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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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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래가 남원 군민 앞에서 썰을 푼 '명연설'이 당시엔 어땠는지 몰라도 썩 논리적이라거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마도로스가 수입의 6할을 선주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농민이 7할~6할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지, 아픔을 공감한다면서 연극에서 대사가 6할을 일한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된 것을 남로당 요구대로 무상몰수 무상분배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게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었나에는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어쨌든 이광래는 그렇게 연설해서 관객의 동의를 얻어 대본대로 공연을 한 모양이다.


미군정 시대 포고령이 바로 법이었으니... 1948년 200원짜리 관람료에 세금을 매겼으니 많은 극단이 해체되고 관람료 10원짜리 저급한 공연이 판을 치게 되었단다. 여튼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잘 해야 하는겨.



"발바닥 밑이 저승인 뱃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뱃일을 했으면서도, 일제강점기 때에는 순 수입액이 6할은 선주에게 빼앗기고 나머지 4할로 선원의 등급에 따라 얼마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여러분, 농민들도 한해 농사를 뼈빠지게 일하여 추수를 하고서도 7할 내지 6할을 지주에게 착취당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때(이른 봄이었다고 함)가 되면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해 간다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지주가 잘못됐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몽땅 다 빼앗아버리면 그들은 또 무얼 먹고 삽니까? 지주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 동포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대사에서 6할을 일한 사람이 가지고 4할은 지주에게 주자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이곳(남원) 남로당 당원들이 와서 '무상 몰수하여 무상 분배하는 대사로 바꿔라. 그렇지 않으면 공연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이 작품의 대사는 어디까지나 예술활동이지 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대사를 바꾸면 연극이 되지 않는 고충이 있습니다. 남원 군민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공연을 하라는 함성이 장내를 진동시켰다. 훗날 온재는 '한 사람에게 진실한 감정은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하다'는 괴테의 말을 실감했었다고 술회하곤 했다.


이어서 6월에 문교부(교육부) 주최로 제1회 연극경연대회가 개최되어 대 성황을 이루었지만 무대공연에 관한 일체의 실무는 무대예술원 특히 이광래가 총책을 맡아 그 대회를 성공리에 끝마치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1948년 5월 27일부로 미군정포고령 제1913호가 발표되어 연극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리하여 6월 1일부터 3일간 남한 전지역 모든 극장은 항의의 표시로 일제히 문을 닫은 것이다. 포고령은 종래의 극장 입장세 3할을 10할로 대폭 인상한다는 것이었으니 이에 온 연극인과 극장 측이 동맹파업한 셈이었다.


이 여파로 대부분의 극단이 해체 혹은 해산되고 '신청년', '극예술협회', '청춘극장', '황금좌' 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틈새를 노려 당시 극장 관람권 200원 하던 시절에 10원짜리 싸구려 극장인 동대문 계림극장 등이 나타나 사이비연극이 판을 쳤고 (10원 이하라야만 면세가 되었기 때문에) 덩달아 모모사단·모모청년단 심지어는 경찰 후원회까지 신파극단을 앞세워 이른바 후생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면세 혜택을 받아 그 이익금을 착복하는 바람에 한국 연극계는 무지와 악덕만이 난무하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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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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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연출을 맡은 이삼우 감독에게도 말했지만 내 관극 태도의 가장 큰 단점은 감상하려하지 않고 분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볼때마다 그러는 바람에 어쩌면 이젠 그냥 감상만 한다는 것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관극 습관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남의 연극을 보기도 전부터 연극 무대에 올라섰으니... 게다가 고등학교 때 연극이라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이 극본 쓰고 연출까지 맡았더랬으니... 오죽하랴.


