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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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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밀양아리랑아트센터서 폐막식…누적 관객 3500여명 성황

연기대상·연출상과 함께 3관왕 “대한민국연극제서 돋보일 작품” 평

6월 대구서 개최 제2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경남 대표작으로 참가



진해 극단 고도의 <오케이 컷!>(유철 작·연출)이 제35회 경상남도연극제(이하 경남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오는 6월 2일 대구에서 개최되는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할 경남의 대표극단으로 선정됐다. 극단 고도는 이번 연극제에서 단체 작품상인 대상을 비롯해 연기대상, 연출상 등 3관왕을 차지하면서 경남연극의 새로운 기대주로 부상했다.


도내 12개 지부 14개 극단이 참가한 이번 경남연극제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9일까지 13일 동안 순수 관객 3500여 명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을 동원하며 성황을 이뤘다는 평가다. 공연은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그리고 밀양청소년수련관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됐다. 9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오후 7시 30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폐막식을 거행했다.


◇극단 고도 <오케이 컷!> 단체 대상 = 이번 연극제에 참가한 14개 작품 중 영예의 대상은 극단 고도의 <오케이 컷!>이 차지했다. <오케이 컷!>은 과거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실향민 한민국과 지인 한대한이 DMZ내 어느 마을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무모하고도 황당한, 그러면서도 웃픈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은 현실과 영화적 상상을 오가며 진행되는데 이를 몽타주 기법과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 풀어냈다.


<오케이 컷!>은 심사기준인 △창작초연 △개성있는 공연 △발전가능성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돋보일 작품에 가장 부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그러면서 대상작에 대해 대한민국 연극제를 대비하면서 수정보완을 통해 좋은 성적을 내주기를 기대했다.


단체상 금상은 진주 현장의 <길 위에서>와 통영 벅수골의 <꽃잎>이 받았고 은상은 창원 미소의 <황혼의 노래>, 김해 이루마의 <거기 사람이 있었다>, 밀양 메들리의 <다섯손가락>이 받았다.


◇개인상 = 개인상으로 연기대상은 작품상 대상을 받은 진해 고도의 <오케이 컷!>에서 열연을 펼친 이선무와 통영 벅수골 <꽃잎>에서 능숙한 연기를 선보인 손미나가 수상했다.


우수연기상에는 김해 이루마의 정명심, 창원 미소의 윤연경, 밀양 메들리의 이현주가 각각 수상했으며 신인연기상은 사천 장자번덕의 김종필이 받았다.


창작초연작 4개 중에서 극의 구성이 가장 돋보였던 진주 현장의 <길 위에서>를 쓴 임미경에게 희곡상이 돌아갔다. 연출상에는 대상작 <오케이 컷!>의 유철이, 무대예술상은 함양 상림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현장의 박범주와 이금철이 함께 수상했다.


◇총평 = 우상전 심사위원장은 이번 연극제에 대해 “서울 연극은 단순한 흐름 속으로 흘러가는데 경남 연극이 이렇게 다양하게 개성 있는 무대작업을 하는 줄 처음 알았다”며 총평을 하고는 “또한 경남 젊은 연극인들이 노인 역을 너무 잘해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서 “대극장 설계 구조가 동양인의 체형에 맞지 않아서 대사 전달이 잘 되지 않는데 이 부분을 많이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체 대상·연출상 수상자 유철 = <오케이 컷!>에서 연출과 극중 한대한 역을 맡은 유철은 이번 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원인에 대해 “작품의 콘셉트가 좋았고 배우들의 기량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는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로 대신했다.


- 이번 작품에서 희곡도 쓰고 연출을 했는데 배경이 있나?

△ 이산가족 통일을 테마로 작품을 한 게 두 번째입니다. 앞 번 작품은 <그날이 오면>이었고요. 재작년에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이산가족입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그러셨어요. 고향이 임진각 너머인데, 통일이 되면 뛰어서라도 가겠다. 그 한마디가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죠. 실제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니가 연극을 하니까 내 얘기 좀 해주라” 그러셨어요. 


-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희곡상의 표현을 연극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또 무대인 DMZ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나타낼 것인가 고민이 많았어요. 


- 대한민국연극제에 대비할 각오는?

△ 경남연극제 위상이 깎이지 않게 노력해야죠. 심사위원들께서 지적해주신 부분 잘 새겨서 남은 기간 보완을 잘하도록 고민하겠습니다.




