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318)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8)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5)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59)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07-18 10:28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몽골집 게르를 본 적이 있나요? 역사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아하! 그 둥근 천막! 하고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게르'라고 부르는 이 이동식 주택은 몽골민족이 오랫동안 이용해온 전통 가옥이랍니다. 소와 양, 말을 주로 키우다보니 가축의 먹이를 위해서 장소를 옮겨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동식 주택을 짓게 되었지요.

 

13세기 칭기스칸이 아시아는 물론 남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타고 다니는 유목민의 습성과 이동식 주택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몽골에는 50명도 넘게 들어가는 대형 게르가 있기도 하지만 작게는 두 사람 생활용 게르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몽골의 이 게르 흔적은 우리 일상에도 흔히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텐트입니다. 등산이나 캠핑을 가서 설치하여 생활하는 텐트가 게르와 용도상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텐트를 게르처럼 설계하면 아주 잘 팔리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ㅎㅎ

 

게르를 짓는 것은 쉬운듯 하면서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블로그 여행을 하다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몽골에 가서 게르설치를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거의 완성되어 가다가 천장이 폭삭 내려앉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몽골 사람이 "게르 짓다가 무너지는 것은 처음본다"고 했다네요. **

 

지난 8일 창원에서 나담축제를 했습니다. 개회식에 앞서 팔용동 미강광장 분수대 앞에다 게르를 설치했습니다. 그 설치과정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냥 천막 정도라고 생각하면 게르가 뭐 별거냐 싶기도 하겠지만 이것도 사람이 몇달 혹은 몇년을 사는 집이어서 재료가 무겁기도 무거울 뿐만 아니라 짓는 것도 간단하지만은 않아요. 재료를 옮기는 데에도 장정 열 명 가까이 붙어서 거들었습니다.

 

 

게르를 지을 때 처음으로 하는 공정이 나무를 가위식으로 이어 만든 벽을 둥글게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여럿이서 협동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에 경남이주민센터에서 구입한 게르는 5인용으로 벽은 5개로 구성됐습니다.

 

 

벽을 둥글게 대략 세우고 나면 벽끼리 이어지는 부분을 잘 조립해 끈으로 묵습니다. 각각 벽의 높이도 같아야 하고. 물론 서로 조립을 하게 되면 자연히 높이는 같아지지만 말입니다. 벽끼리 다 엮고 나면 전체적으로 조절을 또 합니다. 벽이 타원이 되면 천장을 올릴 수가 없거든요.

 

 

이게 벽끼리 끈으로 엮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싶네요. 나무끼리 서로 교차하는 데다 끈으로 단단히 묶으니 벽이 튼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겠네요.

 

 

벽이 완성되면 문을 설치합니다. 벽과 문은 문에 난 구멍을 통해 소가죽 끈으로 벽을 고정합니다. 그런데 이날 그 재료가 없어서 옷걸이 철사로 고정하였습니다.

 

 

문이 설치되면 공정의 절반은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제부턴 가볍게 조립만 하면 됩니다.

 

 

게르의 가운데 위치할 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끈으로 단단히 묶습니다. 천장은 몽골어로 '토온'이라 하고 기둥은 '바간'이라고 합니다. 천장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양털로 덮지 않기 때문에 맑은 날엔 햇살이 게르 안으로 들어옵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게르 안의 볕도 움직이기 때문에 이걸로 몽골사람들은 시간을 짐작합니다. 해시계인 셈이지요.

 

 

옷걸이 철사로 문과 벽을 엮는 모습입니다.

 

 

천장과 기둥을 조립했으면 바로 세웠으면 끈을 문으로 당깁니다. 천장과 문에 연결하는 오니(일종의 서까래)를 조립하고 끈을 당겨 빠지지 않게 합니다. 문 위쪽에는 오니를 받치는 홈이 나 있는데 이것이 헐렁하면 오니가 빠지므로 지붕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끈을 단단히 당려 고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면 주위를 빙 돌아가며 오니를 설치합니다. 서까래 한쪽 끝은 뾰족하게 해서 천장에 끼우고 반대쪽은 구멍을 내어 끈으로 벽에 고정합니다. 벽이 밀리게 되면 천장에 끼운 오니가 빠지므로 벽은 완전 원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중간에 있는 사람은 천장이 움직이지 않게 기둥을 잘 받치고 있어야 합니다. 

