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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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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영화 제목이 아주 섹시하다. 이중생활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불륜 외에 그 어떤 상상도 불허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라면 그 이중생활이란 단어에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로 아주 철학적 메타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지금 이 공간 속에서 내가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어느 공간에서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내가 아주 유사한 신체 조건으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언젠가 사촌 동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형, 혹시 전라도에 간 적 없제? 형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봤어." 나와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동생은 어디서 읽었는지 두 개의 삶에 대해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살면서 종종 사촌동생의 얘기가 영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점덤 관념 속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던 탓일까? 도플갱어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점점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 '거지와 왕자'뿐만 아니라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그러한 얘길 담고 있다. 이런 도플갱어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봤던 영화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년)이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 나는 당시 '경남매일'(마산 중앙동이 본사였던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다.


문화부 기자의 업무시간 영화관람은 죄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문화적 활동이 기사 생산활동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배가 들어온지 아마 1년 가까이 되었을 터였다. 당시엔 시내 극장도 출입했다. 새로 영화가 나오면 스틸컷을 받아 기사 자료나 영화 광고 자료로 쓰기도 했다. 지금과 같이 멀티플랙스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후배가 바쁘지 않다면 영화 한 프로 하자고 했다. 오전 그날의 기사를 모두 제출한 상태였기에 여유가 좀 있었다. 출입처였던 극단은 밤에나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 후배 왈, "아주 재미 있는 영화가 나왔어요, 선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고, 선배, 이런 영화도 봐주고 그래야 돼요. 껄껄껄." 기억을 되살려 그 후배의 말을 생각하니 웃는 모습이 아주 특이했던 기억이 덩달아 떠오른다.


암튼 이런 사연이 있는 영화다. 아마 나 역시 그렇고 그런 영화 쯤으로 기대를 했겠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이렇게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만 적으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영화 '블루', '레드' 등을 만든 감독이라 하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 사람이 제법 늘어날 것이다.


그 감독의 스타일이 제법 관념적이다. 도플갱어를 소재로 두 사람의 인생을 한묶음으로 다루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은 제목에서와 같이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다. 이렌느 야곱이 1인 2역을 맡았다.



폴란드에서 음악을 전공해 생활하고 있는 베로니카는 어느날 이모가 사는 폴란드 남부 도시 크라쿠프로 간다. 이때 기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가 투명한 고무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이 공은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을 형성하고 있는데 일종의 신비주의라고 말해둘 수는 있겠다.


베로니카는 크라쿠프에서 우연히 음악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발성법이 매력적이어서 단번에 합격한다. 피아노 전공이었지만 성악가로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오디션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위를 벌이는 군중 사이로 지나가게 되고 그 때 관광버스에 오르는 어떤 여인을 발견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성이다.



그 여성은 버스에 올라서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베로니카는 멍하니 그녀를 향해 서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나 자신과 똑 같이 생긴 여성은 전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던 베로니카는 다시 심장병이 도져서 고통스러워 한다. 겨우 벤치까지 비틀거리며 가서 앉았다가 스스르 눕는데 맞은 편에서 어떤 영감탱이가 코트를 입고 걸어오고 있다. 표정이 묘하다. 쓰러진 베로니카의 눈은 뜬 채였고 영감탱이는 가까이 다가와서는 코트를 펼쳐버린다. 헉! 이 영화에도 바바리맨이 등장했었군. 그런데 아무리 25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영상이 어찌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혹시 그때, 가위질 당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그 영감탱이 장면은 왜 영화 속에 삽입되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상징성도 없고 풍자도 없고, 비유나 은유도 없다. 전혀 알고리즘이 형성되지 않는다. 당시 워낙 바바리맨의 변태 행동이 유행이어서 그냥 끼워넣은 것일까?



베로니카가 오디션을 받은 때 악보집 끈을 손가락으로 칭칭 감다가 끊어지는 장면이 있다. 이건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나중에 나오는 장면이지만 또 다른 베로니카, 즉 프랑스의 베로니끄에게도 비슷한 구두끈이 우편으로 배달된다. 심전도 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터라 그 심전도 그래프를 보면서 구두끈을 만지작거리다가 팽팽하게 당긴다. 심장박동이 멈추는 것처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죽음을 연상케 하는 장치들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창밖의 노파다. 베로니카도 베로니끄도 창밖으로 힘겨워하며 걸어가는 노파를 내려다 본다. 베로니카는 "도와드릴까요?"하고 한 마디 내뱉지만 베로니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베로니끄는 죽지 않는다.


