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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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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아파트, 넓은 도로, 대형마트, 산, 강, 관공서와 번화가? 도시는 우리나라에서 희한하게도 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한 도시를 이제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수가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인디언추장 시애틀이 미 대통령 피어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나니 예전에 보았던 인디언 관련 영화가 생각난다. 제목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인디언이 사는 지역에 기병대 소속 군인이 왔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돈을 줄 테니 땅을 팔라고 한다. 인디언으로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아니, 누구나 밟고 다니는 땅을 팔아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돈을 준다고 하지 손해볼 것 없다고 여기고 그러고마고 했다. 다음에 그 땅을 지나려는데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들어가려니 총을 들이대면서 나가게 했다. 인디언들로선 백인들의 행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인디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 요즘의 소유개념으로 봐서는 백퍼센트 틀릴 수밖에 없다. 산도 들도, 강도 바다도 다 임자가 있는 시대이니까. 자기가 사는 집은 물론이고 돈이 된다면 함께 사는 도시가 어떻게 되든말든 모든 것을 개발하고야 마는 오늘날,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2일 오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기자와 시민을 대상으로 <도시와 인간, 그리고 언론>을 강연한 허정도 도시학 박사(전 경남도민일보 사장)은 이제 도시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일터'에서 '삶터'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다다랐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중진국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 그런데 지금 2만달러 시대다. 과연 우리가 선진국이며 1000달러만 되어도 행복할 것 같았던 그때와 비교해 2만 달러 시대인 오늘엔 20배나 행복해야 하는데 과연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 몇 있을까.

(한 번 미루면 다시 잇기 어렵다. 작성하다 다른 일 때문에 잠시 기록음 멈춘 것인데 벌서 일주일이 흘렀으니 말이다. 일주일이란 세월은 기억력을 온전히 간직하기 쉽지 않은 기간이다. 그냥 메모된 대로 기록하련다. 나중에 우연히 다시 이 글을 보게 될 때 허정도 사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다라는 것만 되새겨도 내겐 하나의 역사일 터니)

사장님은(객관적 표현을 쓰자면 현재 경남도민일보 사장도 아니니 '박사'라는 호칭을 써야 하나 내겐 그저 사장님일 뿐이다. 이순항 사장님이 그렇듯) 1985년에 자가용을 샀다고 했다. 그런데 주변에 자가용 자동차를 산 사람이 자기 말고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차가 없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다는 얘기다.

술도 막걸리만 마셨다. 음식은 배가 부르기만 하면 됐고 옷은 따뜻하기만 하면 됐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오래 전, 삼성이 별 3개로 상표를 내고 있을 때 이야기를 곁들였다. 홍콩에 간 적이 있는데 전자거리에 한국제품이라곤 눈을 씻고 뒤져봐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단다. 한 상점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삼성 카세트라이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제품인지는 가물가물)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다고 했다. 삼성 제품이 잘나가는 소니보다 비쌌으니 이해가 안되었단다.

'상전벽해'라고 했던가. 세상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변해간다. 먼지가 뽀얗게 쌓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제품들이 이제 전 세계 곳곳에서 떡하니 버티고 서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한국의 내부에 여러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한국경제는 어쨌든 국제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이렇게 잘 사는 나라임에도 왜 환경지속성 평가에서는 중하위권 국가들을 모두 포함한 상황임에도 거의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747'만 들어도 그 이유는 단번에 알 수 있다. '747'이 뭔가? 세계 7위, 국민소득 4만불 시대, 연 7% 성장이 아닌가. 거의 가능하지도 않은 수치로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환심을 샀다. (이런 공약이 먹힌다는 게 이나라 국민의 수준이다. 내가 보기엔)

모토로라 본사가 동북아에 지사를 짓는다고 하면 어떤 나라를 선택할까. 서울처럼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해 빌딩 숲에서 잠잘 걱정, 먹을 걱정 없는 곳이 좋을까, 구리찌빠처럼 도심에 큰 공원이 있고 자동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맑은 공기를 늘 마시며 사는 곳을 택할까. 최소 5년은 살 지역인데 잘 사는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빽빽한 빌딩 사이에서 가족을 데리고 와서 살고싶어 할까. 답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다시 한국의 이야기를 해보자.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국민소득 1000달러가 목표였다. 이정도가 되면 우리 국민을 '잘살아보세'처럼 잘 살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지금 2만 달러를 넘기고 4만달러를 내세우고 있다. 이후엔 또 6만 달러, 8만 달러, 10만 달러... 끝이 없을 것이다. 경제성장 목표는 계속 올라가면 갈수록 잘사는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환경 투자는 계속 뒷전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삶의 질을 생각할 때다. 소득만 가지고 잘사네 못사네 운운할 게 아니라 문화 예술 환경을 생각하며 성장을 생각해야 한다. 일터가 지금까지 중요했다면 이젠 삶터를 중요시 해야 한다.

