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예술극단 현태영 희곡 연출 작품 '소풍' 관람
창원예술극단은 아마도 1992년쯤 극단 마산과 함께 뻔질나게 드나들던 극단이다. 당시 경남매일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연극 붐을 일으켜보자는 무모하고도 당찬 꿈을 안고 있었다. 개인적인 타임라인으로 치자면 학교 졸업 후 극예술연구회 동문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산되고 잠시 실의에 빠져 있었던 터였다.
당시 문화부 연극 담당 기자로 종종 마주쳤던 사람은 동남일보의 문보근, 경남신문의 정기홍이었다. 문보근 기자의 연극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과 친화력도 강해서 연극인들이 다들 알고 있다 내지는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품 뭐 준비하고 있나 싶어서 당시 세림상가 옥상에 있던 극단 마산에 가면 언제 왔는지 벌써 죽치고 앉아 있었고 또 한날은 방향을 바꿔 창원시보건소 쪽 창원예술극단(아마 창원예총사무실 공동사용)에 가면 또 어느새 거기서 장기를 두고 있는 문 기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동상가 뒤에 있던 극단 미소에선 문 기자를 한 번도 맞딱뜨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극단 미소 단원들하고도 잘 지냈다. 연습 마치고 나면 올림픽공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돌리기도 했었다.
오늘 밀양아리링아트센터 소극장에 겨우 시간 맞춰 들어섰을 때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천영훈 극단미소 대표를 만났다. 다른 굿쟁이보단 많이 만나지는 사람이다. 1993년 연극 담당을 그만두고 거의 20년 넘게 굿판을 떠나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천 대표 옆에 앉아 있던 박승규 씨도 그렇고 정석수 선생도 그렇고 사람이 그리 쉬 잊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리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나도 굿쟁이 출신이긴 하지만 기자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호칭이 그랬다. 대부분 누구누구씨 아니면 대표, 감독 등등. 그런데 딱 한 사람 현태영 감독만큼은 선배라고 불렀다. 아마도 경남대서 현 선배가 '맥베스'(그러지 싶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확실하다.)를 올릴 때 처음 불렀던 호칭이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연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내가 소답동에서 자취할 때 참 자주도 만났더랬다. 현 선배 집에도 종종 갔었는데, 특히 다락방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애 이름이 예림이? 그랬던 것 같다. 그 이름이 이번 작품 '소풍'에 언급된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일흔한 살 영감쟁이에겐 딸 예림이가 그나마 효녀다. 꼬박꼬박 생활비도 대어주고.
영감쟁이와 띠동갑인 아내 둘자는 쉰아홉. 어쩌면 한창 나이다. 스물하나에 연극보러 갔다가 눈이 삐가지고 연출을 맡았던 영감쟁이한테 덜컥(?) 시집을 간 것이다.
현 선배가 그렇다고 일흔한 살은 아니지만 묘하게 뭔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극중의 영감쟁이와 현선배, 그리고 둘자와 형수... 예림이라는 딸. 아마도 집에 키우고 있을 '눈치'라는 강아지.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노년을 살면서 한 번도 소풍이라고 가본 적이 없어서 이제라도 한 번 가보자는데 아내는 덜컥 치매에 걸리고 자신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야경이 쥑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고 하더니 현 선배는 이 '소풍'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특히 화려했던 과거를 보낸 사람은 나이 들어 그 시절을 종종 그리워하는데 마지막 장면 아내가 집에 홀로된 상황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자 영감은 어차피 시한부 삶이란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독극물을 마시고 바로 아내 뒤를 따라 간다.
그제야 이들 부부는 소풍을 간 것일까.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두 노인 앞에 두고 이제 홀로 남은 반려견 '눈치'의 슬픈 짖음이 가슴을 파고 든다.
공연이 끝나고 선배를 찾아가 그랬다. "선배, 혹시 자서전 아임니꺼?" "그렇지." 답이 너무 쉽게 돌아와서 살짝 걱정이 됐다. 진짜 선배 아픈 건 아닐까? 언제 한 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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