<폐막식 화보>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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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리가 늦었다. 게으름과 미련 때문이다. 집에서 작성하려니 자료가 회사에 있고 또 회사에서 작성하려니 수첩을 집에 두고 왔고.. 오늘도 그렇다. 더는 늦추지 말자고 자료를 찾는데 사진 자료들을 모두 회사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것이렷다. 하는 수 없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자료 재활용. ^^


강의 시작과 함께 황무현 교수는 나눠준 페이퍼 빈 공간에 나무와 해와 집을 그려보라 했다. 수강생들이 그리고 나서도 그것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려보란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부분 한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은 나무와 해와 집의 모양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획일적 교육 때문이란 얘기겠지. 그는 아동미술심리학 전공이다.


이번 한 달 그를 통해 미술을 보는 시각이 좀 변할 수 있으려나. '미술'이란 단어는 예부터 사용해오던 용어가 아니란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미술'이란 단어가 등장한 게 조선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이라고 하는 '한성순보'에 실렸단다. (순보 : 10일에 한번 발간하는 신문)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눠준 페이퍼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일반적으로 글자 의미상 미술이란 미, 즉 아름다움을 기교에 의해 기술한다는 의리로서, 좁게는 조형예술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시에 예술의 넓은 의미 중에서도 미술은 소리나 동작 문자 등에 의해 표현되는 비물질적인 형태들과는 상대적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시각조형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아, 이렇게 베껴 적다보니 미술이 더 어려워진다. 뭐 옛날엔 서화가 미술의 거의 전부였다면 이젠 조형이나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을 미술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토털아트, 그게 미술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미술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예를 들어 내가 안경과 안경집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건 미술 작품이다"라고 정의하면 사람들이 "야~ 대단한 작품입니다."하며 엄지척해줄까? 웃음거리만 안 되면 다행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미술 전람회에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소변기를 떼어다 전시해놓곤 제목을 붙였다. '샘'이라고. 이것은 미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혐오스러운 물건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술사 어느 시점에서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되어버렸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건이 그것인데 마르셀 뒤샹이라는 인물이 건방지게도 소변기를 작품이라고 우긴 탓에 현대 미술에 '레디 메이드'라는 인식이 가능케 해준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계 거목 김종영도 이런 레디 메이드(이미 만들어진 것)를 미술전시회에 종종 내놓았다.




미술을 감상하려면 미술관에 가야만 하는 걸까. 요즘은 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텔레비전, 비디오, 영화, 만화, 광고, 사진, 도시공간, 하물며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일상 생활에 밀접해져 있고 그래서 미술을 읽어내는 연습을 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미술계 정론이기는 하겠지만 황 교수가 한 말 중에 "예술가에게 처음 맞딱뜨린 시련은 카메라의 출연이다"는 말에 공감한다.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카메라의 등장 이전에는 화가들의 소명은 대부분 오브제를 그대로 화폭에 담는 거였을 것이다. 물론 상상도 현실처럼. 그러나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굳이 애써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화가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마네니 모네니 하는 인상파 화가들은 카메라의 성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림을 그렸으며 대부분 많은 화가들은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하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카메라의 발명으로 세계의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면에 세 마리의 소가 등장했다. 알타미라 동굴의 소와 피카소가 그린 소, 그리고 이중섭의 소. 어찌보니 세 마리의 소가 유사하다. 황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그리는 행위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 눈도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걸까?


세세히 기록하다간 1박2일도 모자라겠다.




아우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산에서 샀다면 80%는 위작일 거라는. 워낙 유명한 화가인 데다 그가 그린 단색화라는 게 모방하기 쉬워 그런지 몰라도 위작이 많다는 얘긴데... 게다가 비싸기까지 하니. 위작 논란에 대해 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다. 천경자의 '미인도'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모방한 그림이 얼마나 정교한지 정작 작가 본인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원 작품이 많이 나돈다는 것은 미술계에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미술계엔 폭력이 존재한다고 했다. 조영남의 대작사건은 그가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라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해도 남에게 몽땅 맡겨버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차라리 엔디 워홀처럼 자기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고 이름 붙이고 작품의 대중화를 위해 찍어낸다고 했으면 별 문제가 안되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작품의 가격을 올리는 행위는 출판계에서 책 판매량을 올리는, 즉 베스트셀러 조작 과정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피카소는 그점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했다고 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무작정 그림만 그린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진 않다. 이름 없이 그렇게 그림을 그려 아트페어에 내놔봐야 사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의 대부분은 스승을 잘 만나거나, 혹은 제자를 잘 만나거나 혹은 사위를 잘 두거나. 그냥 예사로 깎은 방망이 하나가 수억을 호가하는 김종영의 작품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은 그가 키워낸 제자들이 또한 대한민국 미술계 어른들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실력있는 스승에 실력있는 제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는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단다. 그의 예술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엔 20세기 예술의 거장 보이즈와 케이지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공공연하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그의 예술세계를 반어적으로 드러낸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예술세계란 가치형성에 묘한 법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백남준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유한하다. 비디오 부품이 수명 끝 하면 다른 부품으로 갈아야 하기 때문에 종내 모든 부품을 다 갈았을 때에도 그것이 백남준의 작품이 될 것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작품이 어디까지 교체되는 것까지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내용을 아예 못박아놓았다고 한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백남준은 예술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매장문화재가 외국의 박물관에서 버젓이 전시되고 있다는 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남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가지고 제것인양 전시해놓고 자랑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는 미술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황 교수 생각에 최고의 미술품은 세한도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아마도 다음 주엔 세한도에 대한 얘기가 더 나오지않을까 싶다. 첫 시간 유익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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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예술극단은 아마도 1992년쯤 극단 마산과 함께 뻔질나게 드나들던 극단이다. 당시 경남매일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연극 붐을 일으켜보자는 무모하고도 당찬 꿈을 안고 있었다. 개인적인 타임라인으로 치자면 학교 졸업 후 극예술연구회 동문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산되고 잠시 실의에 빠져 있었던 터였다.


