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99)
돌이끼의 작은생각 (110)
돌이끼의 문화읽기 (477)
다문화·건강가족 얘기 (20)
경남민속·전통 (14)
경남전설텔링 (74)
미디어 웜홀 (142)
돌이끼의 영화관람 (21)
눈에 띄는 한마디 (8)
이책 읽어보세요 (76)
여기저기 다녀보니 (92)
직사각형 속 세상 (92)
지게차 도전기 (24)
지게차 취업 후기 (13)
헤르테 몽골 (35)
돌이끼의 육아일기 (57)
몽골줌마 한국생활 (15)
국궁(활쏘기)수련기 (16)
Total
Today
Yesterday
11-27 02:25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쓴 글.

노유정

[기고]존댓말 쓰는 이주민, 반말 쓰는 한국인


대개 이주민들은 한국에 온지 2~3개월은 지나야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려고 각종 단체에서 마련된 한국어교실에 다니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한국어교실에선 한글 자음과 모음, 결합형태, 그리고 기초회화와 문장을 익히게 됩니다. 약 7년 전 제가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존댓말입니다. 왜 존댓말을 따로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대부분 나라의 언어에 존댓말이 따로 없다는 거 아시죠? 저의 고향인 몽골 역시 존댓말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이에게 쓰는 말이 다르고 어른에게 쓰는 말이 달라 한국어를 배우던 초기에는 시어머니께 말을 놓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말을 높이기도 했답니다. 아마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민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재 대부분 문장이 존댓말로 되어 있는데 실생활에선 그렇지 않아 의아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주민이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존댓말로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으면 100에 80은 "응, 그거 5000원!" 하는 식입니다. 처음엔 저도 그런 식의 대화가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알았습니다. 높임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분이 나쁘고 어쩌고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한국어의 쓰임을 알고 나서는 조금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 현재로는 한국 사람과 얼굴 생김새가 별 차이가 없는데다 발음도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저에게 눈치를 보면서 말을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이주민을 보면 그런 경우를 종종 겪는 모양입니다. 최근 필리핀이나 베트남 출신의 이주민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들도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다른 한국 사람에게 반말을 들었어도 그게 기분 나빠할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다른 이주민, 특히 한국에 조금 오래 산 사람들은 속으로 불만을 느꼈지 싶습니다.


한 6개월 전 모 방송국에서 마련한 이주민의 생활을 다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동남아 쪽 출신 이주노동자가 말하는 사연을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말을 놓아 자신도 그렇게 표현하는 게 옳은 건가 싶어서 같이 말을 놓았더니 들고 있던 조그만 도구로 헬멧을 쓴 자신의 머리를 툭 치더랍니다. "어디서 말을 놓느냐"면서요. 그 사장은 한국말은 높임말을 써야 한다면서 말에 '요' 자를 붙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이주노동자는 "요 사장님, 이거 어떻게 해야 돼?"라고 해서 방송국이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겐 아직도 이주민에 대해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란 편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많고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온 사람은 우대하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이런 쪽에서 온 사람에 대해선 하대하는 이상한 풍토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 신분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 같은 사람을 두고 차별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주민이 처음에 한국어를 잘 모를 때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으니 기분 나쁠 이유가 없지만 어느 정도 말의 쓰임을 알게 되면 자칫 감정을 상하게 되어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끼리도 "어디서 말 까느냐?"며 말 한마디로 종종 싸움이 일어난다면서요.


말뿐만 아니라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한국사람 대하듯 이주민을 대해주었으면 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한국 속담을 되새겨 봅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영화 플립에서 브라이스 할아버지가 브라이스와 밤 산책을 하면서 잘려나간 나무 둥지 앞에서 하는 말.

 

"갠 꽤 괜찮은 애란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광택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한 번 무지개같이 변하는 사람을 만난단다. 네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이상 비교할 수 있는 게 없단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몽골집 게르를 본 적이 있나요? 역사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아하! 그 둥근 천막! 하고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게르'라고 부르는 이 이동식 주택은 몽골민족이 오랫동안 이용해온 전통 가옥이랍니다. 소와 양, 말을 주로 키우다보니 가축의 먹이를 위해서 장소를 옮겨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동식 주택을 짓게 되었지요.

