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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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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작전 방불케 하는 집 나서기

남편과 산행 목적지를 김해 무척산으로 정하고 나서 어떤 산인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등반 초보자에겐 '무척'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글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무척산'인가 하고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무척 가보고 싶은 산이라서 무척산이라고 하더군요. 지난번 바위를 타고 오르는 화왕산도 갔는데 그보다 낮은 무척산 정도야 힘들면 얼마나 힘들랴 생각했습니다.

무척 힘은 들었지만무척 시원했던 여정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시간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 아이를 떼어놓고 나서려니 작전이 필요했습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빠이빠이'했다간 안 떨어지려고 울면서 난리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할머니랑 놀게 하면서 저부터 몰래 빠져나왔죠. 남편은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에게 안심시켜놓고 한참 더 있다가 살짝 나왔습니다. 나중에 전화로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는데 잠시 울다가 언니, 오빠가 와서 또 잘 놀았답니다. 다행입니다.

◇한 쌍의 나비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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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

오전 10시 13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생림우체국 좀 못가서 석굴암 입구였습니다. 주차장이 있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에 아직은 자동차가 많이 없었습니다. 산을 올려다보니 그렇게 높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숲도 우거졌고요. 날씨도 약간 흐릿한 것이 등산하기 딱이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한참 올랐습니다. 처음엔 등산하기 편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지니까 별로 재미도 없고 힘들었습니다. 이런 길이 모은암까지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힘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걷는데, 나비 한 쌍이 춤을 추며 머리 위로 팔랑거리며 날아갑니다. 우리는 한참동안 나비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보다 두 마리가 함께 날아가는 모습은 더 행복해보였습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건가 봐요.

우리는 '무척산 기도원'으로 향하는 진짜 등산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약간 어둑한 숲으로 들어가니 '인디아나 존스'에나 나올법한 길이 나왔습니다. 돌을 쌓아 길을 만든 곳도 있고 큰 바위 옆에는 절벽도 있었습니다.

등산로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 50미터 가다가 쉬고, 또 한 40미터 가다가 쉬고….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은 한술 더 뜹니다. 나보다 먼저 주저앉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니 엉거주춤 다시 일어섭니다. 남자들의 자존심이란 게 이런 건가요. 난 얼마든지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편은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도로 내려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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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바위.

◇탕건바위, 암벽타는 사람들

11시 34분. 무척산 오르는 길에는 바위가 참 많습니다. 등산로를 가로막고 서있는 큰 바위도 있고 전망대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숲 밖의 세상을 훤히 내다보이게 하는 바위도 있습니다. 또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느라 자일을 걸어 땀을 흘리는 바위도 있습니다. 탕건바위라고 합니다. 아마 어머니가 이 바위를 탄다면 금세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겁니다. 사람 키만큼 오르는데 저렇게 힘들어하니 초보자인 모양입니다.

탕건바위 앞으로 가보았습니다. 정말 아찔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져 섰는데도 다리가 떨리며 절벽 밖으로 끌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는 그 끝에 쪼그리고 앉아 한동안 있더군요. 반발자국만 앞으로 가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텐데…. 보는 내가 더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야릇했습니다. 참, 탕건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건 옛날 남자 어른들이 쓰는 모자인 탕건과 닮았다 해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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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폭포.

◇시원한 폭포수를 만나다

12시 7분. 드디어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게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무척산 폭포입니다. 입구에서 등산로 지도를 봤을 때 모은암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보였는데 아무리 걸어도 나타나지 않기에 모르고 지나쳐왔나 생각했었답니다. 너무 지쳐서인지 폭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몽골에도 시골가면 이런 폭포가 더러 있지만 한국에선 처음 보았습니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정말 시원합니다. 그동안 흘렸던 땀을 한꺼번에 씻어주는 듯했습니다.

여기서 한참 쉬려고 하는 남편을 보채서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엄마 아빠 없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아이가 울어서 할머니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높은 산에 올라도 집안 걱정은 떨쳐버릴 수가 없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합니다.

지그재그로 된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왔습니다. 전망도 좋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싸온 빵과 음료수를 먹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있다는 호수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하도 배고프다 하기에 기대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배낭을 풀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무척' 좋았습니다.

◇이곳이 천지라고? 동네 호수 같은데

12시 47분. 드디어 산꼭대기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산꼭대기가 아닌 모양입니다. 오른쪽으로 더 높은 산이 보입니다. 남편은 그곳까지 가자고 합니다. 나는 이곳에서 좀 쉬다가 내려가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 호수를 만난 반가움과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부턴 머릿속에 아이 우는 소리만 자꾸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아이 울었는지 물어보지는 않고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는 얘기만 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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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 천지.

이곳에는 등산객들이 자리를 펴고 도시락 먹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띕니다. 우리도 조금 더 참고 여기서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습니다. 호수의 이름은 '천지'인데 산꼭대기에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호수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일까요.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했는데 등산로를 잘못 들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리본은 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도 좁고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걸어가다 보니 다른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보입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반갑습니다!"하는 인사가 먼저 나왔습니다. 정상을 물어보니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다리에 힘이 다시 솟는 듯합니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119위치표지를 만났는데 세상에 '정상 50㎞ 전방'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등산객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걸까요. 정상에 다왔다는 기쁨 때문인지 그런 실수도 귀엽게 봐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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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 정상.



◇갑자기 나타난 정상, 한동안 어리둥절

1시 30분. 드디어 정상에 도착. '무척산 정상 702m'라는 표지석과 돌에 새긴 태극기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무척산의 정상은 '어느덧 갑자기'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올랐던 화왕산은 멀리서부터 정상을 보며 산을 올랐는데 무척산은 숲을 빠져나오자 바로 정상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인지 정상에 올랐어도 기쁨은 갑자기 찾아온 어리둥절함 때문에 반감되는 듯했습니다. 산을 오르며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말이죠. 산꼭대기에서 우리는 나비와 나방을 보았습니다. 이것들도 산꼭대기에 올랐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걸까요.

3시 20분.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다섯 시간을 함께한 나무작대기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후렐마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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