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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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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으로 간 월초로선, 당시는 자신이 어떤 인연이 맺어질지 상상도 못했겠지만 학원 선생을 맡았던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을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월초가 있는 학원의 교장이 일본으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떠났는대 대한 교장으로 온 사람이 청마 유치환이었던 것이다. 유치환과 파트너가 되었으니 그가 놀 물은 반은 정해져버린 것일 터이다. 물론 월초가 오늘날에 기록으로 남겨질 인물이기도 하지만 당대 그가 만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역시 문화활동은 노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하겠다. 김용기, 전혁림, 윤이상, 유치환...




통영에 서린 추억의 첫째는 교장이던 김욱주 박사(동영제대 농학부 줄업, 초대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동아대학교 대학원장 역임)의 따사로운 인격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너그러우면서도 절도있는 생활 리듬을 깨뜨리지 않는 스포츠맨(동경제국대학 테니스 대표선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600평이 넘는 넓은 저택에 수천권이 넘는 장서를 즐비하게 갖춰놓고 독서하다 지치면 밖에 나가 운동하고, 운동하고 돌아오면 아내(진주 일신고녀-진주여고 출신)가 끓여온 차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말하자면 그의 꿈같은 생활이 부럽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박사의 부친은 통영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판사 출신의 변호사요, 갑부였기 때문이다. 김 박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둘째는 청마 유치환 사백(詞伯 학식이 높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월초가 부임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앞에 말한 김 교장은 동경으로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떠나고 후임으로 청마가 부임한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연극과 산문을 공부하고 있었던 때라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서정시에서 특히 언어의 시성을 탐구하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청마 사형의 시집(청마시초)을 모조리 읽고, 적잖은 감화를 받기도 하였다.(부산일보 '세정무정'에서)고 술회하고 있다.


셋째, 연극의 선배와 동료를 만나 견문을 넓히고 보다 높은 차원의 연기 공부를 하게된 것이다. 당시 통영에는 참으로 기라성 같은 대 배우와 연출자가 많이 있었다. 


박정섭(나운규의 아리랑과 벙어리 삼룡이 등의 영화에 성격배우로 활약함), 서성탄(일본 축지소극장 출신의 연극인, 동랑 유치진과의 인연으로 통영에 정착함), 김용기(동경학생예술좌 출신의 연출자, 이해랑·김동원 등과 동인), 김아부(후기 토월회 출신의 연기자), 최배송(동양극장 출신의 연기자) 그리고 극작가 박재성 등이 거의 날마다 모여 토론하고 숙식을 같이 하는 날이 많았다.


물론 그 비용은 3000석 지주의 둘째 아들 김용기가 도맡다시피하였지만, 거기에다 무대장치를 맡아 협력을 아끼지 않은 화가 김용주(오늘날의 국전 전신인 '선전' 특선 작가), 전혁림(국전 특선작가)과 효과를 돌봐 줄 작곡가 윤이상, 정윤주와 시인 유치환, 시조시인 장용두(하보) 등이 가세하였으니 월초로서는 참으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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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연극예술축제를 보니 기간이 길다 싶어도 그런 게 아니더라. 7일부터 16일까지 열흘동안 열려 이 기간 한 번은 보러갈 여유가 있겠지 싶었는데... 문득 정신차려보니 벌써 축제가 끝난 시점이더니...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역시 열흘남짓인데... 벼를 새도 없이 기간이 끝나버리지나 않을까 싶다. 이렇게 예단하면 기회라도 생기려나.


밀양축제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몇 개 있다. 내일 경남도민일보에서 볼만한 공연 몇 개 소개하겠지만 내 눈에 띄는 것도 몇 개 있다.


<20세기 소년소녀 창가집>,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작품인데 극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정의신은 재일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극과 영화를 한다. 2012년 작품 중에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란 연극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뤘는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승원을 비롯해 히로수에 료코, 구쓰나기 스요시 등이 출연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 작품도 정의신의 그런 시각을 읽을 수 있을지.... 


