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 정진업3 [한하균 오동동야화28]비운으로 시작된 월초의 첫 연기인 생활 오동동야화 28화. 원본엔 26화 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번호를 잘 못 매겼다. 월초가 마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연극계로 진출한 이야기. 그런데 마산의 첫 신극 단체라 할 수 있는 '극예사'가 처음엔 김여찬, 이훈산 등의 아나키 성향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나중에 혁신단 신파극 출신의 천전막이 맡으면서 친일로 흘렀다는 얘기에 가슴 아프다. 또 학교 졸업하고 그저 연기만 하고 싶은 마음에 천전막의 극예사에 들어간 정진업의 운명도 안타깝고. 결국 극예사는 돈이 없어 문을 닫고 마는데...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간교한 모습이 읽힌다. 반 일제 성향의 극단을 친일 인사가 인수하게끔 해놓고 결국 그마저 활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내쳐버리는... 이런 일본 제국에 속아넘어간 어리석은 인간들.. 2017. 7. 18. [한하균 오동동야화27]월초 정진업의 옛시민극장 아르바이트 학생 신분을 속이고 영화관에서 내레이터 아르바이트를 한 월초 정진업의 성숙함이 오늘 이야기의 초점인 것 같다. 이 이야기만 봐도 월초가 얼마나 정열적인 인간형인가 가늠하게 된다. 월초는 또한 왕성한 탐구욕의 소유자였다. 그 탐구욕의 소산이었다고나 할까? 그 당시 마산상고에는 전술한 아즈카 데카라 선생 이외에도 고다마, 시카사마 등 두 분 선생이 더 계셨다. 고마마 선생은 이라는 희곡 작품을 발표할 정도의 문인이었고, 시카사마 선생은 영어선생이었지만 수업시간에 가끔 세계 명작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중에서도 아일랜드 작가인 싱그와 오케이시 등의 작품을 통하여 영국 지해하의 아일랜드 사람들의 독립의식을 밝힘으로써 은근히 한국인에게도 독립심을 강조하기도 했던, 일본인으로서는 이단자구실을 서슴지 않았던 분이었다. .. 2017. 7. 16. [한하균의 오동동야화]내가 만난 연극인3-월초 정진업 오늘은 한하균 선생의 오동동야화를 베껴쓰기 전에 오늘의 주인공인 월초 정진업 선생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훑어보아야겠다. 자료는 역시 이다. 정진업은 극작가이자 배우,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다.1930년 김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현 용마고등학교인 마산공립상업학교를 나왔다. 1936년 무렵 이광래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극단 극연, 낭만파, 태양 등에서 연극수업을 받았고 영화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한하균 선생의 야화를 거친 다음 풀어볼란다. 월초 전진업 선생과의 만남 세 번째로 월초 정진업 선생과 만났다. 1951년 스산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초겨울이었다. 마산의 화인 선생으로부터 서신 한 통이 배달되었다. '마산문총(현 예총)의 종합예술제에서 서항석 작 을 내 연출로 공연하니 꼭 오라. 자.. 2017. 6.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