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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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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연극촌 성벽극장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이다. 29일 시작해 7월 8일까지 상설 주말공연 일정이다. 이 극은 임선규 원자의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로 널리 알려진 작품. 총 4막 5장, 전통적 극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오는 28일 오후 7시 30분 3.15아트센터에서 창원시립교향안단이 3.15의거 기념 대음악제를 개최한다. 이날 지휘는 박태영 마에스트로가 맡았고 소프라노 박현주, 테너 정의근이 노래하고 창원시립합창단원들이 중창단을 구성해 영화와 오페라, 뮤지컬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곡들을 부른다.


❍…뉴욕타임스와 베를니 타그슈피겔 등의 외신이 윤이상탄생 100주년을 맞아 공연된 통영국제음악제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경남도민일보가 전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말을 빌려 보도한 이 기사에는 뉴욕타임스가 통영음악제를 찾은 주요 음악가 소개와 윤이상 행적을 강조했다고 했으며 독일 타스슈피겔신문은 음악제와 윤이상, 통영에 대해 다뤘다고 했다.


❍…고성 옥천사 환수 문화재인 '나한상'을 비롯해 제2초강대황 탱화 등을 옥천사 성보박물관에서 특별 공개한다는 소식이다. 5월 3일까지며 이어서 성보박물관은 6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다시 나한상 환수기념 특별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창원시립예술단이 26일부터 6월 1일까지 관내 병원과 의료시설을 찾아다니며 힐링음악회를 연다는 소식이다. 이번 음악회엔 창원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 시립무용단,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한다. 26일 첫 공연은 창원보건소에서 시립무용단이 '북의 울림'을 선사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통영지역 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스쿨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이다. 5월 6일 오후 6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전석 무료이며 선착순이다. 조성진은 이날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쇼행의 포로네이즈 작품번호 53번 등을 연주한다.


❍…합천군이 공예인들을 발굴 육성하고자 개최한 제2회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한지로 전통악기인 대북과 장구를 만든 안순금 씨의 종이공예 '한지와 국악'이 선정됐다는 소식.


❍…고성오광대보존회가 상반기 첫 상설공연으로 28일 오후 7시 30분 고성오광대 전수교육관 특별무대에서 '2017 판' 첫 순서 '광칠이의 앵콜' 공연이 열린다. '2017 판'은 한 달의 마무리를 좋은 공연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창원문화재단이 5월 11일 성산아트홀에서 '경남페스티벌 앙상블 오페라 갈라콘서트'를 개최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예술인(단체) 지원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이다. 경남페스티벌앙상블은 창원을 비롯해 부산과 대구 서울 등에서 피아노, 성악, 관현악 분야에서 폭넓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견 연주자들과 젊고 유망한 신진 연주자들로 구성된 전문 연주단체다.


❍…이밖에 시인 정공채 9주기 추모 달빛낭송회가 28일 오후 5시 최참판댁 안채 마당에서 열린다는 소식과 28일 이탈리안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의 첫 내한공연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펼쳐진다는 소식, 함안군립칠원도서관이 26일 오후 7시 '책 듣는 저녁' 북 토크콘서트를 연다는 소식, 통영국제음악제가 작년에 비해 객석 점유율 85%로 12% 상승했고 티켓 수익도 18.5% 올랐다는 소식이 경남일보를 통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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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마지막 시간이라 하니 아쉽다. 첫 강좌 김소정 극단 상상창꼬 예술감독의 연극 재미있게 보기에 이어 창원대 전욱용 교수의  가곡이야기, 그리고 이번달 마산대 황무현 교수의 톡톡 미술과의 대화에까지 이어진 시간이 참 짧게 느껴진다. 오늘은 일찍 창원용호고등학교서 아이들 가르치는 대학 친구가 연극 '다크엔젤의 도시' 티켓을 10장 팔아주어 일찍 서둘렀더니 강의실에도 일찍 도착했다. 


강의실에서 이렇게 여유가 있었던 적이 없는데, 늘 정확한 시간에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살다보니...ㅋㅋㅋ. 옆 사람과 대화도 나눴다. 그는 이번 강좌의 반응을 좋게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이 낸 세금을 이렇게 돌려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한 7분 남았다. 조금 전에 받은 페이퍼에서 눈에 띄는 설명을 먼저 옮겨 적으며 예습.


"자화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뒤러에서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이끈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거쳐 홀바인, 틴토레도, 루벤스, 렘브란트, 고야, 고흐, 고갱, 크르베, 밀레, 마네, 뭉크 및 피카소와 달리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자화상은 그 자체가 미술사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62살 노년의 루벤스는 주름진 세월의 흔적을 그렇게 그림으로 남겼고 일백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는 죽기 전에 웃고 있는 자신의 초상을 남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26살에 붓을 잡아 그림에 몰두한 것이 고작 4년이지만 고흐는 권총자살하기 전 2년 동안 자신의 초상을 많이 남겼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화상이면서 동양 최고의 자화상이 된 공재 윤두서의 초상도 46세에 낙향하여 자신의 초상을 완성하고 48세의 일기를 마쳤다."


