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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화요명작예술감상회는 베토벤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설호 창신대 교수가 맡았다. 이 교수는 세상에 존경하는 세 사람이 있는데, 예수, 노무현, 그리고 베토벤이라고 한다. 맨 처음 영화 <불멸의 연인>을 소개했다. 베토벤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라고. 물론 픽션도 많지만. 영화 줄거리 설명. 베토벤과 줄리에타. 



이 장면은 베토벤이 줄리에타 집에 피아노를 치러간 상황이다. 줄리에타가 집이 비었다고 했는데 실은 베토벤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작전에 응한 것. 줄리에타의 아버지가 귀 먹은 베토벤의 실력을 의심해서 실험한 것. 영화에서 베토벤을 '루이지'라고 부르는군. 베토벤은 자기애가 아주 강한 사람. 자신을 테스트한 이 사건으로 아무리 사랑했던 여성이지만 헤어지고 만다.


베토벤을 고전시대 작곡가로 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셋을 꼽으라면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을 친다. 지금은 하이든을 유명한 음악가로 숭상하지만 당시 음악가는 중인 계급이어서 하인으로 많이 취급받았다고. 귀족을 위해 음악을 만든 존재. 하지만 모차르트는 하이든과 달리 계급에서 벗어나려고 한 사람. 유럽여행을 하면서 성숙. 비엔나를 좋아해 도망가지만 잡혀 돌아와. 결국 허락을 받고 비엔나로 가서 대성공을 거둠.


베토벤은 최초의 프로음악가. 음악을 들려달라고 하면 "내 연주회 때 와서 들어" 했다고.



태어난 날은 정확히 모름. 1770년 12월 17일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걸로 봐서 이 날 즈음에 태어난 걸로 추정. 1815년 형이 죽었다고 했는데 형인지 동생인지 불투명. 그저 영어의 브라더여서. 베토벤 57세면 유명 음악가치고는 오래 산 편. 슈베르트는 서른에 죽었다고.


그라우트 <서양음악사>는 음악사의 표준. 음악사적으로 베토벤은 다른 사람과 차별됨. 유일하게 작곡가 이름으로 한 챕터를 구성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존재. 


클래식. 오래된 것? 잘못된 개념. 정확히 해석하자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 표준이라는, 기준이라는 의미다. 테니스에도 클래식경기와 오픈 경기있다. 클래식은 이미 잘하는 사람 뽑아 초청해 경기하는 것. 그래서 클래식은 최고란 뜻이요, 모범이란 의미다.


낭만, 무엇이 떠오르나.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 들이키는... 하지만 실제 낭만주의는 그런 것과 다르다. 일단 자살, 우울, 환각 등등. 이때 낭만주의에는 정신병 환자가 많았다. 음악가들, 세상 고민 다 짊어지고 고뇌하다 정신병원 끌려가고... 습하고 어두침침한... 색채가 느껴지는 음악. 그런데 베토밴은 거기까지 가진 않지만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


고전 18세기에서 낭만 19세기. 그런데, 낭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차이가 있네. 난 희생, 화끈함, 정의로움 등으로 생각했는데... ㅠㅠ. 아, 낭만고양이여. 둘의 차이점. 보수적이고 진보적이다. 절대음악, 음악 내에 다른 게 들어올 수 없다. 음악 그 자체 리듬, 화성으로 구성돼야. 표제음악이란 주제에 맞춰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한다. 


클래식은 형식이 곧 내용이다 하는 구조를 강조함. 두도막형식 소나타형식 등등 그런 형식에 맞춰야 청중과 소통이 된다고 여김. 그래서 1악장은 어떻게 구사하고 2악장은 어찌 구성되고... 그게 정해졌다는 얘기. 그런데 낭만주의에 와서는 그런 형식을 파괴해나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마치 시를 쓰듯 음악적으로 표현. 그래서 형식이 중요하지 않아. 즉흥곡. 아무생각 없이 치는 것? 마치 즉흥적으로 쓴 것처럼 자유롭게 잘 작곡된 것을 말함. 로맨틱은 그래서 내용을 강조함.


클래식은 나와 너의 생각이 같아지는 것을 요구하지만 낭만, 로맨틱은 나는 나, 너는 너. 이설호 교수는 베토벤을 그냥, 클래식과 로맨틱 사이에 넣기보다 베토벤 자체만으로 음악사적 가치를 지닌 인물로 보고 싶다고.


