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11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하동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슬 긴장된다. 상상창꼬의 김소정 감독이 연출을 맡았기에 작품은 잘 뽑아냈을 거라고 확신은 하지만... 내가 무대에 서는 것보다 더 가슴이 쿵쾅거린다.
하동서 극단이 창단된다. 지금까지 하동에서 극단이 있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하동의 첫 극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년에 하동어울터 창단 준비를 하다가 무산됐다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창단공연을 갖는다. 내가 대본을 맡아 영광스럽다.
창단공연 작품은 이주여성의 한국 가정과 사회 적응기를 다룬 '비벼, 비벼'다. 제목 '비벼, 비벼'는 작품 속 갈등과 화합의 주요 모티브인 비빔밥에서 따왔다. 아내와 함께 이주민센터에서 일했던 베트남 출신 서나래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베트남에선 음식을 비벼서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야기를 꾸몄다.
갈등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주민들이 힘들어하는 핵심이 그것이다. 다름을 인정받는 것. 그것이 화합,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다. 내가 우월하다는 권위의식이 바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1 “형부, 우리 남편 한 번 만나주세요.” 아내와 언니 동생하며 지내는 몽골아줌마인 그가 내게 애원하듯 매달렸다. “소용 없을 걸.” 그의 집안 이야기를 몇 번 들었던 터라 그의 남편 성향이 파악됐고, 만나봐야 별 소득이 없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만나봐라, 남자 말은 또 들을지 어찌 아노?” 아내가 거들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그의 남편은 ‘여자가’ 밖에서 활동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고 종종 폭행도 일삼았다. 그들에겐 초등학교 1학년 딸이 하나 있었다. 아내는 그가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만나보니 그의 남편은 완고했고 변화를 기대하기란 진작 포기하는 게 좋을 듯 보였다.
#2 “내가 저걸 데꼬 오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요?” 남자는 이미 술을 한 잔 걸쳤는지 그의 아내가 피신해 있는 우리집에 쳐들어와서 고래고래 언성을 높였다. 상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의 말투엔 그야말로 ‘그래, 나 무식한 놈이야, 어쩔래?’ 하는 막가파 심뽀가 잔뜩 배어 있었다. 괜히 위기의 이주여성 도우려다 우리마저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내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집에서 얌전히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 잘하면 내가 잘해 준다니까.” 그의 대답엔 신빙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3 “당신은 딱 당신 기준이야, 왜 애들 말을 들으려 안해?” 그러잖아도 애들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는데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인정하기 어려운 말로 퉁을 주었다. “무슨 말이야, 나처럼 민주적인 평등주의자가 어딨다구 그래?” 하고 서운한 심기를 드러내며 반론을 폈지만 아내도 아이들도 고개를 젓기만 했다. 때마침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아버지 교육’이 있어 주1회 4주 과정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고 식구들과 대면했을 때 아이들이 하는 말, “악마 아빠가 천사로 변했네요.” 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아내는 나도 모르는 나의 변화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4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도 어렵지만 처지를 바꿔서 실천해보기란 더 어렵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나를 보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그동안 못되게 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작품에서 비빔밥이 모티브가 된 이유다.
시놉시스
멋지게 생긴데다 5, 6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들을 둔 옥자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여기저기 들어오는 아들의 선자리를 골라 선택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들은 정작 결혼에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어머니가 맞선 일정을 잡으면 못이기는 척 나갈 뿐이다. 그러던 중 옥자가 보기에 놓쳐서는 안될, 정말 남 주기 아까운 선자리가 들어온다. 미리 사진을 받아 보니 아가씨의 생김새가 딱 마음에 든다. 특히 처자의 아버지가 대학 총장이라 이 집안과 꼭 사돈을 맺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여행사에 다니는 아들 성주는 갑자기 일정이 잡힌 베트남 출장 때문에 맞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하노이공항에 내려 택시를 잡던 중 갑자기 비가 내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던 아가씨와 부딪쳐 둘 다 넘어지고 만다.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일어난 사고라 성주는 화가 나지만 약속 시간이 임박해 계속 따질 처지는 아니다. 바쁘기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니 오히려 미안하기도 하다.
성주는 약속 장소에서 관광객들과 만나 처음으로 현지 가이드와 함께 안내를 하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때 다리를 절며 늦게 나타난 여성 가이드, 조금 전 하노이 공항 앞에서 부딪혔던 그 아가씨 후엔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처럼 엮이고 함께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급속히 호감을 갖게 된다.
결혼에 별 생각이 없던 성주는 후엔을 만나면서 마음이 바뀌어 결혼하게 되는데, 아들의 결혼이 어머니 옥자에겐 영 탐탁지가 않다. 그 좋은 집안의 아가씨를 두고 하필 외국 여자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엔이 아무리 잘하려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상적인 고부갈등은 둘째 치고라도 음식문화의 차이로 더 골이 깊다.
후엔을 이해해 달라는 아들의 간청에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만들어보려고 정성껏 실력발휘를 해 비빔밥을 만들었건만 며느리 후엔은 개, 돼지에게 주는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고 해 다시 갈등이 증폭된다. 한국에선 한국 문화를 따라야 한다며 비빔밥을 억지로 먹이려는 시어머니, 도저히 못 먹겠다며 도망가는 베트남 며느리. 문화 차이로 일어나는 다문화가족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극은 의외로 쉽게 출산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갈등이 심해질수록 서로 갈등을 봉합하려는 실리가 작동하게 되는데 며느리의 임신이 그 계기가 되는 셈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섬진강 재첩과 삼신 녹차밭이 언급되면서 하동의 자랑거리가 자연스레 소개되는데 극의 배경이 하동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