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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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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논문을 함세덕으로 냈다. 졸업 전에 신문사 합격하는 바람에 제대로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수습기자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눈코뜰새'와 누가 바쁜지 겨루는 지경이었으니. 허술한 자료 수집. 딱히 연구랄 것도 없는 연구. 많은 논문에서 지적한 그의 작품 특징 몇 가지를 나열한 것으로 눈문이랍시고 제출하곤 졸업장을 받았으니.


오래 되었다. 함세덕을 잊은지. 그에게 꽃힌 것은 월북작가여서가 아니다. 단 한 작품 <동승>에 끌려서다. 그래서 찾아본 자료에서 그의 엄청난 열정을 발견하곤 주저함 없이 학사논문의 대상으로 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해금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1990년.


그게 아쉬웠다 여겼는데, 희한하지. 잊었다. 대학 졸업만 하면 끝. 그렇게 되어버린 건 되돌아갈 여유, 용기가 없었던 게지. 나이 들어 하나씩 젊음의 노트를 펼친다. 그런 와중에 함세덕이 눈에 들어온 건 다행일 게다. 다시 학창시절처럼 희곡 공부를 쪼깨 해보자.


김문홍의 책 <희곡 분석과 공연 비평> 중에 함세덕 작 <산사람들>을 상징적 플롯으로 정리한 부분이 있다. 204쪽.


제1막


1. 구국투쟁위우언회 화북리 책임자 고제곤의 어머니아 조직부원 부용철의 누이동생 율나가 아들과 오빠의 안위에 대해 걱정함

2. 고제곤에게 율나가 어업조합 서기와 미군의 해녀들에 대한 횡포를 하소연함

3. 제곤모가 구국투쟁 사업도 좋지만 생업에 힘쓰라고 퇴박을 주며 실랑이를 벌임

4. 용철이 제곤에게 구국투쟁 레포선 아지트가 발각되었다고 알려주며 대책을 숙의함

5. 율나가 진옥 동무가 체포되었다고 보고하자 조직부장을 피신시킬 본부 아지트를 목축장으로 정할 것을 결정함

6. 제곤, 용철, 송백 세 사람이 김석민 위원장을 피신시키기로 합의함

7. 지서장, 전형사, 서북청년회 감찰부장 일행이 진옥을 체포해 고제곤의 집에 들러 물을 얻어먹음

8. 어업조합 이사장 양준수와 지서장이 이번 총선거에서 이승만 박사가 당선되면 국방군을 편성하여 삼팔 이북으로 밀고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함

9. 제곤모, 부장의, 삼바우, 해녀들이 폭동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북조선의 인민 해방 정책을 부러워하며 미군정을 헐뜯음

10. 제곤이 나타나 남한이 단독 선거를 저지하여 남북한 통일 인민정부를 수립하자고 선동함

11. 제곤이 용철에게 상부에 건의하여 무력투쟁할 것을 주장하나 용철이 때를 기다리자고 위로함

12. 용철이 놈들을 유도하는 사이에 제곤으로 하여금 위원장 동지를 피신시키기로 합의함

13. 용철이 민족청년단으로 위장하여 놈들을 해변으로 유인함

14. 해녀들이 휴식을 하며 남북 통일이 되어 김장군을 뵙고싶다며 이야기함

15. 용철의 유인작전이 탄로나고 지서장에 의해 수배된 인물로 판명되어심한 문초를 당함

16. 용철이 놈들의 총에 맞아 죽자 해녀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자 제곤이 이를 만류함

17. 상부의 지시에 의해 모두 산 속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기로 결의함


제2막


1. 유격대 사령관 김석민이 빨치산 대원들을 다그치며 훈련을 시킴

2. 김석민이 우리들의 투쟁 목적은 미제국주의를 격멸하고 남북통일 인민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짐

3. 대원들이 빨리 무력투쟁할 것을 건의하자 더 힘을 기르며 기다리자고 무마시킴

4. 석민과 취사반장 율나가 대원들의 식량 부족을 걱정함

5. 석민이 고제곤 동무가 식량과 무기를 구하러 하산했으니 그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기다리자며 대원들의 양해를 구하자 대원들은 사기충천함

6. 식량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추이'를 번식시키는 작업을 시작함

7.율나가 식량과 탄약을 구하기 위해 지서를 습격하자고 건의하자 고제곤 동무가 올때까지 기다리자며 석민이 이를 만류함

8. 석민과 작전참모가 이번 북조선이 제안한 정당사회단체 남북연석회의의 성공 여부를 걱정함

9. 보급부대가 도착하여 고제곤 동무가 위험에 빠졌다고 보고하자 후원 부대를 하산시킴

10. 송백이 도착하여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습격을 개시하라는 당 본부의 지시를 전달함

