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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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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낼모레가 세계여성의 날이어서, 게다가 내가 경남도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인데다 엊그제 도청서 양성평등기본계획 민관토론회 '남녀평등 실질지원' 분야 토론까지 한 터이기도 해서 성평등으로 글을 쓰고자 맘을 잡았더랬다.


그렇게 주제를 잡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는데... 거참... 머릿 속에는 지난 3.1절 옆지기, 큰딸과 함께 본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자꾸 눈에 어른거려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참 무지하게도 오랫동안 형태만 달랐을 뿐 여전히 짓밟힌 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각성이 일었다. 내가 일부러는 아니었음에도 수년간 애국가를 전혀 제창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반발DNA가 알게모르게 발동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족을 핍박했던 친일의 벼슬이 어째서 광복 세상에서도 여전히 벼슬이었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부조리 현상. 그게 현실었었다니. 그런데 74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이 자랑스레 버젓이 활개치는 모습이라니.


그게 슬픈 거다. 다들 포기하고 싶어 한다는 게 슬픈 거다.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것이 슬픈 거다. 난 에키타이 안의 애국가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대신 독립군이 즐겨 부르던 창가에 실린 독립군가나 애국가사는 부를 것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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