모차르트를 싫어한다. 뭐, 여섯 살 때 작곡을 했어? 재수 없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노트를 보면 머리 속에 다 작곡이 되어 있고 그것을 옮겨적었으니 하나도 수정한 게 없다고. 


베토벤은 네 마디를 쓰고나면 또 다시 써. 많이 작곡을 하고 잘 된 것을 갖다붙이며 작업. 베토벤을 악성이라 하면 모차르트는 악선(음악의 신선). 두보와 이백처럼.


음악 분석이란 과목 있다. 베토벤은 분석하면 완벽한 곡. 좋은 곡이라고 완벽하진 않다. 이론적으로 완벽하면서도 작품성도 좋은 곡을 만든 인물이다.



소나타란 말은 연주하다. 칸타타는 노래하다. 교회소나타, 실내소나타는 합주형태. 기악을 중심으로 연주하는 것이 소나타. 오르간, 악기를 총칭하는 말. 옛날엔 오르간이 대장. 악기란 뜻. 뮤직이란 말도 어원은 아트. 여러 예술을 총칭한 게 뮤직. 지금은 아트가 주로 미술 쪽으로 많이 사용됨. 그렇듯 소나타는 기악을 뜻함.


첫번째는 작품으로서의 소나타. 베토벤의 소나타. 기악 독주곡을 의미함. 피아노 혼자 연주. 비아올린 소나타면? 피아노 반주 들어감. 피아노가 반주역할... 다음시간에 할 건데...ㅎㅎㅎ 독주라기보다 이중주. 피아노와 바이올린. 피아노는 혼자. 베토벤 소나타라고 하면 피아노 소나타라는 것. 아른 악기면 꼭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같이 악기 이름이 붙음.


심포니는 4개의 악장으로 구성. 교향곡도. 첫번째 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음. 이 시대의 음악은 절대 음악이기 때문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형식이 중요. 작곡가에게 매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형식. 제시 부호, 발전부,전개부, 다시 원래 돌아가 제시부, 재현부라고 함. 이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소나타.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제시부에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나오는데 이 두 가지가 성격을 달리 한다. 강하면 연하고, 남성적 주제와 여성적 주제라고 함. 뭐 요새 상황과는 다르지만.ㅋㅋ 이게 작곡가의 기술.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게 좋은 음악이냐면, 통일성과 다양성이 한 작품에 공존해야 한다. 말은 이해 되지만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두 주제의 사이가 자연스럽게 넘어가줘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대가들은 그걸 잘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제시, 발전된다고 했는데, 발전부에 매력이 있다. 지 맘대로 쓸 수 있기 때문. 제1주제와 2주제의 것을 발전부의 요소로 많이 활용한다.


소나타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은 수미상관. 이게 형식적 안정감을 준다. 제시와 재현부. 하나의 구조가 안정적인 형식. 그게 소나타란 것.  작품을 들으며 아, 이게 제1주제구나, 제2주제구나. 아, 이게 또 나왔네. 재현부구나. 하고 알 수만 있다면 소나타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악보는 교재용으로 쓴 게 돈 많이 번다고.ㅋㅋㅋ


음악 감상. 피아노 소나타 문라이트.


강의에 소개된 영상은 아니지만 이걸로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796jkaAHmx4


월광소나타라고? 이건 제목이 잘못 붙여졌다. 1악장부터 축 쳐졌다. 뭔가 이상하다. 이설호 교수의 해석. 이때 베토벤의 마음은, 귀는 멀었고 여자와의 문제도 있고 돈도 없고... 이 1악장을 들어보면 베토벤의 억눌린 심정을 드러낸 곡이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곡이 아니라. 슬픈 곡이다. 2악장은 스토리가 있다. 마치 그녀와 데이트하는 것을 회상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3악장을 들어보면, 아 보고싶어. 미치겠어. 줄리에타 보러 갈래. 그런 감성이 느껴짐. 월광소나타는 다시 들어봐야겠다. 끝.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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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재직 중인 이종훈 교수가 오는 29일 오후 7시 30분 마산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독창회를 연다. 그의 여덟 번째 독창 무대다.


