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웜홀-역대 총리 낙마 때 언론은 무슨 말 했나
미디어 웜홀-역대 총리 낙마 때 언론은 무슨 말 했나
지난 8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40대의 젊은 김태호 씨를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인 총리로 발탁했다. 40대로서는 1971년 군사정권 때 김종필 씨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젊은 총리 후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나 청문회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29일 깨끗할 것만 같았던 젊은 총리는 각종 의혹 추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고 말았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세 번째 낙마 사례로 남게 됐다. 앞의 두 사람은 2002년 7월과 8월 김대중 정부에 의해 발탁됐던 장상 씨와 장대환 씨다. 두 후보는 모두 김태호 후보와는 달리 국회 임명동의안에서 부결되어 물러났다. 이들이 청문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때 언론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2002년 7월 말,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서리로서 직무를 수행하던 최초의 여성국무총리 후보 장상 씨는 결국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다음날 신문들은 일제히 장상 씨의 도덕적 문제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질타했다.
<중앙일보>는 ‘장상서리의 좌절과 학습효과’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청문회의 핵심 쟁점이었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아들의 국적문제와 의료보험 혜택 논란 등을 장 총리서리 스스로 흔쾌히 정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원인을 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돈과 경력, 주변관리에 허점이 있는 인사는 공직 진출을 스스로 포기하는 풍토를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됐다”며 인사청문회의 성과를 논했다.
<동아일보>는 ‘검증도 않고 총리 지명하더니’란 제목의 사설을 냈다. “부결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면서 “사태가 발생한 근본책임은 임명권자인 김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함께 동아일보는 국무총리‘서리’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총리서리 논란 매듭지어야’(7월17일), ‘김대중 대통령 왜 서리 고집하나’(8월 3일), ‘다시 총리서리, 철저히 검증하라’(8월 9일)란 제목으로 반복해서 사설을 실었다.
<한겨레>의 경우 좀 유화적 표현을 썼다. 제목부터 장상이 문제니 대통령이 문제니 하는 것이 아니라 ‘맑은 사회로 가는 큰 전기로 삼자’고 달았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앙>이나 <동아>와 대동소이한 논조를 보이면서도 표현방법이 상당히 부드럽다.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 탄생이 무산돼 버린 것도 아쉬운 대목이고”라는 표현이나 임명권자를 몰아세우기 보다는 ‘결정적 하자’가 없으면 지지하자던 민주당 지도부에 쓴소리를 냈던 부분역시 보수신문과는 차이가 난다.
<경향신문>역시 사상 첫 여성총리의 부결에는 아쉬워하면서도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장씨의 과거 행적도 그렇지만 특히 진솔하지 못한 해명은 국민들에게 깊은 도덕적 불신감을 심어주었다”며 이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조를 보였다.
장상 씨의 총리 낙마 후 청와대는 한 달 만에 다시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재를 드러내며 난타를 당해야 했다. <조선일보>는 바로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의 동의안 부결을 두고 “청와대가 보여온 오기와 정략적인 수싸움에 입각한 ‘깜짝쇼’의 유혹을 버리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금까지 청문회에서 채택됐던 검증의 잣대가 일반적으로 적용될 때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얼마나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점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겨레>는 벌써부터 장대환 씨의 도덕성과 능력에 문제를 삼아 반대해왔다. 28일 ‘장태환 씨 총리 인준 반대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청와대는 인준이 부결될 경우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따위의 소리를 했다.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며 통렬히 비판했다. <동아> 역시 사설에서 장상 씨 때와 마찬가지로 “도덕성과 자질 모두 합당한 경우에만 인준에 찬성해야 한다”며 인준을 반대했다. 장상 후보 때보다 청와대는 더 많은 신문들의 비판을 받아내야만 했다.
김태호 씨에 대한 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경향>은 ‘김태호 후보자는 총리감이 아니다’며 반대목소리를 확실히 냈다. 총리감으로는 자기분야의 탁월한 업적과 모범시민이라 할 만한 도덕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역시 김태호 후보의 자질 없음에 쐐기를 박고 인준을 반대했다.
그러나 <중앙>은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후보자들이 10여 차례씩 죄송이란 말을 연발하는데 불쾌해 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에 “국가기강을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하반기 새 출발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역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총리 후보들의 낙마와 관련한 언론의 논조를 보았을 때 자질과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검증결과가 나오면 가차 없이 비판하는 태도는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호불호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비판의 수위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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