 

 

오니를 끼우는 일은 남녀가 함께 해도 좋은 작업입니다. 이날 몽골 출신 아주머니만(키도 작던데...) 일을 서까래 끼우는 일을 도왔습니다. 나도 해보니 재미 있던데... 젊은 몽골 여성들은 집짓는 일은 남자들의 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날 여성들은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구경만 했다고 하네요... 핑계가 그럴듯하지가 않습니다.

 

 

어쨌든 오니를 설치하는 작업은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해치웠습니다.

 

한국에 일하러 온 몽골의 젊은 남자들은 집을 별로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아주 능숙하게 잘 했습니다. 아마도 본능이 발동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천장에서 오니가 빠지지 않도록 벽 둘레를 끈으로 묶었습니다.

 

 

 

천장과 서까래, 토온에 오니를 끼운 모습입니다.

 

 

이건 벽에 오니를 고정하는 모습이고요. 게르를 지을 때 안정성을 보장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공정입니다.

 

 

빠지지 않게 잘 묶어야지요.

 

 

그다음엔 뼈대를 둘러쌀 천을 지붕에 덮습니다. 이 천을 먼저 설치하지 않으면 천장에 설치된 양털로 된 펠트에서 털이나 먼지가 떨어지므로 이를 막고자 함입니다.

 

 

깨끗한 천을 천장에 덮고 나면 양털을 설치합니다.

 

 

양털로 된 펠트는 겨울의 추위를 막아주는 핵심입니다. 안쪽에서 난로를 켜놓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파트 세면대에서 얼음이 얼어도 이곳에선 따뜻한 잠을 잘 수가 있지요. 경험담입니다.

 

 

펠트도 혼자서는 설치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펠트를 잡고 양쪽 끝에선 끈을 빙 둘러서 끌고 간 다음 묶어야 하니까요.

 

 

펠트 설치가 다 되어 갑니다. 게르가 서서히 형태를 갖춰갑니다.

 

 

게르가 거의 모습을 갖추니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입니다. 내부에 빙 둘러 칠 커튼을 손보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가구를 옮깁니다. 게르 안에 들어가는 가구는 대략, 침대와 옷장, 서랍, 식기 선반 등입니다. 물론 탁자와 난로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게르 안쪽 커튼을 다는 모습입니다. 경남이주민센터 이철승 소장 말로는 서울에 설치된 게르를 봤는데 이렇게 예쁘지 않았답니다. 안쪽에 커튼을 치니 내부가 아주 아늑해졌습니다. 뭐, 집 같아졌다는 얘기지요. ^^

 

 

펠트 위에 또 천으로 둘러 쌌습니다. 문양이 옛날부터 많이 보아온 문양인데... 몽골에도 같은 문양을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하얀 천에 파란색으로 문양을 디자인한 게 아주 깔끔하고 품위가 있어보였습니다.

 

 

다 설치된 것도 아닌데 게르 설치를 도운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군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얼마나 달랬을까요. 

 

 

열심히 게르를 설치한 '다와'입니다. 진주서 공장에 다니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고 치료 중인 친구입니다.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닌데 자기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뼈대를 이룬 벽도 끈으로 빙 둘러 묶었지만 천을 덮은 후에도 한 번 더 끈으로 묶습니다. 천이 날리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게르가 더욱 단단히 고정되도록 하는 목적도 있지요.

 

 

침대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뼈대 위에 덮었던 천이 천장과 잘 맞지 않았는지 몽골여성이 마감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게르가 완성되었습니다. 게르를 설치하느라고 고생했던 사람들, 가장 먼저 기념사진을 찍어야지요. 찰칵!

 

 

게르가 완성되고 내부의 모습입니다. 천장과 기둥 서까래가 단청을 한 문양이 있어서 한결 아름다워보입니다. 천장은 반만 천으로 가린 것 보이나요? 조명이자 시계이지요.

 

 

게르를 다 짓고 나자 얼추 나담 개막식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남이주민센터 강재현 이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통역을 맡았군요.

 

 

게르 앞에서 몽골 전통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노래가 빠질 수 있나요. 게르 쪽으로 눈을 돌려보시겠습니까? 문 양쪽에 서까래인 오니를 세워놓았네요. 원래 다른 장식을 설치한다는데 오니로 대신 세웠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빼놓은 오니는 깃대로 썼군요.