11.고제곤이 구사일생으로 돌아오자 모두들 제주도 민요 오돌또기를 합창하여 전의를 다짐함

12. 고제곤이 지서에서 유격대의아지트를 습격하기 전에 먼저 습격하자고 제의함

13. 제곤을 따라 삼양부대가 습격을 위해 산을 내려감


작품의 배경이 제주도다. 화북리. 1948년 3월 초순. 제주 4.3항쟁의 시발이 되는 시점까지 분위기를 희곡에 담았다. 항쟁의 치열한 모습이 아니라 4.3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정치, 사회적 배경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표현하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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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다. 이번 가곡전수관의 목요풍류방은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다. 평시조다. 이런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 번 더 언급하면, 시조 내용이 아무리 달라도 그 부르는 곡이 '평시조'면 다 곡조가 같다. 가사만 다르지. 궁금하면 10일 가곡전수관에 가서 확인해보라. '청산리 벽계수야'와 '청산은 나를보고'를 따로 녹음해서 동시에 플레이시켜보면 가락이든 곡조든 일치함에 놀랄 것이다.


아, 이 '청산리 벽계수야'를 누가 지은 시조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음... 힌트가 더 어려운데... 여기서 벽계수는 화담 서경덕이다.




공연개요

일시 : 2017810일 목요일 저녁 730

장소 : 가곡전수관 영송헌

주최 :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주관 : 사단법인 아름다운우리가곡

후원 : 창원시

 

출연진 소개

해설_ 신용호(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가곡전수관 사무국장)

연주_ 국악연주단 정음

 

공연 프로그램

경제(京制) 평시조 동창이

경제(京制) 지름시조 청조야

경제(京制) 우조시조 월정명

영제(嶺制)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영제(嶺制) 평시조 청산은 나를보고

영제(嶺制) 반사설시조 벽사창이

영제(嶺制) 사설시조 한잔 먹세 그려

향제(鄕制) 우조지름 석인이

향제(鄕制) 여창지름 달밝고

향제(鄕制) 사설시조 팔만대장


참고로 학창시절 배웠던 시조를 다시 음미해볼까. 공연은 시간이 안 돼 보러가기 어렵겠다만.

시구는 일부 내맘대로...ㅋㅋ


'동창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지저귄다

소를 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니

고개 넘어 사래 긴 밭을 얼제 갈려하는고


'청조야' 여창 지름시조 (작자미상) 가람본 <청구영언>에는 지은이 계단


청조야 오는구나 반갑다 임의 소식

약수 삼천리를 니 어이 건너 온다

우리 임 만단정회(여러가지 정다은 이야기)를 네 다 알까 하노라


'월정명' (박상간)


월정명 월정명하니 배를 저어 추강에 나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가운데 명월이라

선동아 잠긴 달 건져라 달 부여잡고 놀아나 보자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산같이 물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벽사창이' (작자미상) 언락


벽사창이 어룬어룬커늘

임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보니

임은 아니오고 명월이 만정헌데 벽오동 적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목을 휘어다가 깃 다듬는 그림자로다

마초아

밤일세만정 행여 낮이런들 남우일뻔 하여라.


'한잔 먹세 그려' (정철) 장진주사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헤 거적 덮어 주리혀 매어 가나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숲에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제 위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


'석인이' (작자 미상) 황학루 전설을 다룬 시조


이미 옛 사람은 황학을 타고 가버렸는데

이땅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한번 떠난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무심한 흰구름만 천년을 유유히 떠도는구나

맑게 갠 강가로 한양땅 가로수가 역력히 보이고

앵무주에는 이곳저곳 잡초들만 무성하구나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쯤인가

물안개 자욱한 강 나그네의 수심만 깊어가네


'달 밝고'(작자 미상)


달 밝고 서리친 밤 울고가는 저 기러기

소상동정 어데 두고 여관한등 잠든 날 깨우느니

밤중만 네 울음 한 소리에 잠 못 이뤄 하노라


'팔만대장' (작자 미상) 반사설시조


팔만대장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오소서

여래보살 지장보사 문수보살 보현보살(시왕보살) 오백나한 팔만가람 (삼천계제) 서방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후세에 환토상봉하여 방연을 잇게되면 보살님 은혜를 사신보시하오리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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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집이 있었긴 하지만 지금은 없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이어 내 세대에 걸쳐 우리집을 가져본 기간은 10년이 채 안된다.


