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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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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주현이 1958년 당시마산에서 김수돈 정진업 이런 양반들과 함께 공연을 했구나. 이즘 이광래는 드라마센터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동시 동국대 교수까지 맡아 자신의 연극론을 본격적으로 펼쳤단다. 그의 연기론은 스타니슬라브스키에서 더 한발 나아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했다는데 그는 이 연출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행간에서 연구하는 연극인의 자세가 엿보인다.




마산에서의 공연 얘기를 덧붙인다.


익살스런 장서방 역을 맡은 주현의 코믹한 연기, 고뇌를 씹어삼키면서도 조용히 결의를 다지는 정도 역을 맡은 심영식의 그 처절한 표정 연기, 그리고 자비로우면서도 보다 큰 일을 위한 용단을 내리는 어머니 역을 맡은 천선녀의 그 중후한 연기. 이렇게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 보기 드문 공연이었는데도 마산의 관객은 그걸 몰라주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쫑파티(공연 자축 겸 합평회) 석상에서 온재 선생의 대갈일성이 터졌다. 


"화인·월초 두 사람은 잘 들어. 관객이 없는 연극이 있을 수 있나? 지금이 홍도야 울지마라 시대인가? 마산 관객을 이렇게 팽개친 것은 물론 고향을 오래도록 떠나 있는 내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안 해. 허지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자네들이 때때로 연극을 했다면서 관객을 18세기 시대에 이렇게 팽개쳐두고도 무슨 예술가로 자처하고 있는가? 책임을 느끼게 책임을."


그날 저녁 오랜만에 세 사람의 선후배는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도 마산의 연극 부흥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1958년엔 이광래의 일생에 변화가 온다. ITI(국제극예술협회) 한국지부 이사를 거쳐, 1960년에는 평생을 두고 고락을 같이 해 온 동랑 유치진의 청탁을 흔쾌히 수학하여 드라마센터(한국연극연구소) 상임이사와 같은 해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의 강사를 맡아 드디어 이광래는 자신의 소신을 펼치게 된다.


우선 동랑이 세계를 돌면서 유명한 극자의 구조를 촬영한 것을 바탕으로 드라마센터의 무대와 객석구조를 설계하려 할 때, 저 유명한 '김치'론을 제기한 것이다.


"우리는 버터 대신 김치를 먹고 살아온 민족이니 극장설계도 여기에 알맞게 해야 한다"는 이른바 문화주체론이다. 그리하여 서구의 원형무대, 장방형무대는 물론, 우리 고유의 탈춤·인형극 그리고 마당굿까지도 공연이 가능하도록 무대의 구조를 설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어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출강하게 된 직접 동기는 서라벌예대(초급대학 2년제)와는 사뭇 다르게 연극미학·현대극론 그리고 새로운 연출론(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한 색채와 선과 율을 원용한 새로운 도학의 연출법)을 강의하면서 '그저 느낌과 주먹구구식 종래의 연극'을 배격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연극예술의 진가는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치밀한 계산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데 있다'는 광래 자신의 생각을 후학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결코 학자적 위치에서 이론 탐그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기 위해, 전술한 소극장 '원방각'을 조직하여 서울은 물론 지방에까지 공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주 개천예술제(옛날의 영남예술제)에 참가한 <기류의 음계>라는 작품이다. 대체로 작가가 자기 작품에 대하여 '작의'라는 해설을 붙여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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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글을 보면 마산 관객은 아주 대형에다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마산의 거룩한 의거를 기념하기 위하여 1961년에는 3·15의거 1주년 기념 예술제전 준비가 거시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61년 2월 중순쯤 나도 화인 김수돈 선생의 급한 부름을 받고 부산에서 마산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과는 달리 약간 복잡한 일이 얽혀 있었다. 제전위원회 사무국장을 시인 김춘수 선생이 맡아 전 행사를 총괄하고 있었고 그 아래 예술 분과위원회가 있었는데 위원장에 김수돈, 부위원장에 월초 정진업 선생이 맡아 있어 오순도순 의논만 맞으면 참으로 훌륭한 작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두 분이 의견충돌을 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월초는 3·15의거 정신을 고양한 작품을 거의 완성해 놓았으니 자신의 작푸을 레퍼토리로 선정하여 공연하자는 것이요, 화인은 시간만 넉넉하다면 전폭적으로 창선하겠지만 문제는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 마산이 낳은 극작가요 연출가인 이광래 선생에게 일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월초는 폐업(?)하고 집에 칩거하여 일을 거들지 않으니 화인이 나를 부른 것이다.