학교에서 연극을 했다는 것은 일종의 족쇄이기도 했다. 4학년 가을학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작품을 올리고 연이어 신문사 취직했다. 자연히 그 바닥을 떠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은 시연회 때마다 불렀고 갈 때마다 작품을 분석하고 연기를 지적해댔다. 후배들은 그걸 원했고 나는 원하는 만큼 지적질을 해줬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보니가 아니고... (^^;) 나는 언제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분석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건 또 기자생활하는 데 일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안녕이라 말하지마> 시연회 시작할 때 이삼우 감독이 극을 보고서 배우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는 말만 안 했어도 난 그저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내 처지에 딱 맞는 배역을 아바타 삼아 상상의 세계를 즐겼을 것이다. 극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다 보니 오히려 진짜 연출이 원했던 어떤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시연회를 보면서 '분석' 차원에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인물 캐릭터'였다. 인물을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연극의 태동 배경이 현실세계의 배우,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등장인물과 배역이 동일인이기 때문에 인물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그랬다.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실존인물과 가상배역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았고 어떤 때엔 그게 대사인지 그냥 실제로 말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게 재미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무대에 올려진 모든 상황은 픽션이라는 거. 캐릭터만, 음 내가 보기에 한 85% 정도 배우의 것을 배역에 반영한 것 같다는. 그래, 망구 내 생각. ^^



(술 한 잔 했더니 급 피곤... 나머지는 내일로...)


성철. 나이 80대. 건강상태 반신불수에 정신은 혼미하지만 고집은 그대로. 직업은 연극 연출가이자 극단 대표. 소득수준은 자식들이 극단을 팔자고 할 정도이니 거의 없다고 봐야. 좌우명은 연극에 살고 극단에서 죽는다 뭐 그쯤. 개인적 목표는 그래, 확실하게 드러난다. 죽기전에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꼭 한 번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극단을 만들 때부터 셰익스피어 할려고 극단명까지 '코딜리아'로 했는데 한 번도 올리지 못해 속에 한이 맺혔다. 기질은 괄괄하고 성질이 나면 아무소리나 내뱉고, 하지만 경우를 아는 편.콤플렉스는 아무래도 찬종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양훈. 나이 70대. 건강상태는 아주 양호. 직업은 배우이긴 한데 제대로 배우 대접 받은 적이 별로 없는듯. 뭐 그래도 경남연극제에서 대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연기는 인정해줘야 할 듯. 소득수준은 뭐 다른 일로 벌이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극단에서 나오는 돈이야 거의 없을 테고... 맨날 얻어먹는 것으로 보아 사는 게 형편없는 듯하다. 그런데 폼은 있는 대로 다 내는 그런 인물형. 좌우명은... 이런 인물형에 좌우명이 있겠냐만 그래도 달아본다면, 그래 폼생폼사. 개인적 목표는 여자랑 한 번 자보는 거? 그리고 연극에서 주연을 한 번 맡아보는 거. 기질은 가볍다. 오해도 잘하고 잘 토라지기도 하고, 저도 선배 말 잘 안들었으면서 후배 말 안듣는다고 불만이나 내비치고. 콤플렉스? 이런 사람한테 그런 게 있겠나.


찬종. 나이 70대. 건강상태 뭐 그다지. 심한 전립선으로 고생은 하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삶에 별 의지가 없다는 거. 자살 사이트에서 미스 윤을 만난 사실만 봐도 척이다. 직업은 보험외판원. 뭐 좋아서 하는 건 아닐 테고. 한때 배우였고. 소득수준은 그저 먹고살 만큼. 좌우명? 죽을려고 한 사람이 뭐 그런거 지니고 있겠어. 개인적 목표는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있다. 자신의 연기가 아주 좋아져서 성철이 형한테서 인정받는 거. 기질은 욱하는 성질도 있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다. 콤플렉스는 연기가 안 된다는 것.


주인공 세 사람 외에 조연으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미스윤, 최양, 성철의 아들과 딸, 그리고 극단 배우.


미스윤은 자살 사이트에서 찬종을 만나 그의 예술적 기질에 반해 존경하는 인물. 그 자신 또한 시인 반열에 들진 않았지만 시인 비스무리한 행보를 보인다.


그리고 아들과 딸은 생활 형편이 어렵다 보니 극장을 팔자고 아버지를 설득하기도 하고 그게 잘 안되니 돈 때문에 악에 받쳐 극단 사람들과 싸우기도 한다.