당시 문화부 연극 담당 기자로 종종 마주쳤던 사람은 동남일보의 문보근, 경남신문의 정기홍이었다. 문보근 기자의 연극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과 친화력도 강해서 연극인들이 다들 알고 있다 내지는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품 뭐 준비하고 있나 싶어서 당시 세림상가 옥상에 있던 극단 마산에 가면 언제 왔는지 벌써 죽치고 앉아 있었고 또 한날은 방향을 바꿔 창원시보건소 쪽 창원예술극단(아마 창원예총사무실 공동사용)에 가면 또 어느새 거기서 장기를 두고 있는 문 기자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동상가 뒤에 있던 극단 미소에선 문 기자를 한 번도 맞딱뜨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극단 미소 단원들하고도 잘 지냈다. 연습 마치고 나면 올림픽공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돌리기도 했었다.


오늘 밀양아리링아트센터 소극장에 겨우 시간 맞춰 들어섰을 때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천영훈 극단미소 대표를 만났다. 다른 굿쟁이보단 많이 만나지는 사람이다. 1993년 연극 담당을 그만두고 거의 20년 넘게 굿판을 떠나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천 대표 옆에 앉아 있던 박승규 씨도 그렇고 정석수 선생도 그렇고 사람이 그리 쉬 잊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리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나도 굿쟁이 출신이긴 하지만 기자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호칭이 그랬다. 대부분 누구누구씨 아니면 대표, 감독 등등. 그런데 딱 한 사람 현태영 감독만큼은 선배라고 불렀다. 아마도 경남대서 현 선배가 '맥베스'(그러지 싶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확실하다.)를 올릴 때 처음 불렀던 호칭이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연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내가 소답동에서 자취할 때 참 자주도 만났더랬다. 현 선배 집에도 종종 갔었는데, 특히 다락방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애 이름이 예림이? 그랬던 것 같다. 그 이름이 이번 작품 '소풍'에 언급된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일흔한 살 영감쟁이에겐 딸 예림이가 그나마 효녀다. 꼬박꼬박 생활비도 대어주고. 


영감쟁이와 띠동갑인 아내 둘자는 쉰아홉. 어쩌면 한창 나이다. 스물하나에 연극보러 갔다가 눈이 삐가지고 연출을 맡았던 영감쟁이한테 덜컥(?) 시집을 간 것이다.


현 선배가 그렇다고 일흔한 살은 아니지만 묘하게 뭔가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극중의 영감쟁이와 현선배, 그리고 둘자와 형수... 예림이라는 딸. 아마도 집에 키우고 있을 '눈치'라는 강아지.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노년을 살면서 한 번도 소풍이라고 가본 적이 없어서 이제라도 한 번 가보자는데 아내는 덜컥 치매에 걸리고 자신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야경이 쥑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고 하더니 현 선배는 이 '소풍'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특히 화려했던 과거를 보낸 사람은 나이 들어 그 시절을 종종 그리워하는데 마지막 장면 아내가 집에 홀로된 상황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되자 영감은 어차피 시한부 삶이란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독극물을 마시고 바로 아내 뒤를 따라 간다.


그제야 이들 부부는 소풍을 간 것일까.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두 노인 앞에 두고 이제 홀로 남은 반려견 '눈치'의 슬픈 짖음이 가슴을 파고 든다.


공연이 끝나고 선배를 찾아가 그랬다. "선배, 혹시 자서전 아임니꺼?" "그렇지." 답이 너무 쉽게 돌아와서 살짝 걱정이 됐다. 진짜 선배 아픈 건 아닐까? 언제 한 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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