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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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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 06:54

사용자 삽입 이미지경찰청 누리집에 있는 홍보용 자료에서 발췌한 사진.

총선 기간이지만 경기 일산 초교생 납치미수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당연히 화살은 경찰에 꽂혔다. 불과 얼마 전 안양 초교생 납치 살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국민 앞에 사죄하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탓이다.

오늘 4월 1일치 일간지 대부분 사설은 이 문제를 꼬집었다. 경찰을 나무라는 데야 그 내용이 뻔하겠지만 어느 신문이 어떤 표현을 썼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열어본다.

<경향신문>은 ‘헛말이 된 경찰의 어린이 치안대책’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해 어린이 부모만 만나 간단히 얘기를 듣고는 ‘단순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조사하지도 않았고, 아파트 폐쇄회로(CCTV) TV를 확인하지도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긴급을 요하는 강력사건으로 분류하지 않음으로써 범인이 도주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준 것이다.(…)경찰 조직에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얼빠진 경찰의 수사태도에 답답해하면서 “말단 경찰관에서 최고급 간부에 이르기까지 어느 부분이 막혀 있고, 어느 대목이 흐트러져 있는지 조직을 전면 점검해 일대 쇄신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는 ‘날뛰는 범죄, 한심한 경찰’이란 제목을 붙였다. “늑장 및 부실 수사로 비난 받는 이런 경찰에 의지해야 하는 국민은 불행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섬김의 뜻이 뭔지 모르고 복지부동만 하려는 공무원을 낱낱이 솎아내야 한다”고 강력한 처벌로 공무원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눈에 띄는 주장이 있다. “범인이 활보하며 무슨 짓을 할지를 생각하면 경찰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경찰이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아일보>, ‘이런 경찰 믿고 어떻게 아이 키우나’. “2월 새로 부임한 어청수 경찰청장은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마들어 전국 경찰서에 붙였다. 전시용 구호만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 수장을 향해 쓴소리를 내뱄었다. 심각한 사안에 ‘재미있다’는 표현이 어울리진 않지만 “쥐 잡는 일을 귀찮아하는 고양이를 집안에 기를 필요가 없듯이 범죄예방에 무심하고 범인 안 잡는 경찰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경찰의 무성의와 무능을 질타했다. 지나치다 싶지만 가슴에 와 닿는 비유다.

<서울신문>은 ‘이런 경찰관들 옷 벗겨야 한다’는 제목으로 논조를 펼쳤는데 혜진·예슬 양 사건에서 한 수사관이 ‘부실수사’를 양심고백한 사례를 들면서 “경찰관들의 의식과 수사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번 사건이 또 발생하다보니 “그 같은 우려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피해 어린이 부모에게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요구한 경찰관, CCTV 확인시 납치사건으로 보기 어려웠다고 해명한 일산경찰서장, 그밖에 기강해이가 이 정도에 이를 만큼 방치한 경찰청 지휘라인은 옷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얼빠진 경찰, 불안한 국민’이란 제목으로 경찰의 한심한 태도를 질타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있었던 사실을 나열하고 맨 마지막에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조직이 경찰 (…) 관계자 엄벌 같은 판박이 대처로는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빠진 경찰 조직을 개조하긴 어렵다. (…)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뻔한 주장을 내세웠다.

<조선일보>, ‘경찰, 무능한 건가 넋이 나간 건가’란 제목. 사설에서도 기사와 같이 당시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용히 따라와.” “살려주세요.” 그리고 상황을 카메라에 담듯 상세한 지문들. 사설을 읽으면서 ‘무슨 이런 표현까지…’했는데 “이 정도면 경찰관의 유·무을 여하나 성실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경찰관들의 지능을 검사해 봐야 할 판이다”는 비판으로 연결하고 있다. 경찰을 조지는 데 확실한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 절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케 한다. 경찰이 수사본부 설립 하루 만에 범인을 잡았다고 해놓고도 “하지만 정말 구제불능 경찰이랄 수밖에 없다”고 질타하고 있느니 범인을 잡은 경찰로선 이 표현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중앙일보>는 ‘경찰, 번할 수 없는 조직인가’란 제목으로 경찰을 비난했고, <한겨레> 역시 ‘얼빠진 경찰, 본분으로 돌아가라’라고 했으며 <한국일보>도 ‘우리 경찰 언제나 스스로 달라지려나’라며 혀를 찼다.

이번 사건이 혜진·예슬 두 어린이 유괴사건에 이은 것이다 보니 국민의 실망감이 더 큰 측면이 있다. 그런 만큼 언론도 경찰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던 점이 이해된다. 하지만 안양과 일산의 대형사건(?) 때문에 모든 경찰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야 국민 정서상 감내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일선에서 치안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경찰관들에게까지 힘 빠지게 하는 표현은 삼가는 아량도 언론이 가져야할 덕목 아닐까 생각한다.

사소하게 느끼는 사건 하나에도 되짚어보면 큰 사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대처하는 자세는 백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참에 민원에 권위적인 태도를 보였던 경찰관들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실수를 하더라도 국민이 용서하는 아량을 보이지 않을까.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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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집 둘째 아이는 장래희망이 발명가랍니다. 장영실이나 에디슨처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소원이랍니다. 발명가가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며 은근슬쩍 열심히 공부하도록 유도하지만 얼마 가지 못합니다. 수학책을 펴놓고 공부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로봇을 만들거나 고무줄 총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만들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데 솔직히 그러지 못합니다. 아이의 학교성적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학교에서 공부 잘하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해줘야지 하면서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연히 속상해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고싶은 공부해도 되는 세상>


