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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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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301건

  1. 2009.01.14 마당에 눈이 내렸습니다
  2. 2009.01.08 4만 7000원
  3. 2009.01.01 출근길에 맞이한 새해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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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자 아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눈 보기 드문 경남지역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눈이 내리자마자 옷도 챙겨입지 않은 채 쫓아나갑니다.

"야, 이놈들아! 옷을 입고 나가야지."

아이들은 눈싸움을 합니다. 마당 바닥에 얇게 쌓인 눈을 박박 긁어서 눈뭉치를 만듭니다. 막내는 이리 저리 언니 오빠를 따라다닙니다. 둘째 머스마는 네 누나에게 연속으로 눈을 던집니다. 누나는 피해다니면서 큰 눈뭉치를 만들어 복수를 하려는데 빨래 뒤로 숨어버린 둘째를 공략할 줄을 모릅니다.

"빨래 뒤로 숨는 게 어딨어? 나가!" 하고 내가 소리쳤더니 머스마는 누나의 사정거리를 피해 마당으로 다시 나갑니다. 누나가 눈을 긁어모을 때만 해도 서너번은 등을 맞췄습니다. 누나는 겨우 한 번 공격에 성공한 듯합니다.

"그만 놀고 들어와라!" 아이들 엄마가 창문을 열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첫째와 막내는 쪼르르 집안으로 들어가는 데 둘째는 여전히 눈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것 뭐하러 모으는데?"
"...."
누나 들어갔는데 니도 들어가라."
"쩝"

눈오는 창원 농촌지역의 한 풍경이었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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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돈 4만 7000원 때문에 아내와 싸웠습니다. 사흘간의 전쟁은 서로의 피를 말리게 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곤혹을 치렀습니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면 집은 그야말로 독가스 가득찬 가스실에 불과했습니다. 사흘간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보, 지난 금요일에 벌어온 돈이 얼마지? 4만 7000원 맞나?"
아내는 드러누워서 TV에 눈을 고정한 채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몰라."
"아, TV만 보지 말고 잘 생각해봐. 가계부 작성하고 있단 말야."
"아,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이 알지. 당신이 돈을 세었잖아."
무성의한 아내의 대답에 서운해졌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돈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대충 살았지만 남편인 내가 전업주부로 가정에 들어앉은 이상 돈의 출납을 분명히 해서 좀 계획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데 아내가 이렇게 나오니 의욕이 꺾였던 거지요.
그래도 한 번 더 서운함을 누르고 말했습니다.
"자, 봐라. 가계부에 번 돈과 쓴 돈을 다 기록하고 있잖아. 내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생각 좀 해봐."
대답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아무리 일하고 와서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직장에 다닐 땐 퇴근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밝은 표정으로 저녁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가계부고 나발이고 만사 귀찮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4만 7000원이 어디로 간 거지?'
혼잣말을 했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과 이웃집에 빌려준 돈, 그리고 이리저리 쓴 돈을 계산했을 때 4만 7000원이 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거야 아내가 모르는 것이니 물어볼 것도 없어 혼잣말을 한 것인데, 아내가 불쑥 화를 내듯 대꾸를 합니다.
"4만 7000원, 뭐?"
내가 묻는 말에 아내의 무성의한 태도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던 터라. 나도 똑같이 대해주었습니다.
"아이다."
"그게 무슨 말인데?"
나는 대답 대신 컴퓨터만 쳐다보았습니다.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돌아누웠습니다.

다음날 방안 기운이 냉랭했습니다. 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던 나는 아내의 출근 시각이 되어도 이불 속에서 아내를 등진 채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유치한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어제 무시당해 찢긴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거실 식탁에서 대충 밥을 챙겨먹고 들어왔습니다.
"안 바래다 줄끼가?"
마음 같아선 바래다 주지 않고 싶지만 출근 시간이 너무 빡빡해 못이기는 체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끼워 입었습니다. 그리곤 말없이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자동차 열쇠를 신장 위에서 집어들고 바로 자동차로 갔습니다. 내가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에 아내는 대문을 닫았습니다. 나는 아내를 옆자리에 태울까 뒷자리에 태울까 고민을 했습니다. 아내를 옆자리에 태웠습니다. 더 큰 전쟁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일터에 다다랐을 때 나는 퉁명스레 한마디 던졌습니다.
"나중에 올 때 버스타고 와라."
어제 늦게까지 아이들과 공부한 것을 아내가 낮에 뭐하고 늦게까지 공부하느냐며 핀잔을 준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날에 목표를 잡았던 내용을 다 못해서 그런 것인데 낮에 공부 안하고 놀았다는 식으로 나오니 무척 서운했습니다. '나는 그래도 아이들 공부라도 시키지만 자기는 집에 있을 때 TV만 봐놓고선...'