 

13세기 칭기스칸이 아시아는 물론 남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타고 다니는 유목민의 습성과 이동식 주택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몽골에는 50명도 넘게 들어가는 대형 게르가 있기도 하지만 작게는 두 사람 생활용 게르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몽골의 이 게르 흔적은 우리 일상에도 흔히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텐트입니다. 등산이나 캠핑을 가서 설치하여 생활하는 텐트가 게르와 용도상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텐트를 게르처럼 설계하면 아주 잘 팔리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ㅎㅎ

 

게르를 짓는 것은 쉬운듯 하면서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블로그 여행을 하다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몽골에 가서 게르설치를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거의 완성되어 가다가 천장이 폭삭 내려앉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몽골 사람이 "게르 짓다가 무너지는 것은 처음본다"고 했다네요. **

 

지난 8일 창원에서 나담축제를 했습니다. 개회식에 앞서 팔용동 미강광장 분수대 앞에다 게르를 설치했습니다. 그 설치과정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냥 천막 정도라고 생각하면 게르가 뭐 별거냐 싶기도 하겠지만 이것도 사람이 몇달 혹은 몇년을 사는 집이어서 재료가 무겁기도 무거울 뿐만 아니라 짓는 것도 간단하지만은 않아요. 재료를 옮기는 데에도 장정 열 명 가까이 붙어서 거들었습니다.

 

 

게르를 지을 때 처음으로 하는 공정이 나무를 가위식으로 이어 만든 벽을 둥글게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여럿이서 협동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에 경남이주민센터에서 구입한 게르는 5인용으로 벽은 5개로 구성됐습니다.

 

 

벽을 둥글게 대략 세우고 나면 벽끼리 이어지는 부분을 잘 조립해 끈으로 묵습니다. 각각 벽의 높이도 같아야 하고. 물론 서로 조립을 하게 되면 자연히 높이는 같아지지만 말입니다. 벽끼리 다 엮고 나면 전체적으로 조절을 또 합니다. 벽이 타원이 되면 천장을 올릴 수가 없거든요.

 

 

이게 벽끼리 끈으로 엮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싶네요. 나무끼리 서로 교차하는 데다 끈으로 단단히 묶으니 벽이 튼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겠네요.

 

 

벽이 완성되면 문을 설치합니다. 벽과 문은 문에 난 구멍을 통해 소가죽 끈으로 벽을 고정합니다. 그런데 이날 그 재료가 없어서 옷걸이 철사로 고정하였습니다.

 

 

문이 설치되면 공정의 절반은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제부턴 가볍게 조립만 하면 됩니다.

 

 

게르의 가운데 위치할 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끈으로 단단히 묶습니다. 천장은 몽골어로 '토온'이라 하고 기둥은 '바간'이라고 합니다. 천장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양털로 덮지 않기 때문에 맑은 날엔 햇살이 게르 안으로 들어옵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게르 안의 볕도 움직이기 때문에 이걸로 몽골사람들은 시간을 짐작합니다. 해시계인 셈이지요.

 

 

옷걸이 철사로 문과 벽을 엮는 모습입니다.

 

 

천장과 기둥을 조립했으면 바로 세웠으면 끈을 문으로 당깁니다. 천장과 문에 연결하는 오니(일종의 서까래)를 조립하고 끈을 당겨 빠지지 않게 합니다. 문 위쪽에는 오니를 받치는 홈이 나 있는데 이것이 헐렁하면 오니가 빠지므로 지붕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끈을 단단히 당려 고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면 주위를 빙 돌아가며 오니를 설치합니다. 서까래 한쪽 끝은 뾰족하게 해서 천장에 끼우고 반대쪽은 구멍을 내어 끈으로 벽에 고정합니다. 벽이 밀리게 되면 천장에 끼운 오니가 빠지므로 벽은 완전 원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중간에 있는 사람은 천장이 움직이지 않게 기둥을 잘 받치고 있어야 합니다. 

 

 

오니를 끼우는 일은 남녀가 함께 해도 좋은 작업입니다. 이날 몽골 출신 아주머니만(키도 작던데...) 일을 서까래 끼우는 일을 도왔습니다. 나도 해보니 재미 있던데... 젊은 몽골 여성들은 집짓는 일은 남자들의 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날 여성들은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구경만 했다고 하네요... 핑계가 그럴듯하지가 않습니다.

