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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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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울지역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털어 '중앙지'라고 부릅니다. 이는 서울이 행정의 중심이 된 후 나머지 지역을 지방이라고 부른 데서 생신 대비 개념입니다.
즉, 왕이 있는 곳이 중앙이고 왕이 관리를 파견한 곳이 지방입니다. 또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중화사상에 매몰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의 황제가 있는 곳이 곧 중앙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왕은 왕이라 하지 않고 황제라고 부르고 옷도 '황색'을 입는 것입니다. 고려나 조선의 왕을 '황제'라 부르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이유입니다. 그나마 근대화가 시작할 즈음 고종이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 주체국임을 천명하면서 '황제' 칭호를 쓴 것은 다행입니다.

어쨌든, 중앙이라는 개념은 지방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고 그 지방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앙'이라는 개념이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지 17년이나 되었는 데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행정 측면에선 아직 중앙과 지방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국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금이 지방세(...), 지역세금이라면 중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라살림이나 자치단체 살림이나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산의 속박을 받지도 않고 정치적 영향력이나 아주 시시콜콜한 간섭마저도 전혀 받지 않으면서도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것이 '언론'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중앙지'며 '지방지'입니까. '지방지'는 '중앙지'의 관리를 받습니까. '지방지'가 '중앙지'에 세금을 바칩니까.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라 해서 모든 분야, 영역에서 왕노릇해야 한다는 인식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왜, 서울은 '올라가는 곳'이어야만 합니까. 옛날엔 서울이 '왕'이 있는 곳이고 행정의 중심이다 보니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이야 아직 서울에 있다마는 행정은 각 지역으로 분산되고 있는 실정이고 기업의 시각으로 보자면 지역에 본사를 둔 업체도 많이 있습니다.

위도 상으로 북쪽에 있어서 그렇다면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이겠습니다. 나중엔 개성으로도 올라가고, 평양으로도 올라가고, 신의주, 블라디보스톡, 북극까지 올라가고, 같은 개념이라면 적도에서 남극까지는 내려가는 것이겠습니다. 그렇다면 개념이 단순화되는군요. '북쪽으로 가면 올라가고 남쪽으로 가면 내려간다.' 이는 지도를 그리면서 위쪽을 북쪽으로 놓고 그린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반대로 남쪽을 위로하여 옛날부터 지도를 작성해왔다면 어땠을까요.

또 북측사람도 우리 민족이니 인식이 비슷할 거라는 전제로 예를 듭니다만, 신의주나 함평에 있는 사람이 평양으로 갈 때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도를 기준으로 하든 행정의 중심이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하든 서울을 무조건 '중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올라가는 곳'도 아닙니다. 앞으로 '상경투쟁' 대신에 '서울투쟁'이라는 표현으로 바꿉시다.

다시 궤도를 바로잡고, '중앙지'라는 표현을 등에 업고 서울신문들이 기고만장합니다. 전국의 각 지역을 '지방'으로 내려다보고 다 장악하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서울도 한국의 여러 지역 중의 하나임에 불과한 데 말입니다. 경남사람들은 경남의 지역신문보다 서울의 '중앙지'를 더 많이 봅니다. 물론 '경품'에 속아서, 혹은 탐나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 소식보다 서울의 소식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중앙집권체제가 워낙 오래 지속되다보니 관성적으로 서울쪽에 눈을 박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아직 무늬만 지방자치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1991년부터 지방자치제가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제도의 정착은 아직 요원합니다. 지역민이 뽑아준 자치단체의 장이나 국회의원들도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아마도 '중앙'이라는 표현을 계속 쓰고 지역사람이 서울쪽으로만 '해바라기'하고 있다면 진정한 자치는 뿌리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지역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다면 '중앙지'라는 개념부터 세뇌받은 머리에서 뽑아내야 할 것입니다. '서울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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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압보도가 있는 곳이면 대부분 이런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맨발 건강지압보도입니다. 본 시설을 이용하시는 시민 여러분께서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속의 장소는 창원시 천주산 천주암 등산로에 있는 지압보도 시설이다. 창원시장 명의로 세워진 이 안내문이 합당한지 의심케하는 장면이다.