어쨌든 베로니카는 크라쿠프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희망으로 기분이 좋다. 고향에서 찾아온 남자친구로부터 선물도 받아 더욱 기쁘다. 



심장병이란 게 그렇더군. 쥐도 새도 모르게 명을 달리하는 무서운 것이란 말이지. 베로니카는 공연장에서 노래를 하다가 참 허망하게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아니 주인공이 이렇게 빨리 죽어도 되나.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베로니카의 눈이 되어 묘지에 안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죽음의 감정을 경험케 하려는 시도 아닐까.



또 다른 베로니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음악 선생 베로니끄는 학생들을 데리고 인형극을 관람시킨다. 그런데 공연 중 거울에 비친 인형극 연출자의 모습에 반해버린다. 그렇게 불현듯 사랑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일까? 프랑스적 사랑의 감정이 그런 것일까. 너무 즉흥적이다.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묻기를 누구냐니까 베로니끄 하는 말, "모르겠어요." 아버지 처지에서 보면 미치고 폴짝 뛰고 환장할 노릇이다. 딸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 딸래미는 정작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니 말이나 되는 얘긴가.


인형극 연출자, 필립 볼테르가 맡았다. 그래, 이름이 알렉산더 바르디니였다. 알렉산더 역시 베로니끄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서는 베로니끄에게 아무렇게나 녹음된 테이프를 소포로 보낸다. 호기심이 발동한 베로니끄, 우편물의 주소와 테이프에 담긴 소리를 추적해 알렉산더를 찾아간다.


알렉산더가 있는 커피숍을 용케도 찾는다.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듯이 이 남자가 끌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남자, 여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나오게 하면 과연 정말로 나올까 하는 호기심에서 그래봤단다. 이 말을 듣고 뛰쳐나가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겠나? 베로니끄는 달아나고 알렉산더는 찾으러 다닌다. 뭐 결론만 얘기하자면 둘이 만나게 되고 하룻밤도 같이 지낸다.



알렉산더는 알고보니 유명한 동화작가다. 그가 쓴 책도 몇 권 있음을 책방 진열대에서 확인된다. 알렉산더가 베로니끄에게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니까 베로니끄는 자산의 가방을 열어 침대에 쏟아낸다. 예전 베로니끄가 폴란드 크라쿠프로 여행 갔을 때 찍었던 사진 속에서 또 다른 베로니끄를 발견하게 된다.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베로니끄. 알렉산더는 베로니끄에게 다음 작품은 "니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베로니끄가 자고 일어났더니 이 남자는 벌써 두 개의 인형을 만들었다.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자신과 똑 같이 생긴 두 사람이 있어. 전혀 다른 세상에 살면서도 그들은 뭔가에 의해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난로에 손이 데였을 때 다른 사람에겐 그것을 미리 방지하도록 하지. 어쩌면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로 섬뜩하기도 하다. 뭔가에 끌려 차를 몰고 어디론가 찾아간 베로니끄, 나무에 손을 대자 묘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목공일을 하던 베로니카의 아버지도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잠시 모터를 멈춘다. 그렇게 영화는 재채기가 나올듯 말듯한 상황에서 자막을 올려버린다.