창원시의 도시계획은 일하기 편한 '삶터/일터' 구도로 공장과 주택이 한 공간에 모인 형태다. 이런 도시계획은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다. 못살던 시절 사람들이 공장 가까이에서 살며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교통비를 아껴야만 생활이 되는 시절의 도시구도가 바로 창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은 도심에서 하고 삶은 교외에서 지내고 싶어 한다. 생활에 유익하고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은 도시라는 기준에서 보면 마산은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마산은 삶터로서의 중요성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 곳 없는 아이들>

아마존 하류엔 장마철이면 악어들이 우글우글한다. 장마로 강이 불어나 폭이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왜가리들이 이를 건너다 힘 없는 놈은 물 위로 내려앉는다. 이때를 악어들이 모를 리 없다. 추수감사절이 따로 없다. 왜가리가 악어의 먹이가 되는 위험은 왜가리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었다. 말하자면 왜가리로선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동네는 어떤가.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움직일 틈도 주지 않는 자동차들이 빽빽히 늘어서서 달리고 있다. 하다못해 놀이터로 가려고 해도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건너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길에서 놀다 자칫 차에 치일뻔하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야이노무 자슥아, 놀려면 놀이터에나 가서 놀아! 가정교육을 어찌 했기에 아이를 길에서 놀게 해!"

<도시에 대한 인식 바꾸기 - 소유문제>

창원 중앙로 주변 주택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근린생활용지로 변경해달라며 한창 주장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시로서도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개인재산권 보장'이었다. 말하자면 "내 집을 내 맙대로 하겠다는데 왜 시에서 못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집이 영원히 자기집일까. 또 그 땅은 고대로부터 아주 먼 미래에도 자기땅일 수 있을까. 지금 창원 중앙로 주변 그 집에 당시 '재산권 보장'을 내세우며 시를 상대로 싸웠던 사람 중 절반이나 살고 있을까.

도시의 생명은 국가보다도 길다.

<벤쿠버가 남긴 교훈>

벤쿠버는 세계적으로 살기좋은 도시 1, 2, 3위를 번갈아 하는 곳이다. 이유는 스탠리파크와 퍼시픽파크라는 두개의 밀림에 가까운 도심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스탠리파크를 1886년 시의회에서 몇 명의 의원들이 이 넓은 땅은 공원으로 만들자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100만평이나 되는 땅을. 우리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사고다.

퍼시픽 스프릿 파크도 마찬가지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이 학교 소유 230만 평이나 되는 땅을 공익 차원에서 시민공원으로 내놓은 것이다. 개인 소유의 땅임에도 말이다. 벤쿠버 시는1989년 이곳을 시민공원으로 승인했다.

도립미술관 설계변경 문제로 행정기관과 마찰이 있었다. 말하자면 도립미술관을 행정기관의 장이 마음대로 한다는 개념이 만연해 있고 공무원은 전문가의 의견보다 기관장의 의중이 더 중요했던 것이리라. 이러한 사례는 소규모 건물을 설계할 때에도 적용된다. 경남은행을 여러번 설계를 했는데 각 지점장마다 취향에 따라 건물이 지어진다. 어떤 지점장이 황토색을 좋아하면 건물은 황토색이 되고, 어떤 지점장이 밤색 스타일이면 건물도 밤색, 유리를 좋아하면 유리를 위주로 건물이 설계되는 실정이다.

아무리 그 지점장이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각종 행정 경력을 지니고 있다해도 디자인 분야에 일하지 않았으면 전문 설계자보다 감각이 떨어질 터인데도 건물은 '전지전능한 지점장'의 입맛에 맞춰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알아야 한다. 그 지점장이 적어도 정년퇴직할 때가지만이라도 그 건물에 있을 거라면 모르되. 몇 년 있지 않아 건물의 색상과 디자인이 바뀌는 것은 백퍼센트 지점장이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일본 오사카공항(대판공항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확실히는 기억이 안남)이 국제 현상공모를 통해 지어졌는데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자 설계기획자가 한 말이 인상깊었다. 뭐라고 했냐면, "건축에 있어서 모든 의사결정권을 주어 고맙다."란 말이다. 영원히 자신의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우리의 어떤 상황과 상당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마산 월영동 아름드리 벚꽃나무 지금은 어디에?>

마산에는 호남출신의 의사가 많다. 1910년대 일분군부대가 마산항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곳엔 국군통합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출된 의사들이 다시 호남 쪽으로 가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호남에 가봐야 그쪽에서 배출되는 의사들이 모두 진을 치고 앉았으니 경쟁만 심해질 뿐이니... 이들이 하는 말 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월영동에는 수령 줄잡아 100년은 되었지 싶은 엄청난 크기의 벚나무들이 즐비했다는 것이다. 군부대 내여서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었는데 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수문장에게 얼마를 찔러주어 벚나무 아래서 점심도시락을 먹거나 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했던 월영동의 풍경은 아파트단지 건설을 위해 전기톱으로 죄다 잘려나가고 말았으니... 어즈버 태평연월이...(?)

지금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자. 모처럼 일을 쉬는 휴일 그도 모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나간다.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 좀 구워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쉬우니 노래방 가서 한 곡조 뽑고 집에 돌아와선 피곤하다며 각자 방에 가서 취침....