 

 

나도 기념사진 한장 찍었지요. 몽골 여름옷을 입었는데 어찌나 덥던지... 땀으로 샤워를 했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몽골에선 씨름을 '부흐'라고 부릅니다.

 

한국씨름과 유사합니다. 몽골씨름은 샅바 대신 저고리(조닥)를 입습니다. 기술을 걸 때 이 저고리를 많이 활용합니다.

 

몽골씨름은 13세기 칭기스칸 시대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가끔 옛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칭기스칸 시대에 급속히 보급된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몽골씨름 '부흐'의 경기 규칙은 간단합니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땅에 닿거나 넘어지면 집니다. 간혹 뒤집기 기술도 선보이는데 이런 기술이 나오면 구경꾼들의 환호가 대단합니다.

 

한국의 씨름과 달리 '부흐'는 처음에 서로 떨어져서 경기를 시작합니다. 이점은 레슬링이나 일본의 '스모'와 비슷합니다. 일본 스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몽골 씨름 선수 중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 선수로 뛰는 사람이 많습니다. 골격이 큰 몽골사람들에게 일본의 스모는 아주 유리한 경기인 것 같습니다.

 

씨름에서 이긴 사람은 승부가 나자마나 패한 사람의 엉덩이를 오른손으로 탁 쳐줍니다. 그러고는 심판이 전해주는 모자를 쓰고 '항가리드춤'을 춥니다. '항가리드'는 몽골 옛 이야기에 나오는 전설의 새입니다. 새중의 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7월 8일 경남이주민센터에서 마련해 창에서 처음 열린 나담 때에 펼쳐진 씨름대회 일부를 동영상으로 감상해보겠습니다. 씨름복을 입지 않고 해서 맛은 떨어지지만 몽골씨름 '부흐'가 어떤 경기인지 알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화면에 보면 씨름에서 이긴 선수가 몽골국기를 도는 데 왼쪽으로 돌려다가 사람들의 제지를 받고 미안한 표정을 하며 다시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일종의 몽골 풍습입니다. 몽골에 가보면 '어워'라고 부르는 돌탑이 곳곳에 있는데 여기를 돌 때에도 오른쪽으로 돌아야 합니다. 세바퀴를 돌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지요.

 

참, 씨름이라는 말이 경상도 사투리 '씨루다'에서 온 말이랍니다. 두 사람이 서로 지지 않으려고 씩씩거릴 때 "인자 마, 고마 씨라라!" 하지요. 씨루다에 명사형 어미 'ㅁ'이 붙어 씨름이 되었답니다. ^^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모처럼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휴일, 토요일을 맞았다. 마음이 아주 편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이상하다. 불안하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똬리를 틀고 빤히 쳐다보는 독사마냥 어디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틸 수 있나 보자며 지켜보는 것만 같다.

 

"어디 안 갈래?"

 

아내가 먼저 물어준다. 토요일이라 집에 붙어있는 아이들은 제 하고싶은 것 하도록 놔두고 실컷 잠이나 자고, 자다가 지겨우면 컴퓨터로 TV를 보든가, 아니면 얼마 전에 선물받은 시집이나 침대에 누워서 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어데 가꼬?"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주 일상적인 대화였는데, 그 대답 한 마디에 게으름을 꿈꾸던 환상은 자그마하게 피어났던 뭉게구름마냥 사라져버렸다.

 

"수영장 가고 싶어 ㅠㅠ"

 

막내가 우는 소리를 섞어 지난 주 기억을 떠올리며 수영장으로 가자고 떼를 쓴다.

 

"아빠한테 물어봐라."

 

이 한마디에 아이는 희색이 되어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한테 물어봐라."

 

아이는 탁구공처럼 왔다갔다하면서 점점 짜증스러원 분위기를 팍팍 풍겨낸다.

 

"수영장 가자."

 

그냥 아무 의욕도 없이 내뱉은 말인데도 아이는 환호성을 지른다. 자기 방에 있던 오빠도 쭈뼛 고개를 내민다. 상황이 아주 멋지게 돌아가는 데도 오빠는 사실 그렇게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고사를 망치는 바람에 딴에는 명예회복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너도 가자!"

 

망설인다. 갈등이 생겼을 것이다. 이때엔 아빠의 단 한마디만 있으면 아들의 마음 속에 엉켰던 교통혼잡이 일시에 해결된다.

 

"오전에 많이 했으니 잠시 쉬는 게 오히려 공부하는 데 도움된다."