"정조는 생애 2번에 걸쳐 자신을 그리게 했다. 임금의 초상은 몸과 얼굴을 따로 그리는데 천하의 김홍도도 몸만 2번을 그렸다. 당대의 평가는 이명기와 한종유가 얼굴을 그리는 주관화사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처음 그린 자신의 얼굴을 못마땅해 했고 역시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린 62세의 서직수의 초상은 못마땅하다 못해 찬문에다 자신의 참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불만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에게는 뛰어나 ㄴ도화서의 화원들이 있었다. 그의 어진을 거절했던 강세황이 죽던 해 정조는 39세였고 제자인 김홍도는 47세, 신윤복은 34세, 그리고 정약용이 29세였다. 강세황은 71세의 자신을 그렸는데 관모를 쓰고 편복을 입은 자신의 초상을 담았다. 제자인 김홍도의 초상에는 청수한 얼굴과 세속을 초월한 성품을 담았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번 자료는 지난해에 강의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림에 나를 담다'라는 책 참고.

왜 예날엔는 자화상을 그렸을까? ㅎㅎ 카메라가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찍어대는지 자신이 기대하는 자신의 초상은 무엇인지 겉모양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내면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자신을 기록하는 셀카봉이 인기상품이 되었다.


자화상(self-protrait)은 '발견하다'라는 의미가 담긴 protrahere 앞에 '자신'을 뜻하는 self를 붙여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화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인 셈이고 자신을 찍는 행위인 셀프카메라가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는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의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 시력을 잃기 전에 루불 박물관에서 줄리에트 비노쉬가 본 명화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100여 점 그렸다. 왜 그랬을까. 자기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벽보에 잔뜩 붙어있는데, 자기 성찰의 과정이 요즘과 옛날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엔 목민관 관점에서 정의에 많이 천착했던 것 같고 요즘엔 그런 가치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발언들을 보면 19금에 해당될 것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렘브란트는 젊었을 때의 패기가 점점 잃어져가면서 가정사에서도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렇게 정직하게 그려낼 수가 있는가. 생각이 든다.


로뎅의 자화상들이 주관화사다. 그 내면을 그림속에 담아내는가가 중요하다.



고흐의 작품은 천억대에 이른다. 정신분열에 시달렸다. 짧은 생애를 살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반 고흐는 일본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고흐 그림의 80퍼센트는 일본이 가격을 다 올렸다. 일본은 자기 나라를 강조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많이 샀다. 자기 나라 국가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그림값도 올렸다. 우리의 상황을 반추하게 된다. 중국도 자기 나라 작가의 그림이 나오면 중국이 뻥튀기하면서 다 사버린다. 


고흐는 자신의 내면을, 자기와의 싸움을 기록했다. 거기에는 보통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고흐와 같은 처지가 되면 당당히 자신을 그릴 수 있을까? 고흐는 미술인들이 모여사는 공동체 사회를 꿈꿨던 것 같다.


고흐의 친구 중에 약간은 얌체같은 인물이 있다. 폴 고갱.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제목의 그림.


피카소도 잘 생긴 자신의 모습을 잘 그릴 수 있었을 텐데... 특징을 강조해 비사실적으로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화가를 아는 수준은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식의 교육에 의해 배우고 기억하고 있다.



그림을 설명하긴 했는데... 누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피카소, 엔디워홀, 폴세잔, 가수 누가 있는데.. 이름 기억이 안 난다. 


윤두서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한 장면.



영화 관상이다. 등장인물의 보니 송강호가 윤두서와 많이 닮았다. 


황무현 "어렸을 적엔 웃지 않았다. 어색해서. 그래서 인상이 별로 안좋았는데 요즘엔 거진 웃는다. 당황해도 웃고 마누라하고 싸울 때도 웃고... 웃으면 좋은 것 같다. 왜 옛날엔 웃는 얼굴 보여주지 않았을까... 거울 보면서도 웃고... 생각해보니 40대부터 웃었던 것 같다. 자면서도 웃고..ㅋㅎㅎㅎㅎ.  아이에게 이야기해요. 가진게 별로 없으면 웃어라고 해요. 어렸을 적 가정통신문을 보면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라는 글이 꼭 있었어요. 제일 싫었던 게 돌아가면서 노래부르는 거였어요. 차례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디제이하면서 7~8년쯤 했어요. 그동네에선 약간 촉망받는... 이쪽저쪽 가께모찌라고 했는데... 몽땅 뛰었으니 잘나가는 측면이 있었지요. 그때도 내게 가장 큰 화두가 부끄럼을 극복하는 거였어요."



