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극동맹1 [한하균 오동동야화]민족예술무대 시절의 이광래 광복을 즈음한 시기는 문화예술 분야의 격동기였다. 아니 정치, 사회, 생활 모든 것이 격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점에 이광래가 주도한 '민예'의 활동 역시 격변기 상황을 대변했을 터이다. 한하균 선생의 글에서 놀란 것은 친일 극단이었던 '조선연극문화협회'가 광복과 함께 '조선연극동맹'이란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즉각적으로 공산주의 선전계몽대로 돌변한 사실인데... 친일단체였던 이 극단을 '친일청산'에 더 강력하게 대처했던 북한이 묵인했다는 게 쉬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튼. 연극의 예술성(순수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몸부림하던 이광래는 일제의 가교한 문화정책 때문에 신극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극연'과 '중앙무대'가 해체되자 상업극의 독무대가 된 극단에서 1940년 황금좌에 .. 2017. 6.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