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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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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진해시와 경남도민일보가 공동주최한 진해 생태숲 마라톤 대회에 딸과 함께 구경 갔다가 시청 광장에서 묘한 느낌을 주는 조각상을 발견했다. 이용덕 작 'Walking 050831'이라는 작품이다. 작년에 스펀지에도 소개됐던 모양이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뭐 별 것 아닌 조각상인 듯한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신기하다. 얼굴 부위가 둥그렇게 음각되어 어느 위치에서 보든 서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듯한 착시를 이용한 기법인데 그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작품을 보면서 또 신기해하는 나나 딸의 표정이 더 재미있다.
조각상을 촬영하면서 여러 방향에서 딸과 함께 찍지 못한 게 아쉽다. 아쉬우나따나 여러방향에서 조각상을 찍었으니 누리꾼께선 잠시 쉬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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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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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은 현충일. 백과사전에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기념일"이라고 되어 있다. TV를 보니 이명박 대통령도 현충원에 참석해 "나라를 다시 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고 추념사를 읊었다. 다행히 어디에 글을 써서 남기는 일정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현충일 하면 6.25전쟁이 떠오르고, 임진왜란 정도까지 생각이 확산되긴 한다. 나 어렸을 적엔 현충일이 아니라 6월만 되면 TV고 영화고 전쟁 이야기로 도배를 했다.  학교마다 반공을 소재를 글짓기에 표어, 포스터 작성을 위해 부산했다. 괴물 같은 북한 괴뢰군을 무찌르는 국군장병 아저씨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밀려오는 개미같은 중공군을 따발총으로 무찌르는 미군도 멋있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가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아군과 적군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됐다. 한국전쟁 때만 해도 그렇다. 군인들보다 더 희생당한 이는 민간인이었다. 이때 남한에선 38만 명이 죽었고 남북한 합치면 100만 명은 족히 될거라는 추정이다. 단 3년만에 말이다.

어쨌기에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이 이렇게 많이 희생당했을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투 동막골' 등의 영화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은 민간인을 가만 두지 않았다. 국군이 점령하면 민간인을 모아 빨갱이라고 총살하고, 인민군이 점령하면 또 민간인을 국군에 동조했다고 가만 두지 않았다. 힘없는 민간인이 이래저래 총든 사람들에 휘말리면서 희생은 더 컸다. 보도연맹 사건은 대표적이다. 밥 한 끼 챙겨먹으려고 가입했다가 국군에게 붙잡혀 단체로 총살 당한 일이 어디 한둘이랴. 내 고향 진주 평촌에도 고개 넘어 저수지 쪽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총살당했다는 애길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현충일 하면 전쟁중에 장렬히 전사한 국군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총든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현충일이 무슨 날이냐"는 질문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날"이라고 교과서답게 대답한다. 학교에서 당연히 가르친 대로 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 군인들에 의해서 죽은 우리 같은 민간인도 많이 있단다." 아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전쟁영화를 봐도 군인끼리 총질하다 저들끼리 죽지만 민간인이 죽는 꼴은 별로 보이지도 않은 데다 전쟁통에 민간인이 군인보다 더 많이 희생됐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봐, 총을 든 군인이 총싸움하다 죽은 것이 억울하겠니, 아니면 총도 없고 아무런 무기도 없이 또 죄도 없이 끌려가 총살 당한 민간인이 억울하겠니?"

"그러니까 오늘은 태극기에 검은 띠를 달고 묵념하는 것은 전쟁 때문에 희생당한 남북한 군인을 위하기도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민간인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태극기를 통해 전쟁통에 돌아가신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미군에 의해 83명이나 학살당한 곡안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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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진전면 곡안리는 한가로웠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꽃혀있었다. 6.25때 많은 분들이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곡안리 재실이 어디 있는지 마을 어르신에게 물었다. 재실이 두 개란다. 이씨 재실이 있고 김씨 재실이 있는데 김씨 재실을 말하는가 하면서 가던 반대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대로 돌담 골목길 사이로 빠져나가니 좀 큰 길이 나왔다. 그 길로 쭉 올라가니 재실같은 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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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갔더니 입구 옆에 김씨 성의 비석이 보인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두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6.25때 주민들이 총 맞아 돌아가신 곳 맞습니까?" "그~어는, 여~가 아이고 저~짜... 여기선 안 보이네..."하면서 마을 건너편으로 손가락을 가리킨다. "아, 그래예..."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 데 아내와 아이들이 불평이다. 좀 제대로 알고 오지 하는 원망이 섞였으리라. 그렇잖아도 이 더운 날에...

김씨 재실을 빠져나와 우리는 다시 마을 사잇길로 가로질러 이씨 재실로 향했다. 피곤해도 아내와 아이들은 애써 막내에게 손그네도 태워주며 나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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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논길을 따라 걷는 것이 힘겨웠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보다 막내를 데리고 오던 아내가 결국 돌아가자고 한마디 던진다. "저기 보이제. 저기다. 지원이는 내가 업으께."