나는 공연예술을 많이 좋아함에도 재작년 초 한국의 폴 포츠라 불리던 테너 김승일 씨의 독창회를 3.15아트센터에서 본 것 말고는 클래식 독창회를 별로 본 적이 없다. 한 번 본 것도 취재차. 해서 이번 이 교수의 공연은 은근 기대가 된다. 이 교수는 배움도 많지만 공연 경력도 상당하다.


공연자의 경력을 살짝 살펴보는 것도 감상법의 하나다. 이 교수는 현재 교수로 있는 경남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대학원 성악과를 거쳤다. 이후 이탈리아 파우스토 토레프란카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이탈리아에 있으면서 다양한 전문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Rolando Nicolosi(롤란도 니콜로시라고 읽으면 될랑가)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2등, G 쿠르치 국제 성악콩쿠르 2등, 마리오 란차 국제 성악콩쿠르 입상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교수는 오페라 가수로 많은 무대에 섰다. 이탈리아에선 산파올로극장에서 <라보엠> <라토스카> <라트라비아타> 등에서 주연을 맡았고 국내에선 <바스티앙과 바스티엔>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사랑의 묘약> <라보엠> <투란도트> <팔리아치> <버섯피자> <봄봄> <소나기> <논개> 등의 오페라와 <뮤즈>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뮤지컬에도 출연했다. 지난해 공연한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나도 출연하였던 터라 이 교수와 인연이 맺어졌다.


이외에도 이 교수는 마산시립교향악단과 '내 고향 마산의 노래' 음반 제작에 함께 했으며 창원시립교향악단 등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또한 다양한 음악회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는 밀양시합창단 지휘자와 함께 밀양오페라단 단장을 맡고 있다.


그가 이번 독창회에서 부를 노래는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의 곡을 1부 프로그램으로 꾸몄다. '꿈' '입맙춤' '세레나데' '마레키아레' '고뇌' '이젠 너를 사랑하지 않아' '슬픔' '최후의 노래' 등. 2부는 국내 작곡가의 곡들이다. '첫사랑' '사랑의 꿈' '햇살 좋은 숲에서' '연' '마중' '시간에 기대어' 등. 노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문의 : 010-2666-2515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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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 '몽유도원도'


안평의 남자 '안견'. 딱 하나 남아 있는 그림 '몽유도원도'. 안평의 총애를 받으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음직하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딱 이거 하나다. 안견이 그렸을 것으로 보이는 그림은 몇 점 있다. 그런데 이게 일본의 국보다. 나참... 보자, 일본의 문화예술품이 한국의 국보인 게 있나? 있을 리가 없지. 일본 쳐들어가 문화약탈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냥 팍 몽골 일본 원정 때 태풍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락해버리는 긴데. 오늘 또 뉴스에 보니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고 일본 고위공직자가 망언을 쏟아냈다더만.


어쨌거나, 이 그림을 보면 왼쪽 현실세계에서 오른쪽 이상세계로 표현했다.기울기도 상승곡선을 이루고 있다. 민병권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 여섯 가지로 분석했다.


1. 침형세수, 치형돌기의 표현방법을 기반으로 한 이곽파 화풍을 계승.

2.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바탕으로 한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관념산수'.

3. 북송시대 임천고치를 지은 곽희가 개발한 평원, 고원, 심원법의 삼원법으로 이루어진 구도법.

4. 횡권산수(가로로 긴 두루마리에 그린 산수화).

5. 무릉도원을 표현한 오른쪽 도원 세계는 조감도법을 사용함.

6. 안평대군의 발문에는 송설체로 쓰여짐.


강희안 '고사관수도'


세종 때 유명한 선비화가 강희안은 절파 화풍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그림은 수묵화로 세로 23.4센티, 가로 15.7센티 크기다. 그다지 크지 않다. 고사관수(高士觀水). 학식 높은 선비가 물을 바라보다. 물을 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화두를 던진 그림이랄 수 있겠다. 이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설 중에 민족문화대백과 것을 일부 옮겨 본다.


"이 그림은 덩굴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에 두고 바위에 기대어 엎드린 자세로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중국 북송대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 화풍이 크게 풍미하고 있던 당시로는 색다른 경향의 화풍을 보인다."


