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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오후 6시 30분. 마산음악관 앞 야외광장에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진행했던 골든팝스 음악회가 끝나자 사람들이 빠져나갔던 빈자리에 새로이 시민들로 채워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마이크 점검이 있었다. 마이크 시설이 없었던 예전엔 어찌했을까 싶다. 왜냐면 가면을 쓰고 하는 연희기에 대사 전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성능 무선 핀마이크라도 그냥 사용하는 것과 가면을 쓰고 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면을 쓴 채 마이크로 소리를 전달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어쨌든 그런 테스트가 끝나고 악사들의 연주와 함께 길놀이와 고사가 진행됐다. 지금에야 오광대놀이가 연희로 거의 정착했지만 예전엔 동제 또는 특별한 행사에 열리면서 제의적 성격이 강했다. 길놀이와 고사는 그 흔적이다.
제1과장은 오방신장무 과장이다. 굿거리 장단의 음악이 울리면, 오방신장이 차례로 등장한다. 오방신장의 등장에 순서가 있을까? 있다. 오방신장 중 으뜸은 황제신장이다. 동서남북 방위로 치면 중앙을 뜻한다. 중국의 황제가 입는 옷이 노란색인 이유도 중앙이라는 상징이다. 그래서 황제이긴 하지만.
그다음은 청, 적, 백, 흑의 순으로 등장한다. 청은 동이요, 적은 남, 백은 서, 흑은 북이다. 동청룡, 남주작, 서백호, 북현무라는 말도 이를 증명한다.
오방신장무, 마산오광대가 배포한 팸플릿을 보니 이 과장은 인간과 신의 매개자인 오방신장이 “춤을 추면서 신과 인간의 조화를 통한 민중들의 염원을 발원하고, 천신께 고하는 춤으로 관중에게 판붙임을 하는 춤”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오방신장무는 오광대 여러 과장 중에서 가장 제의적 성격이 강한 연희다. 그래서 관중들은 다른 과장과는 달리 오방신장무 과장에선 경건한 표정이 된다. 이렇게 분위기를 떨어트려 놓으니 다음 과장에서 관객들의 표정이 급격히 바뀐다. 감동을 이끌어내는 효과있는 구성인 셈이다.
제2과장은 상좌·노장중 과장이다. “불도를 닦는 노장이 춘흥에 못 이겨 석교상을 건너 흔들흔들거리며 속가에 내려와 장삼소매를 휘날리며, 육환장을 걸쳐메고 한바탕 신명으로 춤을 춘다.”고 되어 있다.
석교상, 돌다리다. 아마도 이 노장은 곡주를 한 잔 걸쳤을 것이다. 춤을 제대로 추는가 싶다가도 흐느적거린다. 그런데 원래 대본대로라면 상좌중도 나와야 하는데, 이번엔 노장중 혼자 등장해 춤만 추고 들어갔다. 노장중을 희화한 상좌중의 창을 듣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제3과장은 문둥이 과장이다. 이 과장은 조선시대 멸시받던 가장 하층민인 문둥이의 하소연을 표현한 과장이다. 문둥이의 소품은 소고와 북채다. 춤을 추면서 이것을 떨어뜨리고 다시 주워 춤을 추는 과정이 안쓰럽고 애틋하다. 그러면서 신명난 마지막 춤은 이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라 하겠다.
4과장은 양반 과장으로 예의 말뚝이와 못난 양반들이 등장해 입씨름을 벌인다. 청보양반은 그렇다 치더라도 차양반, 홍백, 눈멀이떼, 턱까불, 초라니, 콩밭골손 등의 양반들은 한결같이 신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치들이다.
이런 양반들이 스스로 양반입네 하고 자랑질을 해대니 천민인 말뚝이가 말로써 한 방을 먹이는 것이다. 양반을 신랄하게 깎아내리는 말뚝이의 시원한 입담을 통해 관객들은 박장대소한다. 조선시대였더라면 수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5과장, 영노 과장이다. 다른 오광대에선 새로운 양반이 영노 과장에 등장하는데 마산오광대에선 양반 과장에 등장했던 청보양반이 다시 등장한다. 잘난 체하던 청보양반이 영노를 만나 혼뜨검이 나는 모습을 통해 역시 서민들의 카타르시스를 노린 것일 터다.
아흔아홉 명의 양반을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양반 한 명을 잡아먹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영노가 이 청노양반을 만나 쉽게 잡아먹지 못하고 애를 먹는다. 청노양반은 어쨌든 살아날 요량으로 온갖 핑계를 대며 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오죽하면, “나는 똥이다.”라고 양반 체면을 스스로 구기기까지 했겠으랴. 하지만 영노는 “통도 좋다.”고 받아치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궁리 끝에 청노양반이 “난 니 핼애비다.”라고 해서야 위기를 벗어난다. 잡아먹으려고 덤벼들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양반의 모습이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6과장은 할미 과장이다. 할미가 영감을 기다리며 몸치장도 하고 정성을 다하는데, 영감은 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각시를 하나 달고 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옥신각신은 여느 오광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마산오광대에선 제물댁 아기를 살해한 할미가 영감의 몽둥이에 맞아 사망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오광대에 따라 영감이 죽기도 한다- 가정사의 비극을 나타낸 것으로 양반들의 첩 문화를 비판한 것이다.
마지막 7과장은 사자무 과장이다. 오광대에 사자가 등장하는 것도 벽사의 의미가 큰 놀이이다. 잠자던 사자 곁에 와서 깝죽대던 담비를 사자가 잡아먹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사자는 전통적으로 지킴이 역할이 큰 존재로 여겼기에 사악한 것을 없애는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이 사자무 과장을 약육강식의 현실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경상남도가 창원시 등과 공동 후원한 이번 공연은 도민들이 전통민속예술을 직접 접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마산오광대는 1936년 마지막 공연으로 맥이 끊겼는데, 1963년 최상수 채록본이 소개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2006년 복원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재현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