 노래와 같았다. 연극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첨언하자면, 윤부길은 가수 윤항기, 윤복희 남매의 부친이다.
이야기는 윤부길이 이끄는 부길부길쇼 악단이 가야장에서 공연을 한 뒤 야반도주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부길은 선배의 집에서 하숙을 했으나 공연으로 번 돈을 정자 어머니의 암 치료비로 줘버렸기 때문에 하숙비를 줄 처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선배는 쫓아오고 악양나루터에서 도망가듯 배를 탔을 때 사공이 처녀인 것에 의아해하던 부길은 강을 건너고 나서 그 사연을 물어본다.
부길은 처녀뱃사공의 기구한 사연을 가무악극으로 만들려고 하나 노래는 완성했지만 제작자가 나서지 않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공연계를 홀연히 떠난다. 그후 몇십 년이 흐르고 부길의 손자 윤준이 할아버지의 못다이룬 꿈을 이루려고 나선다. 그는 할아버지가 만들려 했던 가무악극 처녀뱃사공을 어떻게 구상해 세상에 내놓을까.
극은 처녀뱃사공 이야기만 담은 게 아니다. 1950년대 악극단과 예인들의 삶에 아라가야 이야기, 거기에 또 망부석 전설도 가미되었다. 극은 전통연희와 차력, 마술, 춤, 노래 등 다양한 장르를 묶어 누구든 손뼉치며 즐기며 관람하는 가무악극으로 구성됐다. 2017년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는 창작초연작이다.
박현철 작, 손민규 연출.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 균일가 1만 원. 문의 : 055-585-8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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