두 분 다 나에게는 대 선배라 어느 편을 들기도 거북하여 실로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백고천난 끝에 두 분을 화해시키고 화안과 나는 일약 서울로 가기에 이르렀다. 마산시장 전용차로 부산 수영 공항(당시는 부산공항이 수영이었다)으로 직행한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하려할 때 수튜어디스가 우리를 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만 하더라도 비행기 승객은 말쑥한 옷차림에다 무슨 선민의식으로 도색한 표정을 가다듬고 있어야 할 텐데 머리카락은 갯바람을 맏아 춤추듯 너울거리고, 까만 세루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까만 색깔이 아니라 차라리 하얀 빛깔이라 해야할 만큼 막걸리가 온 두루마기에 묻어 있었으니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서울에 내린 화인과 나는 종로 5가에 있는 '현대문학사'로 먼저 찾아갔다. 이광래 선생댁의 주소를 알기 위해서였다. 누상동 이광래 선생댁은 물론 서라벌예대로, 국립극장(당시는 명동에 있었다)으로, 그 옆 골목에 있는 은성(최불암 씨의 선비가 경영하던 술집)으로 마구 서울 장안을 샅샅이 뒤진 끝에 돈암동에 있는 방공호집(시인 구상·조지훈·박목월, 화가 김환기·이중섭 씨 등이 자주 모이시던 술집)에서 온재 선생을 뵈옵게 된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셨던 온재 선생께서도 고향 마산의 3·15 1주년 기념공연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단박에 눈에 형형한 안광이 빛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공연 날짜를 손꼽아 보시더니 "어쩔 수 없네. 리바이벌이야"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오리지널 작품을 상연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부득이 서라벌 예대에서 리허설용으로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을 원용하여 고영ㄴ한 바 있는 유치진 작 이광래 연출의 <조국>을 레퍼토리로 선정하고 마지막 손질을 더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산의 강남극장에서 개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마산의 관객은 대배우 중심의 화려하고 박력있는 연극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감동이 아닌 잔잔한 감동에는 그다지 큰 박수를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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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극단 상상창꼬 <매직가게>

715일 오후 7시 함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공연

 

마술가게라는 간판이 걸렸지만 판매하기 위한 옷들이 진열된 평범한 옷가게다. 조명이 밝아지면 점원이 마네킹을 들고 나온다. 쇼윈도 앞에 세우고 옷을 입힌다. 팔등신의 늘씬한 마네킹만 있는 게 아니다. 임신부 의상을 위한 배가 볼록한 마네킹도 있다. 점원이 나가자 마네킹들이 불만을 털어놓는다. 쉬지도 못하게 한다며. 그런데 옆 가게 알바 녀석들이 쇼윈도 앞으로 다가와 담배를 피운다. 이 녀석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마네킹 치마 밑을 들여다 보려고 낑낑대고 킬킬댄다. 마네킹들은 혼이라도 내주고 싶은데 아직은 인간의 시간이라 움직일 순 없고 불평을 늘어놓는 가운데 밤이 된다.


드디어 가게 이름처럼 판타스틱한 일들이 펼쳐진다. 마네킹들은 서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의 나쁜 습성에 대해 흉을 본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간 마네킹들. 불도 켜지 않고 실내로 들어온 것을 보면 필시 도둑이 든 것이다. 그런데 이 도둑, 뭔가 이상하다. 마네킹과 춤을 주지 않나, 진열장의 옷을 고르기도 하고 하물며 술병까지 꺼내서 들이키기도 한다. 도둑이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일순 긴장감이 객석을 메운다. 아무리 여유를 부려보지만 도둑인 이상 이런 순간에는 진땀을 흘리게 마련이다. 고양이 발걸음으로 살며시 들어오는 남자. 손전등을 들고 더듬거리며 들어오는 모양새가 한눈에 척 봐도 초보 도둑이다.


선배 도둑과 초보 도둑은 이렇게 상견례(?)를 하게 되는데 서로 정체를 파악하고는 마음이 놓였나 보다. 때론 형님, 동생 했다가 때론 배신자로 여겼다가 옥신각신하며 날을 샌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도둑이 되어야 했던 이유, 도둑으로서 가져야 할 철학은 그대로 부조리한 인간세상을 향한 일침이 되고 만다.


이번 공연은 우수예술단체 찾아가는 문화활동사업으로 진행되며 이상범 원작의 <마술가게>를 김소정 연출이 각색했다.(문의: 070-8832-8801)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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