영화의 배경음악, 주제곡이라 해도 좋다. 너무 좋다. 마음을 한없이 슬픔 속으로 밀어넣는다. 도저히 다시 듣지 않고는 못 베겨내겠다. 음악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맡았다. 유튜브에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면서 25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냥 이대로 25년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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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국악은 참 좋아했다. 아무나 쉽게 빠져들 수 없는 장르임에도 난 유달리 국악 쪽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시초는 아마도 시조였을 것이다. 평시조에서 사설시조, 엇시조, 그리고 몰라도 되는 양장시조, 단장시조 뭐 이런 것들이 있지만 이런 건 놔두고 평시조를 글로 읽었을 때와 소리, 그러니까 창으로 들었을 때 그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는 들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아마도 고2 쯤이었을 것이다. 괜히 학교 문학 동아리에 들어서는 체질에 맞지도 않은 시조에 빠졌을 때 별난 호시김이 동했던 것이다. 세 개의 평시조를 각각 녹음 테이프에 담아 동시에 플레이를 시켜봤다. 음악적 감각이 별로 없어서 각각의 평시조, 즉 청산리 벽계수야, 이화에 월백하고, 이몸이 죽고죽어를 각각 들었을 때 전혀 다른 창인줄 알았다. 그런데 녹음길를 통해 들었을 때에 이 세 시조가 가사만 다를 뿐이지 같은 음정으로 불려지고 비슷한 길이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유레카를 외쳤다.


친구들은 꿈에도 모를 이 위대한 발견 때문에 문학과 국악에 점점 빠져들었고 일종의 취미로 정착하게 되었더랬다. 음악에는 젬뱅이고 손방이라 이후론 국악 아니면 가요나 종종 듣는 수준이었는데... 경남도민일보가 재즈 음악회를 유치하면서 한 두번 보게 되고 최근에 이리저리 기사를 다루면서 재즈를 공부하게 되고 빠져들게 되었다. 아직은 빠져든대도 아, 이게 스윙인가, 아 이건 보사노바? 하는 정도다.


전혀 몰라도 된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재즈의 세계가 이렇게 가리늦가 관심 영역 속으로 들어온 건 아마도 취재 차 배웠던 공부 때문일 것이다. 그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건 그렇고 아직 재즈와 국악을 섞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르겠다. 이놈들이 사랑에 빠졌다는데... 그게 궁합이 맞는 것인지는.... 아쉽게도 볼 수 없다. 뭐 앞으로 들을 기회는 있겠지.


봄밤 재즈 리듬에 국악 향기 더하다

안산팝스오케스트라 19일 도문화예술회관 공연…퓨전국악그룹 악녀 출연


재즈가 흐르는 봄밤에 국악의 꽃을 띄운 무대가 오는 19일 오후 730.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지역사회공헌을 위한 사회적기업 상품 서비스 공모사업으로 한국남동발전이 주최한 무료 공연이다.


재즈는 마니아층이 여느 음악 장르보다도 두꺼운 만큼 공연 기획만 되면 객석이 여간해서 비워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번 주말 도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할 ‘안산팝스오케스트라’ 역시 2009년 창단해 꾸준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연주실력과 기획 운영에 전문적인 노하우가 있는 단체다.


이번 진주 공연에선 재즈에 국악을 접목했다. 협연은 아니지만 재즈와 퓨전 국악을 비교하고 그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안산팝스오케스트라는 이날 7개의 연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부에선 먼저 칙 코리아의 ‘Spain’을 연주한다. 이 곡은 다른 연주가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중저음으로 퍼지는 베이스의 울림으로 시작하는데, 재즈의 부드러움과 금관악기의 임팩트한 요소가 부각되는 곡이다. 후반부엔 드럼이 즉흥으로 연주되며 곡의 재미가 더욱 상승하는 효과를 발한다. 재즈의 가장 큰 특징이 즉흥연주 아니던가.


다음 곡은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이다. 이 곡은 잔잔한 운율에 플뤼겔호른의 애잔한 소리가 매력인 작품이다. 척 맨지오니는 이 곡을 발표하면서 1970년대 후반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모던재즈 분야에서 천재성을 나타내며 많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어지는 곡은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제곡으로 널리 알려진 ‘Cinema Paradiso’. 서부영화 하면 언필칭 이름을 떠올렸던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곡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주인공 살바토레의 어린 시절 모습과 영상 기사 알프레도의 우정을 떠올려봐도 좋겠다.


대체로 조용한 재즈곡들이 객석을 잔잔하게 만들고 나면 한자로 표기하면 전혀 다른 느낌의 이름이지만 발음만으로도 임팩트 있는 퓨전국악그룹 ‘악녀’가 등장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대금과 해금 반주로 흥겨운 노래를 들려준다.