공재 윤두서의 유명한 자화상. 목이 없다. 귀가 없다 의복이 없다하지만 최근 과학기술로 밝혀냈다. 귀도 있고 목도 있고 의복도 있다는 것이.



강세황은 앞서 언급했듯이 김홍도의 스승이다. 오른쪽 그림은 강세황과 김홍도가 콜라보레이션한 그림이다. 강세황이 뒤에 있는 소나무를 그렸다. 조선 시대엔 85%가 성이 없었다. 13% 정도 양반. 나머진 쇠돌이, 돌쇠, 아무개... 이런 이름만 가졌다. 85% 이상이. 뭔 말하다 이말이 나왔지?



강세황이 그렸다고 하는데... 따로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이 그림의 수염은 쥐의 수염으로 붓을 만들어 그렸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쥐를 잡아야 이정도 그릴 수 있는 붓을 만들 수 있을까...ㅋㅋ


강세황은 영조의 어진을 그렸던 경험 때문에 정조의 어진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제자 김홍도를 추천했다고.


이성계, 영조, 철종, 또 누구야. 조선 임금 4명의 어진만 남아있다.



김홍도가 일본에 가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고? 정황은 있는데 물증이 없단다. 이 그림은 평양에서 유홍준이 찍어온 것이라고.



왼쪽은 추사가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인데... 너무 못생기게 그려서 글로 남기기를 누가 이를 두고 나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고 뭐라고 해도 나는 나니까 ㅎㅎㅎㅎ. 뭐 그런 식의 내용이라고. 오른 쪽은 다른 사람이 완당을 그린 것.


완당과 김종영. 검색해봐야겠네... 김종영 추사를 가장 좋아했던듯. 추사 무덤에 가서 술도 따르고 했던 듯. 


황무현 "처음엔 추사의 글씨를 보고 저게 뭐 잘 쓴 글씨냐, 한석봉의 글씨 역시 그랬다. 요즘엔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그 글씨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됐다."


세한도 이야기. 저 정도 그림이면 세 살 먹은 아이도 그릴 수준인데 그렇게 훌륭한 그림인가.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됐다. 간송에서 일본에 있는 이 그림을 아주 비싸게 주고 사왔다.


백남준이 외국에서 엄청 뜨니까 우리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한국에 들어올 때 전 세계 생중계할 때. 봤다.


세한도도 중국에 잘 나간다는 화가 비평가들이 뒤에 글을 남겼다. 한국에도 세한도 뒤에다 글을 남기고 싶어하는 작가가 많았다. 


김화타 이야기.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미술계의 스타가 된 케이스. 본명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대 홍대 출신이 외국에 나가 유명해졌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왜곡된 우리 미술 교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백남준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다.


월전, 누구지? 친일청산 문제. 비평하는 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친일작가의 이순신 장군 동상, 논개 영정... 상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지만 성역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직수 김홍도 그림 혹평. 실제 어진 주관화사에서 보면 이명기 이런 사람에 비해 많이 밀린 것 같다. 


현대로 넘어간다.



고희동. 자화상이 현대 미술에서 치면 첫 자화상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자화상에서 고희동이 옷고름을 풀어헤쳤는데... 저항을 표현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화가를 이야기할 때 남자는 고희동, 여자는 나혜석을 이야기한다. 나혜석은 신여성이다. 우리나라에 '첫'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사람이다. 남편이 해외여행을 시켜줬는데, 남편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 그러면서 한마디했다. "조선 남성들은 보시오. 자신은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여성에겐 그것을 요구한다." 등등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쫓겨나 비명횡사했단다. 안타깝게도.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례로 봐야하나. 근대 회화사에 일획을 그은 인물이다. 



김종영. 창원 소답동. 부유한 생활. 독특한 성격의 양반.



문신. 화구까지 화폭에 담은 자화상은 문신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로선 획기적이다. 그래서 그림값도 엄청 비싸다. 김종영과 문신의 제자, 영향을 받은 작가가 이 지역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화상. 나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다. 이번 강연의 마지막 멘트로. ㅎㅎ.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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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은 그 이름만으로 오랜 추억이 깃든 곳이다. 스물두 살 즈음, 방위 복무할 때 박격포 사격장이 있던 곳, 81밀리 연습탄을 쏘아대던 곳이 신불산 아래 삼성 이병철 별장 옆이었다. 한 번은 박격포 좌표 설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이병철 별장을 박살낼 뻔 했다. 오피(OP)를 보면서 좌로 몇도를 읊어야 할 것을 우로 몇도라고 포사수에게 지시했는데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을 날아가는 포탄을 보고서야 아차차 했다. 포탄은 무심하게도 방향을 꺾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내 바람을 외면한 채 사수가 설정한 방향대로 날아갔고 포탄은 이병철 별장 옆 나무에 떨어져 불을 피웠다.


