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함께 했던 의자를 떠나다
이젠 주인 없는 의자가 되었지만 빨간 방석이 깔린 낡은 회의용 의자는 참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습니다. 내가 떠나 버린 그 자리에 아직도 그대로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 기억으론 이 의자를 구입한 시기가 1995년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남매일 마산 시절을 끝내고 창원시대를 열었을 때 중앙동에 있는 한국일보 공장 2층과 3층 일부를 세를 내어 들어갔는데, 3층 회의실을 꾸밀 때 샀습니다.
경남매일은 당시 동성종합건설이 인수해 독립채산형식으로 운영되어오다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자금압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98년 한국일보 더부살이를 끝내고 팔룡동 허름한 공장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회의용 의자는 갈 데를 잃고 일부는 업무용으로 일부는 휴게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개가 내게 온 것입니다. 70년대 식당용 의자만 앉았던 내겐 이 회의용 의자가 정말 편하고 좋았습니다. 양 발을 올려도 될 만큼 앉는 부위도 넓었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던 내겐 딱이었습니다.
그러다 98년 10월 부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경남매일은 시월의 마지막 날 3000호를 끝으로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의자와 일찍 이별할 수 있었는데, 엑셀을 조금 할 줄 안다는 '죄(?)'로 퇴직금 정산을 하느라 망한 회사에서도 계속 나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 1999년 5월 경남도민일보를 창간하게 되었는데 석전동 사옥에서 새집살림을 차렸는데 그 때에도 이 의자는 내 의자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양덕동 현 사옥으로 옮겼어도 이 의자는 나를 따라다녔으며 회사 전 직원의 의자를 교체할 때에도 이 의자만은 여전히 나의 엉덩이를 받쳐주는 충성을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11년을 나와 함께 한 것 같습니다. 빨간 방석도 나와 함께 오래했군요. 2002년쯤 이모가 여관을 개조하면서 내게 준 것을 회사에 가져다 쓰기 시작했는데 방석치곤 수명이 참 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방석은 이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처리했겠군요.
신문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때가 1990년 10월이었으니 언론사 생활 만 18년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만큼이나 부서도 다양하게 옮겼습니다. 문화부에, 사회부, 교열부, 편집부, 조사부(자료실), 전산미디어팀, 여론팀, 다시 편집부와 문화체육부….
내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 내가 좋아서 신문사 만들기에 뛰어들었던 경남도민일보. 특히 도민일보 시절은 내 몸에 딱 맞는 '회의용 의자'였습니다. 나이 마흔 여섯에 그 편안했던 의자를 두고 나왔습니다. 언제 새 의자를 찾게 될지 모릅니다. 다른 의자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가정이 내 일자리 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언론사 일을 접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받쳐준 의자가 눈에 아른거리듯 신문사의 일도 여전히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잔상을 지워주겠지요. 하지만 언론개혁을 위해 함께 했던 시절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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