 큰아이는 중학생인데 장래희망을 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거나 동영상 만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다더니 지금은 그런 꿈조차 꿀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학업성적이 좋지 않아 한동안 학원에 다녔는데 학교서나 학원에서나 하루종일 공부하는 것이 국·수·사·과 위줍니다. 이러니 공부하는 것이 즐거울 리 있겠습니까. 공부하는 시간밖엔 텔레비전 드라마를 봅니다. 한동안 넋을 놓고 보다가 옆에서 공부하란 얘기만 들리면 그냥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면 그 마음고생이 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되고 싶었던 꿈을 하나 둘 포기하면서 개성 없는 인간성을 지닌 채 사회로 배출되겠지요. 획일화된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정해진 공부만 죽으라고 하고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전공학과와 상관없이 취업공부에 매달려 또 기나긴 시간을 소비하다시피 하면서 나이를 먹겠지요. 회사에서 원하는 능력을 갖추었거나 재수가 좋으면 월급을 좀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테고 경쟁에서 밀려나면 또 몇 년간이고 취직시험 공부하느라 부모 속을 썩이겠지요.


 나는 정말 이런 사회구조가 싫은데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부모들처럼 내 아이가 다른 아이와 경쟁해서 이기길 원하고 나중에 좁은 취업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선 다른 경쟁자를 물리쳐주길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요? 요즘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교육정책이 요구하는 공부를 잘한 아이는 흔히 '좋다'고 하는 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해 부러움을 삽니다. 반면 학교 다니면서 제 하고 싶은 것을 혼자 해온 아이들은 경쟁에서 밀려 결국 부모·친지·친구로부터 비난을 삽니다. 지금의 비정규직 사람들처럼 차별을 받으며 살 수도 있겠지요.


 가끔 언론을 통해 자녀가 아직 어린 초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는 데도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같이 갑갑한 우리의 교육현실이 싫어서라고 합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어느 재벌 회장이 그랬습니까?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또 20%가 80%를 먹여 살린다는 말도 진리인 것처럼 돌고 돕니다. 그 말에 나라의 교육을 꾸리는 사람이 부화뇌동해 20%의 엘리트만을 배출하려고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닐까 여깁니다. 100%의 국민이 100%의 국민을 먹여 살리는 정책을 펴면 정말 안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교육감 직선제에 희망을 건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도교육감 선거도 보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처음으로 도민들이 직접 투표에 참가해 선출하는 첫 직선제여서 관심을 더합니다. 어떤 후보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사람인지 유심히 봅니다. 이들이 제시한 비전과 공약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두 분 다 어느 공약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들일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또 나름대로 정책을 펴놓으면서 의욕을 담았겠습니다만 도민을 상대로 공약을 내건 첫 사례여서인지 교육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무리 교육자치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획일화된 전체 교육기조를 거역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교육감 직선이 우리 교육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직선제인 만큼 후보들은 좀 더 바람직한 교육풍토에 대해 고민하게 될 테고, 결국엔 아이들이 입시에 매달리지 않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7.12.04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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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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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1 17:37 신고 Favicon of https://dino999.idomin.com 무한자연돌이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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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가혹한 세금을 매겨 '혈세'를 거둬들이는 국세청?

사전에 보면 혈세를 ‘[명사]가혹한 조세’라고 쓰여 있습니다. 몇 가지 예문도 들었는데, ‘탐관오리가 백성들로부터 혈세를 거두어들였다.’ ‘가뜩이나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군자금까지 내어 놓으라니, 그야말로 혈세 아닌가?’ ‘백성의 혈세를 범포한 영문 죄인들을 색출하시오!’등등.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 혈세라는 말을 참 예사로 사용합니다. 사례를 볼까요.

“그것이 국민의 여론이고 그것이 환경을 지키는 길이고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연합뉴스 2008.3.26)

“기자실을 대체하기 위해 1억여 원을 들여 만든 ‘기사 송고실’은 업무용 공간으로 바뀔 계획이다. 정부의 무리한 조치로 혈세만 낭비한 셈이다.”(문화일보 2008.3.25 천인성 기자의 취재일기)

“언제까지 혈세 낭비를 되풀이해야 합니까.” (동아일보 3.24 강정훈 기자가 경남지역 시민단체의 말을 옮기면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하고 특검법을 날치기 처리해 혈세를 낭비한 점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정치적 만행”(조선일보 2.23 홍석준 기자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말을 옮기면서 쓴 글)

이외에도 무수히 많으나 지적마저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봐 이쯤에서 ‘왜 혈세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되는지 설명하려 합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이면 대부분 알 것입니다. 이게 혈세와 어떻게 다릅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혈세’가 있다는 얘깁니까. 내가 받는 월급에서 세금이 꼬박꼬박 빠져나갑니다. 직장생활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소득세를 ‘혈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먹는 음식에도 세금이 빠져나갑니다. 그 부가세를 아직 한 번도 ‘혈세’라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집이 없으면 세금 내지 않습니다. 내가 소득이 없으면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사치스런 물건을 사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세금을 내는 것은 낼 만하니까 내는 겁니다. 그것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자치단체가 살림을 사는 것 아닙니까. 그 세금이 가혹하다면 지금 시대에 국민들이, 시민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언론이 ‘혈세’라고 자꾸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고 ‘혹세무민’입니다. 그리고 위 예문에서 조선일보의 글을 옮기면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을 따왔는데 여당의 원내대표면 한 국가의 상당한 벼슬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이 ‘혈세’라는 표현을 쓰다니요. 정부가 그럼 국민을 대상으로 ‘혈세’를 걷고 있다는 얘깁니까.

“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이니 이는 혈세나 다름없다.” 이런 식의 표현이면 ‘혈세’라는 단어를 써도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이나 정치인들, 시민사회단체에서 ‘혈세’가 뭔지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무식하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두 가지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어 몰입교육에 앞서 우리말부터 제대로 쓰도록 공부 좀 하세요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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