어렸을 적엔 전세 인상 때문에 이집저집 이사를 다닌 게 손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게 오죽 뇌리에 박였으면 국문과 다닐 때 발표한 시가 '이삿짐을 옮기면서'이겠나.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나서 그 시를 옮겨본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셋집 앞마당 푸른 소나무

    할매의 사연은

    가지가지 솔잎마다

    한숨으로 휘감긴다.


    농촌에서 떠나온  지 二十년

    하나뿐인 당신의 아들

    직장 따라 옮긴 것이

    오늘로 열세 번째


    이 곳에서 저 하늘 아래로

    또 다른 타향으로

    ㄱ자 몸을 옮기시던

    할매는

    씨 뿌릴 땅이 없는 농부처럼

    먼 하늘 바라본다.


    나는 어데서 묻힐랑고

    할매 작은 가슴엔

    눈물의 파도가

    자꾸만 밀려온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또, 타관에서 머리를 눕혀야 하는

    할매 손마디가

    떨리고 있다.


    이삿짐을 옮기면서

    주소하나 늘어나는 주민등록등본처럼

    주름살 하나 더 늘어난

    할매의

    눈언저리 이슬 속에

    한 잎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


ㅋㅋ. 이러면서 옛시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어쨌든 이런 기억 때문에 피서지에서 겪은 일은 더욱 내게 낭패감을 안겨줬고 어제 정정당담에 실린 장상환 교수의 8.2부동산 대책에 대한 글이 내게 공감을 일으키게 했나보다. 마침 칼럼 순서라 이렇게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7일 자 정정당담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의 칼럼 '실수요자 보호 위한 주택정책은'을 읽으면서 엊그제 다녀온 피서지에서의 하루가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밀양 표충사 아래 무료 야영장. 여느 유료 야영장이 있는 계곡보다 괜찮은 곳이다. 한 10여 년 전 친구 가족들과 4번 연달아 오다가 이후론 다른 곳으로 갔는데, 올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다녀오면서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서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대찬성. 예전 이곳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표충사 계곡은 4번 오는 동안 되풀이 훈련된 학습이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전날까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챙겨서 새벽같이 출발했다. 아침 7시에 도착한 표충사 계곡 야영장. 주차장엔 총 70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땐 4분의 1 정도 빈자리였다. 그렇게 일찍 집을 나서면서도 혹시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우린 1박만 할 것이어서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온 가족이 짐을 하나씩만 들면 그만이었다. 짐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지만 텐트를 칠 빈 공간을 찾느라 야영장을 세 바퀴 넘게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보니까 맥이 풀렸다.


주차된 차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 넓은 야영장엔 빈자리가 없다. 어쩌다 자투리 공간이라도 발견해 자리를 깔려고 하면 이웃 텐트에서 한마디 건네준다. "그 자리에 누가 있어요." 다시 다섯 식구가 짐을 들고 야영장 안을 빙빙 돌았다. 요즘 텐트들은 하나같이 대형으로 나오나 보다. 그 자리에 우리 텐트는 열 개도 더 치겠다 싶다. 게다가 아침 일찍 산책갔는지 어쨌는지 빈 텐트가 수두룩했다. 그제야 직감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잡아놓은 것임을.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거나.


몇 바퀴를 돌아도 빈자리를 찾지 못해 텐트 설치를 포기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서 우리 표정을 살피더니 묻는다. "혹시 아직 자리 못 잡으셨어요?" 그렇다고 하자 자기를 따라오란다. 큰 천막 아래 텐트가 3개 있고 그 옆에 빈터가 있다. 천막 아래다. 이곳을 사용하란다. 내일 오후에 사람들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라도 마음 놓고 사용하란다. 마음 놓고? 주인 없는 무료 야영장에서 우리 식구는 남의 집 얹혀살듯 하루를 보냈다. 옆의 세 텐트는 밤새도록 빈집이었다. 새벽에 산책하러 간다고 야영장을 둘러보니 빈 텐트가 수두룩하다. 운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지런했어도 맴돌다가 다른 계곡으로 갔을 수 있겠다. 우린 운 좋게도(?) 그 아저씨 눈에 띄었고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전에 텐트를 걷으니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가는 거냐고. 자리 주인이 따로 있다고 했더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제 우리처럼. 8·2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장 교수의 지적처럼 전국으로 확대 적용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가정이 집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부동산이 돈 버는 도구로 춤출 일도 없지 않겠나.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44718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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