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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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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를 받아도 내가 문화면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읽고 그냥 넘어가거나 참고해서 보러가거나 그랬는데, 괴암 김주석전은 보러 갈 시간은 없어도 기록으로 남겨놓아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 글은 내가 따로 본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란 것도 명토박아놓는다.


이달 25일까지 진해문화센터 1층 전시장에서 괴암 김주석전이 열리고 있다.


유화 30여점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휴머니스트 김주석 - 자유상상화를 들려주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괴암 김주석전’은 고 김주석 화백의 화가로서의 작품성과 미술교육자로 남긴 흔적, 항일정신 등 김 화백 이 남긴 정신적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광복 후 1세대 화가의 삶을 재조명해 지역의 예술적 가치와 지역문화사를 널리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김주석 화백(1927~1993)은 1927년 8월 22일  진해시 경화동 604번지에서 태어나 일곱살때 외사촌형으로부터 수묵과 서예를 배웠다. 1943년 1월 항일결사대 학우동인회를 조직해 일본 총독 암살을 계획하다가 1944년 1월 경성전기학교 재학중 진해헌병대에 체포, 고문을 당했다.



석파, 괴암으로 불리었던 김주석은 흑마회의 창립회원으로 1952년부터 지역미술활동을 시작하여 마산미술협회의 사무국장, 지부장, 경남미술교육연구회의 사무국장과 마산지회장, 마산 무학화가회의 고문, 중등미술교사 모임인 애동인(愛同人)의 창립회장을 지냈으며 문교부장관 미술교육공로상, 예술부문의 마산시 문화상, 미술교육 46년간 종신 공로상으로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고 김 화백은 1958년 10월 화인 김수돈과 함께 흑백다방에서 시화전을 열었고 1960~70년대 군항제 기간인 4월 흑백다방에서 진해미술협회가 매년 주최한 <초청작가전 및 재진작가전>에 초대되어 8년간 (1966년 제2회, 69년, 70년, 71년, 74년, 76년, 77년, 79년) 출품하는 등 흑백다방과의 관계도 각별했다.


이번 전시회의 입장료는 무료다.


문의 창원문화재단 전시사업팀(055-719-7833).


다음은 경남도민일보 기사



아래는 김주석 화백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경남도민일보 최환석 기자의 글. '떠난이의 향기' 링크.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12154&page=9&total=25137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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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그리고 그 길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프로스트




"길은 산의 가파른 위엄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이분도 어지간이 길을 많이 찾아다닌 사람.


이 사람의 글을 보면서 길에 천착했다.


경남도민일보 길 연재. 구암동 살 때 팔룡산 길 이곳 저곳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껴.


봉암 수원지 길을 걸으며 기억을 글로 옮겨야겠다 마음을 먹어.


2005년 봉암동 수원지길. 사진. 그 이후에 많이 알려진 길이 돼.


"왜 봉암동 수원지 길에서

나는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길."




어떤 상상력을 주었을까.


물을 보고 


물과 길. 


100년 전에 저수지를 만든 사람이 궁금했다. 


수원지 이전에 저수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수지 만든 사람은 저수지 어느 지점에서 물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상상해.


"뱀등처럼 수맥이 꿈틀거렸다. 곡괭이를 움쳐쥐고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솟구쳤다. 솟구친 물줄기가 그의 머리를 쳤다."


고성군 상리면 문수암 가는 길.


성주사 뒤안길.

절은 저녁 6시 30분 이후의 풍경이 좋다.

예불을 같이 한다. 지심귀명례. 예불 뒤의 절집 뒤안길은 신기하다.


가덕도 눌차-선창

가덕도의 큰 마을들. 해안이 바로 보이는 가파른 절벽길. 웃길, 갈대길, 동네길도 있어. 마치 제주 올레길처럼 변화무쌍.


천주산 달천계곡

언제나 시끌벅적. 계곡은 좁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어 사람사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곳.


진해 안민고개

대표적 전망 장소. 뷰포인트. 안민고개는 고려, 조선 때부터 존재해. 일제강점기때 군사용 도로로 만든 길. 데크로드 시설로 지금은 걷기 좋은 길이 되어 있어.


진북 편백숲길

진북 금산마을 뒤 평지산. 편백숲길. 어떤 이가 30만 평을 편백 나무숲으로 조성해. 무섭기도 했는데 그마저 길을 걷는 재미.


거제도 홍포-여차길

콘크리트 길 반대편은 흙길. 숲이라 바다와 접하지 않은 길. 3.5킬로.


진동 공원묘원


고성옥천사.

청련암. 백련암 보며 걷기.


마산 서원곡 서학사길

서원곡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관해정 좁은 길이 멋진 길 펼쳐져.


재미있는 길.(졸리운 학생들을 위해서) ㅋㅋ


진주 남강 둑길. 어스름 낙조 황홀경.

자전거 타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둑길을 걷는 사람들 부러워. 


주남저수지 둑길.