안산팝스오케스트라 공연 모습./안산팝스오케스트라 홈페이지 갈무리 화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1부가 시작된다. 2부 첫 곡은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김하양이 편곡한 곡이다. 귀에 익숙한 이 노래가 안산팝스오케스트라에 의해 어떻게 연주될지 자못 궁금하다.


두 번째 곡은 ‘마스퀴나다’라는 작품이다. “~ 아리아라이오 오바오바오바~” 원곡 작곡자는 조지 벤이지만 세르지오 멘데스와 브라질66이 함께 불러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 2000년대에 멘데스와 블랙 아이드 피스가 다시 부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곡은 브라질66가 부른 곡보다 한층 경쾌하다.


2부 세 번째 곡 역시 유명한 재즈다. ‘Fly me to the moon’. 바트 하워드가 1954년에 작곡한 것인데 처음엔 제목이 ‘In other words’였다. 그랬는데, 8년 후인 1962년엔 피아니스트 조 하넬이 보사노바로 편곡하여 제목을 ‘Fly me to the moon’로 붙이면서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특히 프랭크 시나트라가 자신의 앨범에 수록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


안산팝스오케스트라 공연 모습./안산팝스오케스트라 홈페이지 갈무리 화면


이번 공연 마지막 곡은 ‘Sing, Sing, Sing’이다. 재즈가 미국 대공황 시대를 거치면서 한때 침체기에 빠졌을 때 신나는 춤곡으로 광풍을 일으켰던 스윙재즈의 대표곡이다. 재즈 마니아라면 모르는 이 없겠지만 스윙재즈는 빅밴드 그룹에 의해 시대를 풍미했다.


빅밴드는 15~20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재즈 오케스트라다. 대표적 가수로 듀크 앨린턴, 배니 굿맨, 글렌 밀러 등이 있다. 이 ‘Sing, Sing, Sing’은 바로 베니 굿맨의 전성기 시절 대표곡이다. 이 곡은 할리우드 영화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문의 : 031-416-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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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관람료를 내고 현대무용을 감상하기란 내게 쉽지 않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를 일부러 시간 내어 투자해야 하니 실익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통춤이라면 좋아하는 장르니까 비용이 들더라도 부담이란 생각이 들지 않지만 현대무용은 쉬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취재 겸해서 경남발레단이 기획공연으로 올린 '별이 총총한 밤에 발레 즐기기'란 작품을 구경하러 갔다. 발레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지난 주 이원국 발레단장의 강연도 들은 적이 있어서 그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또한 발레에 대한 아주 얕은 지식을 머리에 담았다. 그런데 발레가 아닌 현대무용이라니.


어쨌든 공연을 보고 나서 많은 것을 느꼈다. 아니 보면서 느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민속춤, 그리고 한국의 민속놀이를 결부한 춤사위, 그리고 한국인이 안무하고 춤을 춘 작품, 아프리카 안무가가 연출한 춤. 각각의 춤이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난해하다 느낌이 왔다. 그저 이해하려는 자세를 포기하고 춤에 음악에 나를 맡겨버렸다. 그랬더니 현대무용이 난해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글은 경남이야기에 올린 공연리뷰다.


[공연리뷰]자아 꽃 피어난 춤이 보여준 오색(五色)

경남발레단 기획공연 ‘별총발’…중국·한국·부르키나파소 3개국 춤 선봬


오색찬란. 다섯 가지 색이 어우러지니 말 그대로 찬란하지 않겠는가. 13일 밤. 별이 총총한 밤에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각기 색깔을 달리하는 다섯 개의 무용이 무대에 올랐다. 객석엔 금요일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했고 일반 관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2016년 경남발레단의 기획공연으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창원문화재단에서 주최했다. 지역예술인단체 지원사업으로 이뤄진 공연이다. 어쨌건, 제목 ‘별이 총총한 밤에 발레 즐기기’란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별총발’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이계환 경남발레단 예술감독.


팸플릿을 보니 국내 무용수들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 작품이 세 개로 가장 많다. 한국 작품 한 개,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는 나라 브르키나파소 작품 한 개. 이때까지만 해도 발레라는 선입견이 의심 없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대 조명이 들어오고 이계환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작품이 발레는 아니란다. 오늘 공연되는 무용은 학생들이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아주 생소한 작품일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작품을 감상해달라고 했다.