 

걱정도 덜어주고 명분도 안겨줬다.

 

변수가 생겼다. 아니 변덕이 생겼다. 아내가 다시 입을 연 것이다.

 

"그냥 충혼탑 앞에 있는 공원에 놀러가자."

 

나야 이러나저러나 상관 없지만 막내가 갑자기 울상이 된다. 수영을 못하는(귀에 병이 있으니) 아내로서는 또 물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고생하는 것이 아무래도 싫었던 모양이다.

 

"지원아, 공원에 먼저 갔다가 내일 수영장에 가자."

 

어쨌던 수영장에 간다는 약속이 있어서일까 엄마의 두어마디에 아이는 금세 표정을 바꾼다. 그렇게 나선 곳이 창원대로 충혼탑 앞에 있는 삼동공원이다.

 

토요일임에도 날씨가 흐려 그런지 공원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늘 요일을 착각하고 잘못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다. 간간이 연인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 보이고 운동하러 나온 할아버지와 늘그막에 연애를 시작한 듯한 흰머리 성성한 할머니와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남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고 여길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다 서다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까지 들고 나왔는데 알게 모르게 집에서부터 이어졌던 묘하게 피곤한 분위기가 결국 야외에서 누려볼 거라고 기대했던 잠깐의 평화로운 낮잠마저 이루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아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사춘기도, 엄마의 사춘기도, 누나의 사춘기도 자기보다는 잽도 안 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 사춘기다. 자기만 고통을 겪는다고 여기는...

 

산책길에서 내려가면서 자기를 안 불렀다고 언덕 위에서 30분이나 넘게 혼자 있었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오히려 집에 들어가 잠이나 잘 핑계가 생겼으니 굳이 나쁘다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짧은 시간이지만 한나절이든 반나절이든 무념무상으로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재확인한 것을 성과로 삼고 다음 기회를 보아야겠지?

 

 

가져갔던 자리는 바위 위에 한 3분 펼친 게 모두다. 나중에 아주 유익하게 활용되긴 하지만. ㅋㅋㅋ

 

 

삼동공원 연못에 있는 연 중에 참 아담하고 예쁜 게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꽃? 하면 장미! 했는데 연꽃으로 바꿔야겠다. 바꿨다. ㅎㅎ. 나는 참 간사하다. 예쁜 연꽃 보았다고 장미를 배신하다니.

 

 

데크 길을 다닐 땐 조심해야겠다. 송충이 같은 벌레가 사람 손 닿는 지점에 홍길동처럼 출몰하기 때문이다. 쏘이면 제법 오래갈 것 같다는...

 

 

연못에 있는 잉어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구경거리다. 특히 값싸고 양많은 과자를 손에 쥐고 있는 상태라면 금상첨화다. 집에서 나오면서 챙겼던 '포테이토 스낵'은 아이들 입에 반도 못들어갔다.

 

 

산책길이 괜찮다. 짧긴 하지만 자르락 자르락 자갈돌 밟는 기분도 나쁘지 않고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시비석도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준다.

 

 

워낙 유명한 시이건만, 가만히 서서 도종환 시를 다시 음미해봤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한바퀴를 돌아나오는 길이다. 막내가 사자상에 올라탔다. 옛날 생각이 났다. 아마도 10년 전일 게다. 오빠가 막내만 했을 때일 것이다. 부곡하와이. 동물 박제가 많은 곳이다. 박제 전시실에서 곰을 만났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을 시베리아 반달곰이 내 손목을 물었다. 아들이 혼비백산하여 아빠의 팔을 빼려고 잡아당겼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지만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ㅎㅎ

 

 

막내에게 당시의 모습을 재연시켜보았다. 사진찍기용이다보니 별 재미가 없다. 손목까지 깊숙이 넣어 연출하는 데도 한 번에 안 돼 위기 상황을 느끼는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손을 집어넣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다면 막내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에이 그렇게 해볼 걸...

 

맞은 편에 있는 사자상 등에도 올라타더니 뒤에서 껴앉는 모습을 찍고 나니 좀 전에 손목을 물린 데 대한 복수극 쯤으로 보인다. ㅋㅋ. 뭐든 해석하기 나름. ㅎㅎ

 

이때에 비가 주르륵하고 쏟아졌다. 우산 대신 아주 유용하게 쓰인 물건이 별로 앉지도 못했던 자리였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