큰 공원이 있는 도시의 휴일을 보자. 아빠와 엄마, 자녀가 손을 잡고 공원 내 잔디밭을 거닐며 오랜 만에 서로 생활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공을 차며 놀기도 한다. 아이가 헛발질을 해 넘어지자 아빠가 달려가 상처를 살핀다. 아이는 웃으며 일어난다. 앞의 사례와 이것 중 어느 것이 행복해 보일까.

<가치>

반드시 큰 도시가 좋은 도시는 아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그는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고 베를린은 34만명의 큰 도시다. 베를린 사람들의 소원이 무엇일까. 하이델베르그에 가서 살아보는 것이다. 아니면 프라이베르크라도. 그런데 우리는 큰 것에 집착하는 습성이 있나보다. 창원 마산 진해를 합쳐 결국 인구 100만의 도시를 만들어야만 했으니. 마산이 통합에 찬성하며 나선 것에는 계속 낙후화하는 상황에서 '7대도시'라는 옛광영을 잊지 못한 것도 반영되었지 싶다. 통합을 해서라도 이름을 버릴 지라도 우리가 사는 동네는 전국 몇 대 도시에는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의 브리스톨은 '서남부 최고의 도시'로 꼽힌다. 왜? 인구가 많아서? 브리스톨의 인구는 불과 40만 명이다. 우리는 "구 꼴랑 40만 명 가지고 무얼해?"하지만 브리스톨은 그것을 극복하고 모두 잘사는 규모있는 도시로 키웠던 것이다. 규모로 판단하는 기준은 없어져야 한다.

마산은 공장이 없어서 못 사는가? 과천은 공장이 없어도 국내 손꼽히는 행복도시다.

<도시의 조건>

'보리'라는 테니스 선수가 있다.(나머지는 내일 정리키로)

이 선수가 어렸을 때 테니스를 치는 것을 본 어떤 코치가 제의를 했다. "내가 너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주겠다. 단 챔피언이 될 때까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라"는 계약을 했다. 보리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선생이 내세운 조건은 단 한가지뿐이었다. "넌, 무조건 왼손으로만 쳐라!" 보리의 왼손 능력을 일찍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는 조건으로 경쟁을 하라는 이야기다.

모나코나 옥스포트, 여천 같은 도시들이 성공한 데는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조건을 잘 활용했기 때문인데, 마산은 그것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도시 생활>

우리는 거대시설을 좋아한다. 성산아트홀은 비싼 고급 공연을 위한 건물이다. 여기서 공연을 보는 사람은 4가지 조건이 맞는 사람이다. 예술을 이해하거나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 그도 아니면 애인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산아트홀의 예술을 보는 사람은 특정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성산아트홀에 가지도 않으면서 자기 동네에 이러한 큰 시설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거대 건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누리센터의 수영장이 국제규모라고 자랑한다. 200억원이나 들였으니. 수영장은 이제 누구나 찾는 시설이다. 동네사람이 잠깐 운동삼아 가는 곳인데 국제규격이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큰 시설을 짓느라고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여러곳에 25미터 짜리라도 많이 설치하는 것이 훨씬 주민을 위한 것이다. 그 예산이면 마산에 수영장을 4개나 만들 수 있지 않나.

주택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싼 것이 오히려 좋다. 비싼 게 좋은 사람은 집을 여러채 가지고 사람일 것이다. 집이 비싸면 가난한 사람은 언제 집을 사나.

<노력>

도시는 그냥 스스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 입맛에 맞춰 도시가 만들어진다면 도시가 어떻게 되겠는가. 런던이라는 도시가 형성되는 데에도 자본가와 시민의 대립이 있었다. 누구를 위한 도시를 꾸미는가에 언론의 역할이 크다.

일본 기타큐슈의 모지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행정관청에서 철도역을 철거하려 했을 때 지역신문이 나서서 보호캠페인을 벌였다. 그래서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 직은 신문에서 보존 논지를 여론으로 시민의 동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도시재생에는 기술주의와 문화주의가 있는데 개발 위주의 기술주의와 환경 위주의 문화주의가 있다. 기술주의는 길이 막히면 길을 더 내자는 것이고 문화주의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술주의에 치우쳐 있다.

잘사는 도시라는 구리찌빠에는 자가용 승용차가 거의 없다. 대부분 버스를 탄다. 그래서 택시도 별로 없다. 교통비도 덜 들고 빠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봐야 할 재개발 재건축>

창원의 반송아파트는 누가 사는 곳인가. 예전엔 서민들이 살았다. 공장지대가 가까워 교통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단 가까이 지은 것이다. 노동자가 걸어서 출퇴근하거나 차를 타더라도 일터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교통비가 적게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건축되면서 어떤 사람이 들어가 사나. 기존에 살았던 서민들은 대부분 쫓겨나다시피 했다. 비싼 집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재개발 정책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부유층을 위한 정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100년이 가는 콘크리트를 불과 20년 30년만에 재건축으로 돈을 벌 욕심으로 허물어뜨리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국민소득 5000달러의 브라질 구리찌바가 왜 잘사는 도시인지 제대로 알아야 도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 사장님의 강연을 나름대로 가공해봤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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