 

 

어쨌든 오니를 설치하는 작업은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해치웠습니다.

 

한국에 일하러 온 몽골의 젊은 남자들은 집을 별로 지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니 아주 능숙하게 잘 했습니다. 아마도 본능이 발동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천장에서 오니가 빠지지 않도록 벽 둘레를 끈으로 묶었습니다.

 

 

 

천장과 서까래, 토온에 오니를 끼운 모습입니다.

 

 

이건 벽에 오니를 고정하는 모습이고요. 게르를 지을 때 안정성을 보장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공정입니다.

 

 

빠지지 않게 잘 묶어야지요.

 

 

그다음엔 뼈대를 둘러쌀 천을 지붕에 덮습니다. 이 천을 먼저 설치하지 않으면 천장에 설치된 양털로 된 펠트에서 털이나 먼지가 떨어지므로 이를 막고자 함입니다.

 

 

깨끗한 천을 천장에 덮고 나면 양털을 설치합니다.

 

 

양털로 된 펠트는 겨울의 추위를 막아주는 핵심입니다. 안쪽에서 난로를 켜놓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파트 세면대에서 얼음이 얼어도 이곳에선 따뜻한 잠을 잘 수가 있지요. 경험담입니다.

 

 

펠트도 혼자서는 설치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펠트를 잡고 양쪽 끝에선 끈을 빙 둘러서 끌고 간 다음 묶어야 하니까요.

 

 

펠트 설치가 다 되어 갑니다. 게르가 서서히 형태를 갖춰갑니다.

 

 

게르가 거의 모습을 갖추니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차례입니다. 내부에 빙 둘러 칠 커튼을 손보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가구를 옮깁니다. 게르 안에 들어가는 가구는 대략, 침대와 옷장, 서랍, 식기 선반 등입니다. 물론 탁자와 난로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게르 안쪽 커튼을 다는 모습입니다. 경남이주민센터 이철승 소장 말로는 서울에 설치된 게르를 봤는데 이렇게 예쁘지 않았답니다. 안쪽에 커튼을 치니 내부가 아주 아늑해졌습니다. 뭐, 집 같아졌다는 얘기지요. ^^

 

 

펠트 위에 또 천으로 둘러 쌌습니다. 문양이 옛날부터 많이 보아온 문양인데... 몽골에도 같은 문양을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하얀 천에 파란색으로 문양을 디자인한 게 아주 깔끔하고 품위가 있어보였습니다.

 

 

다 설치된 것도 아닌데 게르 설치를 도운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군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얼마나 달랬을까요. 

 

 

열심히 게르를 설치한 '다와'입니다. 진주서 공장에 다니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고 치료 중인 친구입니다.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닌데 자기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뼈대를 이룬 벽도 끈으로 빙 둘러 묶었지만 천을 덮은 후에도 한 번 더 끈으로 묶습니다. 천이 날리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게르가 더욱 단단히 고정되도록 하는 목적도 있지요.

 

 

침대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뼈대 위에 덮었던 천이 천장과 잘 맞지 않았는지 몽골여성이 마감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게르가 완성되었습니다. 게르를 설치하느라고 고생했던 사람들, 가장 먼저 기념사진을 찍어야지요. 찰칵!

 

 

게르가 완성되고 내부의 모습입니다. 천장과 기둥 서까래가 단청을 한 문양이 있어서 한결 아름다워보입니다. 천장은 반만 천으로 가린 것 보이나요? 조명이자 시계이지요.

 

 

게르를 다 짓고 나자 얼추 나담 개막식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남이주민센터 강재현 이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통역을 맡았군요.

 

 

게르 앞에서 몽골 전통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노래가 빠질 수 있나요. 게르 쪽으로 눈을 돌려보시겠습니까? 문 양쪽에 서까래인 오니를 세워놓았네요. 원래 다른 장식을 설치한다는데 오니로 대신 세웠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빼놓은 오니는 깃대로 썼군요.

 

 

나도 기념사진 한장 찍었지요. 몽골 여름옷을 입었는데 어찌나 덥던지... 땀으로 샤워를 했답니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