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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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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재를 두고 한하균 선생은 높은 존경심이 있나 보다. 경연하는 학생들이 온재의 작품을 선정해 공연준비를 하자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하도록 추천한 일이나 극예술협회를 구성원은 그대로 하면서 '신극협의회'로 변경할 때 대표를 유치진에게 양보한 일을 두고 '희생'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엔 "이렇게 해야만 극단 신협이 국립극장에서 자주 공연할 수 있을 테니"하면서 덧붙였다. 말하자면 계산된 작전이란 얘기다.



황무지에도 봄은 오는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그 악명 높은 미군정 193호는 소멸되고 연극예술의 씨앗은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 연극학회의 탄생과 함께 연극경연대회의 개최였다. 1949년 6월 금천대회관(전시경찰국자리) 3층에 사무실을 두고 고고의 성을 울린 한국 연극학회의 참여 인사는 기라성같은 대 연극인들이 거의 다 모였다. 회장에 유치진, 간사장 이광래, 간사에 홍해창, 김진수·이종일·박동근 등 다섯 사람이었다.


이들은 당면과제로 첫째, 같은 해 8월부터 방학을 이용하여 하기 연극강좌를 시행하고 둘째, 10월에는 무대예술원 산하 각 단체로 하여금 민족의식 양양 전국 연극 계몽대를 파견하기로 하고 셋째, 10월에는 6일간 시공간에서 제1회 전국 남녀대학 연극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여 그 모든 행사를 성공리에 끝마친 것이다.


극평가들도 "한국 연극 발전상 최소 30년의 시간을 단축시켰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연극 인구의 저변확대와 연극예술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한국 연극학회의 이러한 노력은 한국 연극사상 찬연한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간사장으로서 실무총책을 지고 동분서주한 이광래의 공로는 실로 눈부신 바 있다고 하겠다.


대체로 작가는 자기 작품을 발표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모 대학에서 이광래 작품을 레퍼토리로 선정하여 책 읽기(연습의 첫 단계)에 들어간다는 소문을 들은 광래는 그 대학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추천하면서 자기 작품 공연을 말린 것이다.


대회의 공정한 운영을 꾀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어 두기 위하여 자기의 욕심을 버린 것이다. 이러한 자기 희생정신은 국립극장 공연 때에도 우감없이 발휘된다.


1948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립극장 공연법에서는 '무질서한 흥행극과 사상적인 반동분자 및 악질적인 흥행 브로커를 방지하기 위하여'라고 그 창설 목적을 밝히고 있다.그리하여 1949년 가을 국회에서 정식으로 창설령이 제정되자 그 극장 전속으로 '신협'과 '극협'의 두 극단이 지정되었다.


신협과 극협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이광래가 주재한 '극예술협회'가 모태가 되어 새로이 탄생한 극단으로, 창설령이 제정되기 직전에 '신극협의회'로 바뀌고 그 구성 멤버도 거의 대부분 극예술협회 진용 그대로였다. 다만 대표자만 이광래에서 유치진으로 바뀌고 스스로 간사장이 되어 있었다.


이는 오로지 자기 자신보다는 극단을 먼저 생각한 용단이었다. 왜나하면 유치진은 그때 벌써 국립극장장으로 거의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만 극단 신협이 국립극장에서 자주 공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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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에 통영연극예술축제 소식을 실었다. 그 전문이다. 형편만 된다면 이 기간 휴가 딱 내고 통영서 살았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ㅋㅋ


77~16일 시민문화회관·벅수골소극장 등서 23개 작품 공연

개막작 <덩이> 폐막작 <아카섬이 남긴 것은> 창작극 2편 눈길

 

오는 7일부터 16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과 벅수골소극장, 남망산공원 야외무대 등에서 펼쳐지는 제9회 통영연극예술축제에 많은 예술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영연극예술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질 뿐만 아니라 공연의 다양성도 이뤄나가고 있다.


이번 축제는 통영콘텐츠창작 스테이지, TTAF 스테이지, 가족극 스테이지, 꿈사랑나눔 스테이지, 섬마을 스테이지, 생활속의 스테이지로 나눠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통영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해 콘텐츠로 발굴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개막작 <덩이>와 폐막작 <아카섬이 남긴 것은>이라는 두 창작극을 올리게 되었다. 7일 오후 730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덩이>는 통영의 야소골마을 설화를 담아낸 작품으로 임진왜란 당시 실력을 인정받던 한 대장장이 이야기를 통해 민초의 삶을 녹여냈다. 김선율 작 장창석 연출.


16일 오후 3시와 730분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아카섬이 남긴 것은>은 일본군 위안부였던 할머니 순지의 이야기다. 프랑스 유학 중인 손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으려 하고 정치인인 아버지는 부끄러운 가족사라며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을 불태워버린다. 그런 중에 손녀 인영은 일본인 남자친구와 함께 아카섬에 남은 증거들을 찾아 나선다. 지난해 통영연극예술축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작품을 무대화한 것이다. 김정리 작 박장렬 연출.