다시 팸플릿을 들여다봤다. 그제야 출연진들의 의상이 발레완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진들임을 알아챘다. 오히려 잘 됐다. 발레라는 선입견을 내던지고 눈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장시함
.


1. 월광(月光)


맨 먼저 무대에 오른 ‘월광’이라는 작품은 중국 양리핑이 안무를 맡은 것으로 장시함이 춤을 췄다. 무용수 머리 위에서 떨어진 스포트라이트. 주변은 캄캄하다. 이 달빛은 오직 무용수에게만 빛이 닿아 있고 무용수는 춤을 추면서도 이 달빛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때론 해초 같기도 하고 꽃이 피는 모습을 타임랩스를 통해 보는듯한 느낌도 든다. 춤은 이색적이다. 팸플릿엔 중국 따이족의 민속춤이라고 되어 있다. “월광 아래 비친 각선미를 뽐내는 몸짓과 자유롭게 펼쳐지는 상상력, 자신의 감성과 월광의 성결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방령.


2. ()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작품은 중국 산이 80%, 물이 10%, 농경지가 10%인 곳에 사는 장족의 민속무를 창작무로 개발한 무용이다. 안무를 맡은 방령이 직접 춤을 췄다. 이 춤은 가벼운 듯 무겁고 무거운 듯 빠른 발 움직임이 특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앞 작품 ‘월광’과는 움직임에서 상당히 비교가 되는 작품이다. 장족의 민속노래에 맞춰 넓은 무대 공간을 좌우로 폭넓게 동선을 그으며 춤을 추었다. 때론 애잔한 듯, 때론 기쁨이 넘치는 몸동작이 관객의 시선을 좌우로 지겹지 않게 끌고 다녔다.


박리영.


3. ()


연변대학예술학원 무용원 출신 박리영의 작품이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가 직접 안무한 작품이다. 중국 출신이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의상도 한복에, 음악도 한국 전통 민속놀이에서 따왔다.


춤도 민속놀이를 연상케 하는 동작이 많이 들어갔다. 팸플릿에는 순()과 역() 사이에 미묘하게 공종하는 흐름을 몸으로 표현했다고 적혀 있다. 아주 익숙한 것임에도 낯선 느낌이 밴 무용이다.


이정민.


4. 파랑새


익숙한 현대무용을 보는 듯한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추상적 스토리 위에서 전개되는 춤이었다면 ‘파랑새’는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띤다. 몸동작 하나하나에 대사가 들어 있는 듯하다.


팸플릿을 먼저 보면 춤을 더욱 이해하기 쉽다. “밝은 빛이 반사되며 빛의 정령이 말했다. 슬퍼하지 말거라. 너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어서 기쁘지 않니? 하루치 행복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니? 그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봐. 그 늙은 검은 새는 힘차게 노래하며 조그만 노란 눈은 기쁨으로 반짝였다. 얘들아, 파랑새를 찾는 동안 너희가 발견하는 잿빛 새들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거라.” 춤은 이 이야기 구조 위에서 표현된다.


엠마누엘 사누와 박용일, 악기엔 아미두 발라니.


5. 데게베(Ddgesbe)


역시 현대무용이란 느낌이 다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는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 출신인 엠마누엘 사누의 안무작이다. 엠메누엘과 한국인 박용일이 출연했다. 두 사람의 몸동작을 보면 대충 무엇을 말하려는지 느낌이 온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것까지 알아차릴 수는 없다.


두 사람이 드럼처럼 생긴 악기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데 때론 같은 움직임을, 때론 대결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팸플릿을 보니 작품의도를 더욱 선명히 알게 됐다. 작품 속에는 저항정신이 깃들어 있다.


“인간 대 인간의 착취, 이기적인 자본주의와 같은 인류의 퇴보. 총과 같은 무기 없이 오직 가치로운 문화만으로 무장하여 우리들은 이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습니다.…피부색으로 나뉜 인간의 우월과 열등, 우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외었다.”


이 작품은 엠마누엘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들, 특히 한국에서 겪었던 일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 제목 ‘데게베’는 엠마누엘의 민족어인 보보어로 ‘무엇을 찾고 있는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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