해외초청작으로 멕시코의 <마야 전설의 새>도 호기심을 끈다. 극단 아낄라레. 소개한 글을 보니 생활도구들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인다. 멕시코의 흥겨운 리듬도 느낄 수 있겠다. 내용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풍요로운 마을 마야에 대한 이야기. 기뭄이 들자 가장 중요한 곡식인 옥수수 씨앗을 구하려 떠나는 줄거리다.


극단 목화가 펼치는 김유정 원작의 <봄봄>은 어떻게 풀어냈을지도 궁금하다. 거장 오태석 각색 연출이라 더욱 끌린다. 이밖에 진해 극단 고도의 <오케이 컷!>, 창원 극단 미소 <황혼의 노래>, 밀양 극단 메들리의 <하모니카>도 눈길이 가는 공연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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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 월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나 종종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된 터라 무책임한 남자의 못난 모습 정도로 여기는 장면이 바로 열애 중에 이유없이 떠나는 남자의 모습이다. 현주가 그렇게 좋아 자신의 집에까지 드나들게 했다면 부부나 다름없을 터.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이웃에 대한 체면 때문이라고... 핑계가 마뜩찮다. 어머니야 아들이 술집 여성과 장래를 약속한다 하니 눈이 뒤집힐 수 있다. 그 또한 자기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고. 헌데 이웃 눈치를 본다 정도면 정진업의 현주에 대한 진정성은 믿을 수 없는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진영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통영으로 학원 선생이 되어 간다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현주는 다시 만나게 될까.





현주가 무슨 사연으로 남녘 바다가 있는 마산의 유흥가에 등장했는지는 몰라도 현주가 술이 취하면 "이제 지내고 보니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그때는 왜 그렇게도 가슴 저리고 뼈를 깎는 고통이었던지" 하며 술잔을 기울이더라고 했다.


당시로서는 고녀(오늘의 여고) 출신만 돼도 신여성 인텔리로 치부되던 시절에 한국 명문 사학의 하나인 이화여전 출신이고 보니 그녀의 눈은 자연스레 연극을 공부하고 문단 데뷔의 딱지가 붙어 있는 월초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거기다 청년 월초는 누가 봐도 탐낼만한 헌헌장부인데다 우람하면서도 이목구비가 반듯했으니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황폐할대로 황폐해진 현주의 가슴에 월초의 출현은 그야말로 '봄비'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 사랑의 '진도'는 초고속으로 발전되어서 "서재라고 꾸며놓은 내방에 현주가 드나들면서부터 금단의 과실은 따먹어버린지 오래가 되었고 어머니의 반대(돌아가신 아버님은 너그러우셔서 못 보신체 해주셨지만)와 이웃에 대한 체면으로 그런지 두 달만에 내 혼자 마산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현주는 알 까닭이 없었다. 장래를 약속한 바는 있지만 같이 떠날 처지는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주의 영업시간을 기다려 궐녀(그녀를 낮춰 이르는 말)를 보내놓고 이내 밤차를 탔던 것이다."(부산일보 <세정무정>에서)


도망치듯 마산에서 진영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현주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월초는 시달려야 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장 진영은 월초를 반겨주었다. 소꿉친구들과의 재회에서 '현주와의 사랑' 때문에 번민하던 갈등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한 달쯤 뒤 지금의 통영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인 '통영협성상업학원'에서 교사로 취임하라는 통보가 친구 편으로 날아든 것이다. 그리하여 본의아닌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부임지인 통영으로 가게 된다. '통영협성상업학원'은 당국의 정식인가를 얻지 못한 채 유림을 비롯한 여러 유지들이 재단을 형성하고 그 재단에서 운영하는 중학교 과정의 두 클래스짜리 사설학원이었다. 직원이래야 교장과 월초 그리고 청지기 한 사람 모두 세 사람뿐이었다. 그런데도 월초에게는 평생동안 잊을 수 없는 가지가지 추억이 서린 곳이 돼버렸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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