"산수의 조그마한 한 부분을 배경으로 한 인물 중심의 구성이라든가 근경 위주의 대담한 변각 구도와 공간감의 결여 등은 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계 소경산수인물 화풍의 선구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흑백 대비가 심한 묵법과 자유분방하게 가해진 준찰(皴擦:입체감이 있도록 주름을 그리는 일), 날카롭고 간결하게 처리된 옷주름 선과 헝클어진 모습의 덩굴 등도 원대의 선종수묵화풍과 더불어 절파 양식의 경향과 상통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활당하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필치와 더불어 짙은 문기(文氣)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화원이나 직업화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중국 절파풍의 작품과는 격조를 달리하는 화격을 보이고 있다."


김시 '동자견려도' 보물 제873호. 비단에 담채.


동자견려도 당겨서 본 그림.


양송당 김시는 김지라고도 읽힌다. 조선 중기 가장 유행했던 화풍이 절파풍인데 주목받았던 화가가 바로 김시다. 김시란 인물, 조선 중기 대단한 집안 이력이 있네. 아버지가 중종대 좌의정 김안로다. 그런 집안에서 그림을? 의아해하겠지만 조선시대 잘나가던 집안 한방에 훅가는 사례야 비일비재한 터. 김안로가 정유삼흉으로 지목받고 사약을 받으니 김시의 인생도 가시밭길이 펼쳐졌겠지. 집안이 망했는데 뭘 할 수 있겠어. 그림이나 그려야지.


그런데 김시, 그림에 일가견이 있었나보다. 전혀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다. 이런 그림을 대경산수인물화라고 한다.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코믹한 장면이 있다. 아이가 나귀의 고삐를 잡아당기는데 나귀는 못가겠다고 버틴다. 둘의 표정이 재미있다. 


인물 중심의 주제에 기울어진 주산의 형태, 흑백의 대조가 현저한 산 묘사, 굴곡이 심한 소나무, 강한 필묵법. 이러한 것들은 절파풍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덧붙인 해석을 보면, "전체적인 구도면에서 보았을 때 왼편에 무게가 실려 있으며, 해조묘(蟹爪描)의 소나무는 중경의 여백을 메워줄 뿐만 아니라 화면 전체를 대각선으로 이분하여 화면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산수가 주된 표현 요소로 나타나지만 점경인물의 옷을 호분(얼굴에 곱게 화장하기 위해 쓰는 분)으로 칠해 화면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김시 '한림제설도'


역시 김시의 그림이다. 안견파 계통의 작품이다. 몽유도원도 비슷한 느낌이 나네. 김시가 환갑 때 안사확이라는 사람을 위해 그렸단다. 근데 안사확이 누군지 알수 없다고. 그림을 보면, 눈이 온 뒤 설경을 담았는데, 동자견려도에서 보여준 절파풍과 안견화풍이 섞여있음을 발견할 수 있단다. 난 어떤 부분에서 절파와 안견파를 유추해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김명국 '달마도'


여느 산수화에서 볼 수 없는 날렵하고 강한 필체를 느낄 수 있다. 꼼꼼한 화원이라면 이렇게 그릴 수 없다. 술한 잔 걸치고 휙휙! 김명국은 1636년과 1643년 일본에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다녀온 사람이다. 일본에 갔을 때 김명국의 일화가 재미있다. '한국미술산책'이란 인터넷 자료에 보면, "한 왜인이 김명국의 그림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건물을 장식한 뒤 천금의 사례비를 준비해 벽화를 그려달랬다. 그러나 주광 김명국은 술부터 찾았고 취기가 올라 붓을 들었더니 왜인은 그림 그릴 때 쓰는 금가루 즙을 한사발 내놓았다. 김명국은 그것을 한 번에 들이킨 후 새로 단장한 벽에 뿜었다. 왜인이 깜짝 놀라 화가 나서 칼을 뽑아죽이려 하자 김명국, 껄껄 웃으며 벽에 뿌려진 금물가루로 그림을 그렸다. 손놀림이 자연스럽고 붓길이 힘차니 순식간에 어떤 모퉁이는 산수가 되고 인물이 되었다. 그림이 환성된 후 아까 뿜었던 금물가루의 흔적은 간데없고 모든 형상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놀란 왜인이 기뻐서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함을 표시했고 벽화가 훼손될까봐 기름막으로 덮어 보호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김명국은 술을 좋아해 '취옹'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절파 후기 광태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명국 '설중귀려도'