출근한 아내는 하루종일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엔 하루에도 예닐곱 건은 보내왔는데 말입니다. 물론 습관 대로 내가 먼저 보내는 일이 없기에 나도 문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일을 마치는 시각에 한 건이 왔습니다.
"데리러 올끼가?"
"갈게."
아내와 함께 돌아오는 중에 서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 궁금했지만 묻고싶지 않았습니다. 얼마를 벌든 관심끄고 생활에 필요한 비용만 달라고 해서 살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날도 나는 아침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챙긴 아침을 아내가 다 먹었을 시간에 맞춰 여전히 무심히 옷을 주섬주섬 끼워입고 전날과 똑같은 동선을 그으며 자동차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일터로 바래다주고 돌아온 나는 핸드폰에 찍힌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아내의 문자였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군요."
아내는 자기가 돈을 적게 벌어와서 차를 태워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런 억지가 어디있습니까. 그날 돌아올 때 버스타고 오라고 한 것은 왕복 한 시간이면 아이들 공부를 아내의 퇴근 전에 마치기 위함이었고 아내가 벌어온 돈에 대해서 많다 적다 일언반구 꺼내본 적이 없었는 데 말입니다.

목욕 출발시간이 빡빡해서 네이트온으로 그간 서운함을 담은 문자를 연속 다섯 건을 보냈습니다. 이날 아내의 퇴근길에 문자로 보냈던 말과 덧붙여 아내가 오해했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그래도 오해를 풀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직도 돈만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자기를 '나쁜놈'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내는 내게서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발신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내의 핸드폰엔 내가 '슈퍼맨'에서 '돈돈돈'으로 내 핸드폰엔 아내가 '원더우먼'에서 '나쁜놈'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그것을 보고 놀라자 아내는 재미있어했습니다. 아내가 이렇게 한 것은 오해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고성으로 다툼이 오갈때 어머니께서 수도요금 4만 7000원이 적힌 영수증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그 4만 7000원의 행방을 알게 되었고 아내는 내가 혼잣말 한 게 그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또 내게 고함을 쳤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줘야지. 이야기를 안 하니까 내가 돈 못 벌어온다고 생각할 것 아니가."
"그날 번 돈이 얼마인지 물어봤을 때 당신이 적어도 같이 고민하는 성의만 보였어도 내가 말 안 했겠나?"

어쩌면 아주 작은 오해에서 큰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오해는 말을 해야 풀리는 것인데 입을 닫음으로써 더 화를 키운다는 교훈을 다시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핸드폰 화면에는 '나쁜놈'이 찍힙니다.
"무슨 일인데? 나쁜놈아!"
"돈돈돈, 지금 어딘데?"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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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공휴일인 신정에도 출근을 합니다. 덕분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남들은 새해 일출을 본다고 정동진이다 어디다 일출맞이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우리집, 우리 동네에서, 비록 출근길이긴 하지만 다행히 새해 일출을 보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마저도 어쩔 수없이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나 역시 아침 일찍 아내를 자동차로 태워서 출근시키지 않았다면 일출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집에서 나왔을 때 마당 담 너머 동쪽 산에서 먼동이 터옵니다. 나뭇가지는 매실과 감나무의 것인데 실루엣이 되어 뭔가 멋있어보입니다.


우리가 창원 굴현고개를 넘었을 때 2009년 새해가 맑고 밝은 얼굴을 드러내었습니다. 세상은 엄청 밝아졌는데 사진으로 찍으니 아직 세상이 어두운 것 같네요. 기념으로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내는 아침해를 향해 소원을 빌었답니다. 무슨 소원인지 말은 안 했는데... 나도 소원을 빌었습니다. 나의 소원은 아내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내가 말은 안 해도 그 소원 중에 한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가족의 건강입니다. 지난 연말 독감으로 온가족이 너무 고생했으니까요.


굴현고갯길엔 자동차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습니다. 모두 천주산에서 일출을 보려고 새벽부터 온 사람들의 흔적이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새해의 일출을 보려고 부지런을 떨었으니 올해엔 경기도 좋아져서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이 늘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굴현고개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다시 아내의 출근길을 가다보면 태양은 다시 산너머로 숨습니다. 우리는 창원 명곡로를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또 일출을 맞이했습니다. 2009년 새해를 우리 부부는 두 번이나 맞이한 셈이네요. ^^ 비록 왕복 8차로 도로 위에서이지만 산에서 맞는 일출만큼이나 의미가 있습니다. 도로엔 우리처럼 출근길에서 일출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버스 안에서, 어떤 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또 어떤 이는 노동현장에서 2009년 아침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도시 하늘에 새들이 군무를 춥니다. 우리 부부의 눈에는 2009년 새해를 맞이하는 축하공연으로 보였습니다. 자동차로 달리고 있는 중에 한참이나 우리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아전인수격이긴 하지만 아내와 나는 올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


일출을 향해 자동차들이 달려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비록 사진에는 빨간 신호등에 걸렸지만 곧 녹색불로 바뀌면 신나게 달려갈 겁니다.


아내를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 창원 명곡로에선 태양의 시선을 등으로 받습니다. 다른 때보다 더 따스한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굴현고개로 돌아올 쯤 일출을 맛본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마다 가슴에 큰 희망을 하나씩 품었겠지요. 2009년 희망차게, 아자!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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