최양은 다방 종업원이긴 한데 양훈이 끊은 티켓으로 극단에 왔다가 우연히 연극을 하게 된 인물.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타고난 재능을 보인다. 직업에서 연상되는 보편적 캐릭터를 가졌다.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마지막 씬이다. 정신병원. 과거의 모든 사건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성철의 기억에서 재구성되었다는 것. 그 핵심에 찬종의 죽음이 있다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작품의 전체 플롯이 일시에 퍼즐맞춰지듯 깔끔하게 정리된다.


오늘 오후 7시 도파니아트홀 첫공연 많은 관람 바란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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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연극 바닥도 이념대결이 치열했던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땅 때문에 이념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 분단까지 이어진 것을 아닐까 싶다. 이념이야 타협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제도는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조선민족 성정이 얼마나 도아니면 모인지 반추해 볼 수 있기도 하낟. 암튼 그러한 상황에서 이광래는 남연 공연에서 땅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주장하는 남로당 조직의 요구에 역제안은 한다는데... 



극단 '민예'가 문을 닫던 그 해 그 달에 그러니까 1947년 11월에 이광래는 유치진·이서구와 함께 한국무대예술원을 조직한다. 이듬해인 1948년 이른 봄에는 우익진영의 많은 극단과 연극인들을 총망라하여 '극예술협회'라는 이름으로 UN한국위원단 환영 특별공연을 시공관에서 갖게 된다. 아울러 4월 한달간에 걸쳐 무대예술원 산하 21개 단체로 문화계몽대를 조직하여 남한 각지 촌촌면면을 찾아다니면서 이른바 연극의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때 동원된 관객수는 연 150만을 넘었다고 하니 남한 인구 2800만을 고려하면 실로 경이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한때나마 전 연극계를 장악하는 듯하던 좌익세력을 누르고 국민 정서 함양에 다대한(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이때 한국 무대예술원 예술극장으로서 이 모든 행사를 진두 지휘한 이광래는 훗날 대한민국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전북 남원에서 공연 때였다.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옛날 일이라 공연 작품명을 잊었지만 지주나 소작농과의 갈등 대목에서 5:5제냐 4:6제냐를 놓고 시비하는 대사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잠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진전시키도록 하자.


광복 전 일제강점기 때에는 거의 전부가 3:7제였다. 다시 말해서 3할은 소작인이 가지고 7할은 지주가 차지하는 가렴주구식 제도였다. 그런데 광복이 되자 5:5제가 아니면, 양식있는 지주는 4:6제도를 택하고 있었는데 급진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주로 공산주의자)은 7:3제를 주장하고 있엇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완전히 거꾸로 바뀐 것이다. 그보다 더한 극렬분자들은 땅을 무상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표현에서 다소 내가 사용하는 용어와 차이가 있음. 인식의 차이)


첫째 날 공연은 탈없이 넘어갔는데 이튿날 공연 때부터 남로당 남원군당(당시는 군인이었음) 조직원들이 몰려와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작품의 대사를 고치라는 것이다. "무상 몰수하여 무상 분배하다. 만약 이렇게 대사를 바꾸지 않으면 막을 올릴 수 없다. 실력으로 저지하겠다."고…. 이에 광래는 기발한 제안을 내놓는다.


광래는 "지금 관객이 입장하고 있으니 웬만큼 관객의 입장이 끝나면 관객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 당시도 미군정의 경찰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미온적인 경찰의 미지근한 태도가 잘못되면 영영 공연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서 이렇게 대담한(?) 제안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광래 일생일대의 명연설(?)이 탄생한다. 광래는 관객들에게 사자후를 토했다.


"나도 경상도 바닷가의 마도로스의 아들입니다." 연설의 시작과 함께 남로당원인 듯한 사람의 야유가 터져나왔다.


"마도로스가 뭐여? 그것부터 설명허랑께." 

"마도로스는 선주에게 노임을 착취당하는 뱃사람입니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광래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


14화는 이렇게 끝나구나. 잔뜩 기대하고 기다리는 순간에 중간광고가 나오는 기분이랄까... ^^ 어쨌든 어떤 명연설인지는 다음 화에서 확인해봐야 쓰겄어. ㅋㅋ.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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