비가 오는 날 더 좋아. 빗방울 맞으며 저수지를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파문을 감상할 수 있어. 주남저수지 최근에 가보니 연잎이 뒤덮여 물방울을 발견하기 어려워. 이젠 애물단지가 돼.


동판저수지.

인공호이긴 하지만 자연저수지 모습을 잘 갖추고 있어. 주남보다 사람 발길 드물어. 




삼랑진 뒷기미길

왼쪽강은 낙동강 오른쪽은 밀양강. 합류 장면이 보이는 길. 경사진 길. 30분 정도 걸을 수 있어. 뒷기미는 마을 이름.


지심도 동백길

얼마전 군사용 섬에서 민간에 반환돼. 배편으로 10분 정도 가면 돼. 당시에는 원시림 동백길 있을 때 갔었다. 


동읍 곡목마을

재실 서원 다 없어져. 단감테마마을. 재미있는 길로 소개를 했으나 많이 없어졌다니 아쉽다.


하동고소성

길이라 하기엔 어렵지만. 해발 800미터.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장소. 화면 안보이는 곳. 하동사람들은 무디미라고 해. 박경리 토지 집필 전엔 무디미를 가보지 않았다고 해. 토지 배경을 접할 수 있어. 지리산 줄기도 느낄 수 있어.


김해 분성산 천문대

저녁에 별자리 코스 예약하고 걸어가면 좋은 길.


조는 사람 있으니 분위기 전환.


질문하나.


사람들은 도대체 왜 걷는 걸까?


제주도 올레길 1코스. 성산일출봉 주변 8킬로짜리 길.


올레길 7코스. 가장 많이 걷는 길은 서귀포 외돌개길. 


제주도 올레길 마을.


올레길 의미가 마을길이란 뜻.


한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


올레길을 왜 만들었는지 문제.


산티아고 길 걷고 올레길을 구상. 이유는, 사람들은 왜 걷는 걸까 질문과 맞닿아.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



시사저널 있다가 상업성에 갈팡질팡. 뛰쳐나와 시사인 만들고. 그 열정 때문에 스트레스. 건강 임계점. 망가진 것은 몸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망가져. 산티아고 다녀와서 고향 제주에서 올레길. 해녀 좀녀와 자주 어울려. 그러다 건강도 나아져.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길


자여 우곡사길

버스 정류장에서 우곡사까지 걸어가봐야. 요즘엔 데크로드까지 만들어져 환상적 장면까지 만날 수 있어. 마라톤 10킬로(러너스 하이) 를 극복한 뒤의 희열. 30분 정도 걸으면 워밍업 돼 몸도 유연해지고 정신도 건강해져.

2005년도 우곡사길 사진. 대나무숲길, 피톤치드 이상의 느낌과 향기도 맡을 수 있어. 길을 걸으면서 향에까지 고려하지 않았는데... 향도 고려해서 길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


비음산 용추계곡길 갈림길

나무와 함께 호흡하라. 나무를 안고 기를 모아. 5분정도 기를 모으고 눈을 감고 명상하듯 집중하라. 나무의 움직임이 느껴져. 물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까. 내 나무에게 호흡을 전하라.

비음산에선 능선길을 볼 수도 있어. 


함안 입곡 저수지길

입곡군립공원. 저수지 안쪽 산책길.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상처에 침입하는 박테리아를 퇴치하는 방향성 물질. 사람의 피부를 자국해 소염소독하고 피로를 풀어준다는 것은? 피톤치드.


내서구봉산 산책길

아주머니들 온몸을 감싸는데 이런 길에서 어떻게 하니 좋을까. 의사에게 물어보니, 자외선 뿐만 아니라 꽃가루, 나방처럼 접촉성 피부염 요인. 보호해야. 다른 의사는 탈수 가능성. 최대한 피부 호흡하게 해야. 의견 갈려.


진전 동해 동진대교

마라톤 코스. 건강을 추구하는 길.


사천 곤양 다솔사

스님에게 호흡하는 법 배워. 걸으면서, 혹은 앉아서 호흡하는 법. 들숨 날숨을 규칙적으로 하라. 능력 되면 날숨을 길게하라. 가르침.


길을 찾다가 닿은 곳


마산 창동골목

송학통술 있는 골목 지금은 없어져. 중성동 골목. 


창원소답동 골목

고향의봄 골목. 이원수 선생이 7살 쯤에 4~5년 살았던 집.


창원 외동골목

봄에는 유채밭으로 변한 곳. 예전엔 골목이 있는 마을


진해소사동 골목

김달진문학관이 있는 돌담길. 지금도 그대로 있다고.


이일균 기자가 길끝에서 만난 곳은


골. 목. 길.


걷는 게 최고라고.


길은 크게 따지면, 일터

농사로 따지면 논 밭으로 연결되고

다른 한쪽 끝은 집이다.


올레길이 집과 연결되는 길인 것처럼.