이씨 재실은 김씨 재실보다 규모가 컸다. 재실로 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비석이 안내를 한다. '성주 이기석 순국지지'. 저곳이 6.25때 그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한 곳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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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엔 문이 잠겨 있었다. 김주완 부장이 옆집에 이야길 하면 열어준다고 했는데 굳이 그럴 것 까지는 없겠다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곳이 아침에 설명했던 그 장소라는 것만 확인시켜주면 될 것 같았다. 입구 옆에 있는 두 그루의 앵두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흐드러지게 맺혀있었다. 막내가 자꾸 땅에 떨어진 앵두를 집어먹으려하자 빨리 기념촬영하고 가잔다. 앵두 좀 따먹고 가자고 했더니 아내가 "그 앵두에는 죽은 사람 영혼이 들어있어서 먹으면 안된다"며 만류한다. 아, 나참... 할 수 없이 벌써 저만치 내려간 아내와 아이를 따라 곡안리 이씨 재실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돌아가는 길에 김부장이 일러준 대로 황점순 할머니를 찾아갈까 했는데 막내가 계속 울어대는 바람에 차로 바로 갔다. 차에 가서야 막내는 제 엄마 젖을 물고 곤히 잠이 든다. 에구 이놈...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현충일과 곡안리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고 8월 11일, 주민들이 이씨 재실에 모여 피란가기로 했는데 미군 전투기가 나타나 기총소사로 할머니, 할아버니, 부녀자와 아이들 83명이 한꺼번에 총에 맞아 죽게되었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아까 봤제. 그 동네 할아버지들. 그 할아버지들의 아버지 엄마, 누나 동생이 비행기에서 쏜 총에 맞아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노?"

그러나 너무나 평화스런 마을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이들은 이 마을에 그런 끔직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신 아내만 "그렇나. 에구 어쩌나"하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아이들에게 다시 확인하듯 현충일에 대해 물었다. 오전 내내 세뇌교육하듯 강조해서인지 아이들은 아빠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날." 운전대를 잡은 내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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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메세나협의회에서 발행한 안내책자.

어제(200863) 경남메세나협의회에서 그동안의 활동과정과 기업과 예술단체의 결연사례, 회원단체 목록 등을 실은 소책자를 발간했다. 책자를 받는 순간 여느 기업체의 홍보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결연된 예술단체가 은근히 부러워지면서 시샘도 솟아오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회상.

20여 년 전 학교연극을 하던 우리는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무대의 규모를 크게 줄여야 했다. 어떤 때엔 궁여지책으로 무대장치가 크게 필요 없는 서사극만 골라 무대작업을 했다. 총학생회에서 지원하는 몇 푼은 그야말로 밥 몇 끼 먹고 나면 사라졌다. 저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연습기간의 경비를 충당했고 어쩌다 졸업한 선배가 격려차 방문했을 땐 소주와 막걸리도 걸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학생들의 동아리활동으로 하는 공연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성 공연단체가 이런 배고픔에 직면하면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동요도 동요지만 제돈들여 극단을 운영하기란 녹록 않다. 그래서 어떤 극단들은 야심차게 창단했다가 몇 회 이어가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공연예술이 그렇듯 성패의 근간에는 아이디어와 실력, 그리고 돈이 항상 그 가운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예산 규모만 빵빵하다면야 작품의 성공은 떼어 논 당상이다.

무대가 얼마나 규모 있고 감동적이냐 하는 것 관객의 첫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무대 자체에서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다면 연기는 더욱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같은 표정의, 같은 동작의 연출이라도 무대에 따라 전달력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굿쟁이(연극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굿쟁이라고 표현한다)' 짓을 계속할 수 있을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것도 예술성을 높이는 데 큰 요인으로 꼽힌다.

책자를 보니 기업과 결연을 맺어 후원을 받는 예술단체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책에 소개된 단체 외에도 결연한 단체가 많이 있을 터이고, 또한 후원을 받지 못하는 예술단체는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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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원테크가 솟대패사물놀이예술단과 결연을 했구나. 지난 221일 삼원테크 구내식당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했던 모양이다. 반응이 좋았다고 적혀있다. 경남메세나협의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기업-문화 결연사업을 위해 이택우 사장을 찾아갔더니 연극이고 음악이고 이런 것보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사물놀이하는 것을 많이 보고 좋아했는데 그런 거나 있으면 결연하자고 해 솟대패와 연결해주었단다.

그러고 보면 CEO의 취향에 따라 예술단체와 기업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모르겠다. 예술에 별 관심이 없는 CEO'아무거나' 붙여달라기도 하는 모양이다. 메세나운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CEO가 예술활동을 직접 하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일례로 마산관악합주단을 후원하는 경남스틸의 최충경 대표는 알토 소폰을 연주한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취미가 있기 때문에 그이가, 또는 그이가 운영하는 기업이 후원하는 예술단체는 마산관악합주단뿐만 아니라 경남재즈오케스트라와 지역 화가나 문인들의 작품발표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단다.

책자에 소개된 결연관계를 간단히 소개하면, 경남스틸-마산관악합주단, 무림페이퍼-진주챔버오케스트라, 서울이비인후과-대안공간마루, stx조선 주식회사-경남팝스오케스트라와 아르끼챔버오케스트라, 경남은행-경남오페라단과 고성오광대, 청아병원-경남프리모앙상블, 동환산업-극단 미소, 경원여객자동차주식회사-매성국악무용보존회, 노키아tmc-가곡전수관, 대경건설주식회사-USD현대무용단, 동은화학-선무용단, 장생도라지-이상근기념사업회, 삼흥열처리-김해삼정걸립치기보존회, 흥일기업-김해신포니에타 정도다.

한편 경남메세나협의회는 지난해 426일 설립준비위를 발족해 831일 법인설립 등기, 올해 4150여 기업과 예술단체, 또는 개인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옛날 해마다 한두 번은 부잣집 앞마당이 떠들썩했다. 질펀한 탈춤놀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대청마루에서 탈춤을 주최한 양반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마당놀이를 즐기고 있다. 마당 가장자리엔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목을 빼고 구경을 한다. 얼씨구 추임새도 넣고 어깨춤도 덩실한다. 아이들도 흥겹다. 이날 경비는 모두 부잣집 양반이 결재한다. 이것이 오늘날 메세나운동의 시작 아닐까. 메세나운동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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