그 때문에 사격은 잠시 중단됐고 근처에 있던 60밀리와 유탄발사기 사수들이 소화기를 들고 달려가 불끄는 모습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했던, 군용 망원경의 성능이 꽤 괜찮다는 인식까지 보탠 그런 기억이다.


그후로 신불산은 내게 군용 포사격장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남알프스 산들을 섭렵하면서 네 번째 순서로 신불산에 올랐다.


신불산, 자료를 찾아보니 울산 울주군 삼남면과 상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대백산맥의 여맥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다. 태백산맥의 줄기라는 얘기다. 요즘 뇌 기능이 퇴화한 건지 산꼭대기에 올라섰어도 동서남북 방향감각을 되찾을 수 없었는데 인터넷 자료글을 읽다 보니 어디가 북쪽인지 감이 잡힌다.


북쪽에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취서산, 천황산, 운문산이 놓여 있다. 이중에 가지산과 천황산을 가봤던 곳이다. 능동산에서 간월산과 신불산에 이르는 능선의 서쪽 사면은 완경사로 평탄한 지형이 전개돼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고 설명되어 있다. 억새평원이 그래서 이루어졌겠다 싶다.


배내골 청수골에서 출발했다. 급경사에서 시작해 완만한 등산로, 다시 급경사로 사력을 다해 오르다 보니 억새평원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카메라에 신불산 봄 풍경을 담았다. 산행이 힘들긴 했지만 고개에 올라서선 이처럼 시원하고 멋진 자연 경관을 언제 또 보겠냐 싶은 감동이 일었다. 그러면서 그 30여년 전 연습탄 고폭탄 뻥뻥 쏘아댄 장면이 겹치면서 자연에 참 몹쓸짓을 했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청수골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휴양림 국립관리소 입구에 주차가 가능하다. 입장료는 1000원. 여기서 100미터 정도 더 올라가면 파래소폭포 쪽과 신불산 정상 쪽으로 나눠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에 이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다녀온 코스는 가운데 길로 올라가고 간월재 못가 가파른 경사길이다. 이 길도 파래소 폭포를 만난다.



처음과 막판에 경사가 조금 있는 등산로다. 중간 쯤엔 아주 완만한 각을 이루는 길이어서 걷기 편했다. 사진은 고개 정상부 다다랐을 지점인데 되돌아보니 골짜기가 직선으로 쭉 뻗은 것이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마치 복슬강아지 털처럼 부드러운 풀이 바람에 쓸리고 있다. 손으로 싹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다.



재약산 사자평처럼 고갯마루엔 억새밭이 지천이다. 평원에는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이것도 볼거리를 보태는 것 같다.



고갯마루 가운덴 둥글게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린 이 데크 아래로 몸을 숨겼다. 빗방울이 데크 틈바구니로 한두 방울 떨어졌지만 여기서 우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기억에 남을 상황이다.



고갯마루에서 신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경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불산 정상. 신불산 정상에서 셀카를 찍지 않으면 아무래도 허전하겠지. 셀카 찍으러 그 고생해서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맛도 산행을 즐기는 이유의 하나다.



신불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시설이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게한다.



산세로 보아 이곳은 영화촬영을 해도 멋진 장면이 나올 것 같다. 산 능선을 타고 대규모 인구가 이동하는 장면도 충분히 소화할 것 같다.



저 아래가 간월재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파래소폭포,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등억온천단지다.



신불산 바위능선 끝에서 하산했다. 바위를 타고 내려가야 해서 여간 힘들지 않았다. 무릎 관절만 괜찮았어도 사지를 떨지는 않았을 텐데.... 암튼 짜릿한 구간이다.



공룡발자국 화석같은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바위가 왜 이렇게 동글동글하게 팬 거지?



하산 직전 기념으로 촬영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선 가식의 포즈가 자연히 뿜어져 나온다. ㅋㅋ



독특한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말의 무릎 관절처럼 생긴 것도 많고 이 소나무처럼 희한하게 굽은 것도 눈에 띄었다. 이 소나무는 마치 커다란 뱀이 스르르 몸을 비틀며 기어가는 듯하다.



드디어 파래소폭포에 도착했다. 거의 되돌아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에 이름이 파래소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폭포의 웅덩이가 초록인 것을 보니 물이 파랗다고 파래소가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파래소를 조금 지나면 움푹 팬 바위 동굴이 있다. 이곳은 일부러 바위를 파낸 듯했다. 비를 만나면 좋은 대피소가 될 것 같다.



한바퀴 돌아 갈림길 출발점에 도착. 9시에 오르기 시작해서 6시 거의 다되어 내려왔다. 내가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96킬로의 거구가 이렇게 산을 타는 거 쉽지 않거든....


그런데 살은 좀 빼야겠다. ㅠㅠ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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