집이 있는 길은 골목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길은 삶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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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덕의 '산허구리'는 여러 논문에서 뛰어난 드라마트루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양승국은 "190년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각 등장인물이 모두 개성적으로 살아있으며 모든 사건 진행이 전진적 모티프에 의해 현재화되어 리얼리즘 무대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극적 가상'을 부여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장혜전은 또 이렇게 평가한다. "함세덕의 극적 언어는 극의 상황이, 과거의 일들이 누적되어 현재의 상황으로 집약됨을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이것은 특히 단막극에 적합한 언어로,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면서 압축되어 있어 극의 전체 행동과 밀착되고 극의 초점으로 곧바로 이끌고 들어가는 데에 효과적이다. 함세덕의 연극 언어는 인물에 적합한 언조와 긴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저속한 말을 사용하는 등 비극성을 서민적으로 현실감 있게 처리하고 있다."


'산허구리'를 아직 읽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논문에서 분석한 플롯구조부터 본다는 게 희곡 공부에 도움을 반감시키기는 하겠지만 역으로 구성부터 파악하고 장면의 전환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 다음 희곡을 읽는다면 그 또한 공부에 도움이 못될 것도 없겠다 싶다.


함세덕 월북 직전에 찍은 사진.


그의 초기 작품인 '산허구리'와 '문의도기행'은 현실인식의 적극성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현실적인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맺는 한계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다.


다음 글은 줄거리를 모티프에 의해 요약한 것이다.


1. 어머니(노어부의 처)가 파도 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작은 아들(복조)을 염려하며 애타게 기다림


2. 다른 배들은 돌아왔는데 복조가 탄 배는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바다에서 죽은 큰아들과 분아범(큰사위), 상어 이빨에 왼다리를 물어뜯긴 불구의 남편을 떠올리며 신세를 한탄함.


3. 복실과 석이 남매가 술에 젖어 사는 아버지와 도적조개를 잡아 생계를 연명하는 시집간 문어미의 앞날을 걱정함


4. 복실, 석이, 어머니가 집을 방문한 윤첨지와 함께 얘기함. 윤첨지가 배가 파선했어도 복조만은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위로하자, 어머니는 술에 젖어 사는 남편을 원망함


5. 복실이가 동리 아이와 함께 폭우로 인한 동리 사람들의 피해에 대해 얘기하며 막막한 자신들의 생활의 궁상에 대해 한탄함


6. 노어부가 고무신 하나 사달라며 투덜대는 막내 아들 석이를 때리며 행패를 부리자 어머니와 복실이 이를 말리며 술독에 빠져 사는 노어부를 공격함


7. 어머니가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복조 시체가 떠내려 왔을지도 모른다며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를 치기 시작함


8. 어시장 사람이 도적조개를 잡다 들킨 분어미를 데리고 와서 욕설과 행패를 부리자 어머니가 복실과 합세하여 대들기 시작함


9. 윤첨지가 떠밀려온 배의 널을 들고 와서 다른 배가 들어왔다고 말하자 어머니가 선창으로 내달림


10.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젊은 어부와 강원도 어부가 배가 폭우에 파선당하던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얘기하자 어머니가 그들에게 물을 끼얹으며 분풀이를 함


11. 석이가 간밤의 폭우에 시집간 누나 분어미의 집이 무너졌다고 걱정을 함


12. 어부들이 행길에서 불구의 몸으로 싸움질을 하는 석이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워 못보겠다며 얘기하기 시작함


13. 어머니가 실성한 모습으로 죽은 복조를 묻어줘야 한다며 연장을 챙기기 시작함


14. 분어미가 방문하여 여기서는 못살겠다며 항구로 나가 몸이라도 팔아 살아야겠다고 한탄함


15. 동리 사람들이 죽어 떠내려온 복조의 시체를 들고 오자 어머니는 실성한 모습으로 괭이를 들고 집을 휑하니 나가버림


16. 석이와 복실이가 괭이로 물을 파며 통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먼발치로 바라보며 자신들이 왜 이렇게 사는지에 대한 원인을 한 번 생각해보겠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음


"이 작품은 복조의 죽음이라는 극적 사건을 중심축에 놓고 전진적 모티프에 의해 전개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해주는 서정적 비극의 계열에 속한다."


<희곡분석과 공연비평>의 저자 김문홍의 평가처럼 단막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작푸이다. "이 작품은 단일구설을 취하고 있으면서 모든 사건이 전진적 모티프에 의해 전개되고 있어 독자 관객에게 극적 기대감과 서스펜스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드라마트루기가 뛰어난 작품으로 정평이 났는데, 극의 구성에선 완결에 있어선 흠이 별로 없을지 몰라도 스펙타클한 극적 반전이 없어 큰 재미는 없다. 드라마가 시작하는 순간 예상한 결말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플롯구성인 점이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희곡 작성 시 생각지도 못한 합리적 반전을 끼워 넣는다면 50% 이상은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반전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한 번 연극이나 영화에서 극적 반전만을 모아 따로 정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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