그리고 TTAF스테이지 출품작으로 <시계가 머물던 자리>16회 한국국제2인극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과 희곡상, 연기상을 받은 작품이다. 123년을 산 누이와 목소리를 잃은 기상캐스터 이야기다. 마음속에 멈췄던 시계들을 다시 가게 하는 미스테리한 힘이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이외에 일본 코지야마 만스케극단(마임공작소)<만스케 극장>과 극단 걸판의 <늙은 소년들의 왕국>, 극단 액터스 <양파>, 극단 이루마 <황소 지붕 위로 올리기>, 명품극단 <메밀꽃 필 무렵> 등이 통영시민문화회관과 벅수골 소극장에서 열린다.


가족극 스테이지에는 달나무의 환상음악극 <달의 선물>과 극단 장자번덕의 애니메이션 아동극 <오즈의 마법사>가 준비되어 있다. <달의 선물>은 인간 세상에서 시간을 함부로 움직여 달에서 쫓겨난 다섯 아이 도, , , , 솔이 다시 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인간과 얽힌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익히 아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되 어린이 인형극에 맞춰 플래시 애니메이션기법과 소형 관절인형을 활용해 무대의 상상력을 높인 작품이다.


그리고 꿈사랑나눔 스테이지에는 17개의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이 무대는 다양한 예술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고재경 마임쇼, 남해안별신굿, 버블쇼, 놀이패새터의 시민대동놀이, RS프레소의 어쿠스틱 콘서트, 팀퍼니스트의 코미디 서커스쇼, 강지수 마임쇼, 가곡전수관의 한여름밤의 젊은 풍류, 마임공작소 판의 쇼스타일 르네, 서승아의 부토아리랑, 크로키키브라더스의 드로 인 서커스, 문선부 김지원의 거리에 서다, 그레고의 뮤지컬 퍼핏, 인수화풍, 행복을 배달하는 광대, 김호중의 희망콘서트, 통제영의 바람 갈라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섬마을 스테이지 프로그램으로 칼춤 그리고 지역 전통무’, ‘관객과 함께하는 마임이 진행된다. 이밖에 생활 속 스테이지 행사로 다양한 전시와 체험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문의: 055-645-6379)


경남도민일보 게재된 공연일정표


월간 한국연극에 실린 내 기사.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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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래가 남원 군민 앞에서 썰을 푼 '명연설'이 당시엔 어땠는지 몰라도 썩 논리적이라거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마도로스가 수입의 6할을 선주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농민이 7할~6할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지, 아픔을 공감한다면서 연극에서 대사가 6할을 일한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된 것을 남로당 요구대로 무상몰수 무상분배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게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었나에는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어쨌든 이광래는 그렇게 연설해서 관객의 동의를 얻어 대본대로 공연을 한 모양이다.


미군정 시대 포고령이 바로 법이었으니... 1948년 200원짜리 관람료에 세금을 매겼으니 많은 극단이 해체되고 관람료 10원짜리 저급한 공연이 판을 치게 되었단다. 여튼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잘 해야 하는겨.



"발바닥 밑이 저승인 뱃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뱃일을 했으면서도, 일제강점기 때에는 순 수입액이 6할은 선주에게 빼앗기고 나머지 4할로 선원의 등급에 따라 얼마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여러분, 농민들도 한해 농사를 뼈빠지게 일하여 추수를 하고서도 7할 내지 6할을 지주에게 착취당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때(이른 봄이었다고 함)가 되면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해 간다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지주가 잘못됐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몽땅 다 빼앗아버리면 그들은 또 무얼 먹고 삽니까? 지주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 동포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대사에서 6할을 일한 사람이 가지고 4할은 지주에게 주자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이곳(남원) 남로당 당원들이 와서 '무상 몰수하여 무상 분배하는 대사로 바꿔라. 그렇지 않으면 공연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이 작품의 대사는 어디까지나 예술활동이지 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대사를 바꾸면 연극이 되지 않는 고충이 있습니다. 남원 군민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공연을 하라는 함성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훗날 온재는 '한 사람에게 진실한 감정은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하다'는 괴테의 말을 실감했었다고 술회하곤 했다.


이어서 6월에 문교부(교육부) 주최로 제1회 연극경연대회가 개최되어 대 성황을 이루었지만 무대공연에 관한 일체의 실무는 무대예술원 특히 이광래가 총책을 맡아 그 대회를 성공리에 끝마치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1948년 5월 27일부로 미군정포고령 제1913호가 발표되어 연극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리하여 6월 1일부터 3일간 남한 전지역 모든 극장은 항의의 표시로 일제히 문을 닫은 것이다. 포고령은 종래의 극장 입장세 3할을 10할로 대폭 인상한다는 것이었으니 이에 온 연극인과 극장 측이 동맹파업한 셈이었다.


이 여파로 대부분의 극단이 해체 혹은 해산되고 '신청년', '극예술협회', '청춘극장', '황금좌' 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틈새를 노려 당시 극장 관람권 200원 하던 시절에 10원짜리 싸구려 극장인 동대문 계림극장 등이 나타나 사이비연극이 판을 쳤고 (10원 이하라야만 면세가 되었기 때문에) 덩달아 모모사단·모모청년단 심지어는 경찰 후원회까지 신파극단을 앞세워 이른바 후생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면세 혜택을 받아 그 이익금을 착복하는 바람에 한국 연극계는 무지와 악덕만이 난무하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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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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