사진을 제대로 못찍었다. 전혀 눈쌓인 느낌이 안 난다. 이 그림은 삼베에 수묵으로 그린 것인데 추운 겨울밤 친구를 방문했던 선비가 작별을 고하고 길을 나서는 모습을 담았다.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선비의 모습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시동은 또 시동끼리 통하는가 보다. 아이들도 서로 헤어지는 게 아쉬워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그림의 특징을 보면, 화면 오른쪽에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절벽을 배경으로 집 뒤에서 시작되는 계곡이 사선방향으로 전개되고 그 왼쪽은 여백으로 처리하며 전경 오른쪽에는 바위로 막아서는 구성이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16세기 후반 김시로부터 18세기 초 윤두서에 이르기까지 유행했다. 


절벽과 근경의 바위를 보면 각이 진 필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에만 빠른 필치의 부벽준(산수화에서 산이나 바위를 그릴 때 측필을 이용해 도끼로 팬 나무의 표면처럼 나타내는 준법)으로 음영을 표현했다.


빠른 필치의 부벽준 처리와 복잡한 수지법은 표현 등에서 명대 후기 절파양식을 엿볼 수 있다.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구도에 활달한 필치를 보여준 조선 중기 회화의 가작이라는 평이다.


심사정 '방심주산수도'


심사정은 젊어서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으나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남종산수화에 심취해 스승인 정선의 진경산수화보다 전통적 중국 화제의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 산수와 인물, 화훼, 초충 등을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은 심사정의 전형적인산수화풍이 나타나는 그림이란다. 화면 왼쪽 상단에 글이 있는데, 이로 나이 52세 때 1758년 가을, 정영년이라는 사람을 위해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다른 그림을 모방해서 많이 그렸다. 완전히 베끼는 것을 임모라고 하고 베끼되 새롭게 창작하는 것을 방작이라고 한다. 이 그림 역시 명나라 문인화가 심주의 화법을 따른 것으로 방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근경의 선비 모습을 제외하고는 심주의 화법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필법이나 하면 구성 등에서 심사정 특유의 화풍을 보여준다. 심사정은 오파와 절파의 양식을 혼합했는데 나름 창작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을 보면 먼곳의 산가 가까운 언덕은 피마준법(갈필에 의한 약간 물결짓는 필선으로 삼베 섬유를 푼 것 같은 까칠한 감촉을 가지며 이는 산의 겉면을 표현하는데 적용됨)으로 묘사된 데 반해 다리 건너편의 절벽은 부벽준으로 처리됐다.



이경윤 전칭작 '고사탁족도'


전칭작이라 함은 그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얘기다. 줄여서 그냥 '전'이라고도 쓴다. 그림의 분위기가 시원하다. 나무 그늘 아래 발을 담글 수 있는 물이 있다면 그곳이 명당이 아니고 어디랴. 그림에서 이 양반의 발을 보면 화가의 세심함을 알 수 있다. 물이 얼마나 차가웠으면 두 발을 서로 꼬아 '앗, 차거'하는 저 찰라를 포착할 수 있었겠나. 그런데 시동의 모습을 보소. 주인의 심정을 잘 헤아리고 있지 않은가. 손에 든 것은 분명 술이렷다. 한여름 무더운 날 계곡물에 발 담그고 술 한 잔 걸치는 것만큼 무릉도원이 어디 있으랴.


이명욱 '어초문답도'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나무꾼과 어부가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래서 한사람은 신을 신었고 한 사람은 벗었다. 이명욱은 숙종이 많이 아꼈던 화원의 화가라고 한다. 이 그림은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그려졌으며 당시 시대상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북송대의 소옹이 지은 <어초문대>를 떠올릴 수 있는데, 어부와 나무꾼이 강가에서 우연히 만나 우주와 세계의 질서에 대해 문답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서인들이 이런 사상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 또 이런 화려한 색채는 원체 화풍의 영향으로 당시 궁중회화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김정희 '세한도'


앞서 4강 정리에서 깊이 다뤘으므로 대략 생략하고.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 짧게. 제주도 9년 귀양살이 보낼 때였단다. "1844년 나이 59세에 수제자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면서 날이 차가워진 연휴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글을 발문에 적은 것은 유명하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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