창원 의창동 주민자치센터 시민체육시설에도 지압보도가 있다. 그곳은 얼마든지 맨발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있다. 유사한 안내문이 그곳에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산속에 이렇게 흙과 낙엽이 덮인 이곳에서조차 '반드시' 신을 벗고 이용하라면 공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애초부터 이러한 환경을 계산해서 문구를 작성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장소가 지압보도로 적절한지도 미리 면밀히 검토했다면 쓸모없이 예산을 낭비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곳에서 신을 신고라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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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립미술관 앞 각종 철새 모형의 솟대들.

'철새 정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그분껜 죄송하지만 '이인제'씨입니다. 왜그런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그냥 신문이나 TV 뉴스를 조금 많이 봤을 따름인데... 다른 사람도 몇몇은 생각이 날 듯한데 별로 반갑지 않은 인물 쭉 나열한다고 좋은 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분으로 만족하렵니다.

나는 언론이 비겁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당 저당 옮겨다닌 정치꾼들에게 '철새'라는 칭호를 붙여준 데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철새정치인 빼고 '철새' 하면 떠오르는 새들이 있습니다. 저어새, 따오기, 쇠기러기, 뜸부기... 철새들은 이름도 예뻐서 기억이 가물가물 해도 인터넷에 더 찾아보게 되네요.

철새의 종류엔 겨울새, 여름새, 또 나그네새가 있다고 합니다. 겨울새는 가을을 북쪽에서 보내고 겨울에 한반도로 날아와 지내는 철새이고 여름새는 제비같은 새처럼 봄에 한반도로 날아들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남쪽으로 추위를 피해 날아가는 새를 말한답니다. 나그네새는 그냥 봄, 가을 한반도 금수강산에 잠시 날개를 쉬었다 지나가는 철새를 그렇게 부른답니다.

철새들이 계절에 따라 한반도에 날아들어 여름과 겨울을 보내고 돌아가는 것은 본능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돌아가는 것인지 돌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철새에게 국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데 여권보자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나라 새다, 남의 나라 새다 따질 것도 없겠지요. 그저 북쪽에서 왔다갔다 하는 새는 추우면 한반도로 날아들고, 남쪽에서 왔다갔다 하는 새는 더우면 한반도로 날아든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철새에게 우리 언론은 엄청난 불명예를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정체성 없이 주판알 튕겨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오가는 사람에게 어찌 본능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고귀한 생명체인 '철새' 칭호를 부여한 것입니다. 철새들 이 말 듣고 마음 편히 하늘을 날 수 있겠습니까.

철새라 함은 솟대 걸린 가을 저녁놀처럼 아름다운 비상(飛上)이 먼저 떠오르는데 '철새 정치인'하니 변절자, 이기주의자, 기회주의자 등이 철새에 덧칠되는 것 같아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 기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다보니 소설가 전광용의 '꺼삐딴리'가 생각나는군요. 일본이 실권을 잡으면 일본인에 아부해서 한자리 얻고, 소련(구 러시아)의 힘이 세다 싶으니 이젠 쪽에 붙어서 특혜를 받고, 미국의 세력이 강해지니 잽싸게 영어를 배워서 안정적 생활을 영의하며 소위 '지도층' 인사가 됩니다.

그러나 철새는 '꺼삐딴리'가 아닙니다. 그저 날씨에 따라 본능에 따라 거주지를 주기적으로 옮기는 것일 뿐입니다. '철새'라는 말이 '기회주의'와 상통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억울함을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랜 늪의 신비가 매력적인 '우포'에서, 찬바람이 물결을 깨우는 주남저수지에서 어떻게 철새를 좋아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철새'의 본디 의미를 되살렸으면 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에 붙이지 말고 진짜 철새에게 돌려주어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으면 합니다. 음, 그렇다면 기회주의 정치꾼들은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전광용 소설의 주인공 '꺼삐딴리'를 명사화해도 될 듯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 꺼삐딴리는 아예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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