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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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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설을 찾아 움직였다. 기사가 나갈 당시 페북에도 사연을 올렸지만 '전설텔링'이라는 이름으로 모아놓는 내 블로그에 올리지 않아 뒤늦게 챙겨본다. 사실 전설을 찾아 현장에 가보고 그 이야기를 지역의 형세와 주변의 경관, 또 전설이 남긴 흔적을 찾아 탐험하는 일은 재미있다. 꼭 인디애나 존스나 된 것처럼 현장을 찾아 헤매는 여정 자체가 스토리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의 소재가 된 시락암굴을 찾아나섰을 때였다. 이 암굴은 시락마을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고 절벽 아래의 바위암굴이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쩌면 전설이 이 암굴과 전혀 상관 없이 가상으로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여튼 기록에 따라 찾아간 곳이고 그곳에 굴이라고 할 만한 곳이 그것이었기에 찾아가 본 것이었다. 밧줄 타고 오르기도 하고 가시덤불을 헤쳐나가기도 하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대단한 의욕이었다 싶다. 반면 한우산 응봉낭자 전설은 산꼭대기에까지 차가 올라가니 모험이니 탐험이니 하는 기분은 없고 어쩌면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대신 그때처럼 그 전설을 새롭게 꾸며 풀어내지 못한 게 아쉽다. 언제 다뤄볼 시간이 될는지 모르겠다.

 

전설의 현장 - 의령 한우산 숨길과 설화원

철쭉 도깨비숲 속 신비한 황금망개떡 찾아서

 

전설의 현장으로 의령 한우산을 꼭 집은 것은 얼마 전에 보도했던 '지역민이 낸 책' 우리아 작가의 <의령 옛이야기>을 읽으면서였다. 그 중에서도 한우산 설화원 이야기는 한우도령과 응봉낭자 그리고 쇠목이 도깨비라는 등장인물이 모두 지명과 관련이 있고 한여름에도 이 지역 비가 차가운 현상, 한우산에 철쭉이 지천으로 피는 풍경 그리고 의령 망개떡 명성 등의 짜임이 절묘했다.

 

설화원 이야기를 압축하자면 이렇다. 옛날 한우산에 한우도령과 응봉낭자가 살았다. 응봉은 망개떡을 좋아했다. 둘은 망개떡을 나누어 먹으며 사랑을 나눴다. 한우산 땅속 황금동굴에 심술궂은 쇠목이 도깨비가 살았는데 응봉을 보자 눈은 사랑표로 변했다. 쇠목이는 응봉의 관심을 얻으려고 황금망개떡을 만들어 주며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거절당하자 분에 못 이겨 한우를 죽였다. 죽은 한우를 보고 응봉도 슬픔에 빠져 죽었다. 응봉이 죽자 그 자리에 철쭉이 피었다. 쇠목이는 철쭉이라도 갖고자 하여 꽃잎을 따서 먹었는데 독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이를 지켜보던 홍의송 정령들이 한우와 응봉의 사랑을 안타까이 여겨 한우를 구름이 되게 하고 비를 내려 철쭉이 잘 자라도록 했다. 쇠목이에게는 기억을 모두 지우고 황금망개떡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소원을 들어주는 착한 도깨비가 되도록 했다. 하지만 때로는 철쭉과 비를 시샘해 강한 바람이 되어 둘을 갈라놓기도 했다. 강한 바람, 그래서 한우산 능선에 풍력발전기가 많은 건가.

 

한우산주차장으로 가는 길, 쇠목재를 넘으면 바로 오른 편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된다. 쇠목재는 의령 한우산 아래 갑을마을에서 대의면 모의골(신전리, 행정리 등 마을이 있는 골짜기)로 넘어가는 고개다. '쇠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산의 형세로 보아 이곳이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우산 전설 응봉낭자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 이름이 쇠목이인데, 대장 도깨비 이름을 이 지명에서 따왔다.

 

한우산생태체험관 쪽에서 등산로로 들어가면 이곳이 바로 산비탈 둘레길(숨길)이다. 조금 들어가면 한우산 정상으로 바로 향하는 길과 숨길로 나뉜다. 숨길은 비탈에 조성한 길이어서 간혹 길을 내기 어려운 곳은 나무 다리로 길을 이었다. 남쪽 숨길은 중천에서 햇볕이 바로 내리쬐는 곳이라 성급한 풀은 초록의 새순을 내밀 듯도 한데 아직 때 이름을 감지했는지 주춤하고 겨우내 쌓였던 낙엽만 바스락거린다. 이 갈림길에서 마냥 걷고 싶으면 숨길을 따라 계속 가고 산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을 타면 된다. 또 걷기보다 풍경이 우선이라면 한우산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정상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한우산 주차장에서 정상으로 향한다. 먼저 만나는 장면이 한우산 철쭉제단이다. 너럭바위를 제단으로 조성해 고풍스럽고 묵직한 느낌이 있다. 오른쪽으로 한우산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있다. 철쭉 가지 끝에서부터 봄이 오고 있다. 나무의 위쪽에만 자주색에 가까운 갈색 잎이 돋았지만 곧 철쭉은 푸른 잎으로 온몸을 치장할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되돌아보면, 매봉산과 선암산으로 이어지는 두 산맥 능선에 풍력발전기 24기가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다. 저렇게 돌아가고서야 에너지를 얼마나 생산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우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서넛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도 충분할 만큼 넓게 조성돼 있다. 완만한 능선길이어서 이곳이 해발 800미터가 넘는 산꼭대기가 맞나 싶기도 하다.

 

한우산 정상에는 전망을 도와줄 조망안내도 3개가 설치되어 있다. 멀리 있는 산들의 이름이 매겨져 있어 지리 판단에 상당히 도움 된다. 제법 알려진 산들이 빙 둘러 있다. 서쪽 방향 지리산 천왕봉부터 시작해 웅석봉, 둔철산, 장수산, 황매산 허굴산, 동쪽으로는 국사봉, 미타산, 비슬산, 황왕산, 영취산, 그리고 가까운 신덕산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오도산, 가야산, 미숭산, 대암산, 그리고 동쪽 방향으로 보이던 국사봉을 다시 만난다.

 

머리 위로 제법 덩치가 큰 까마귀가 저공, 고공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행하고 있다. 무릇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이라 그럴까, '깍깍깍' 짝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제법 소란하다. 풍력발전기 너머로 궁류면 제법 큰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반투명 종이 같은 뿌연 안개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한우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억새원이 있다. 하지만 억새는 없다. 억새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으악새 슬피 우~"" 하고 부르는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에 등장하는 이 으악새는 어떤 새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어쨌든 억새원에서 억새를 볼 수 없어 아쉽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설화원으로 가는 길. 길옆에 나란히 도열한 진달래가 살짝 꽃눈을 틔웠다. 한 달 혹은 두 달만 있으면 진달래가 활짝 피겠다. 철쭉 도깨비 숲, 이곳을 다른 말로 설화원이라고 한다. 도깨비 대장 쇠목이와 한우도령, 응봉낭자 이야기, 설화를 바탕으로 조성한 곳이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설화원 계단을 내려가면서 비극으로 치달은 도깨비 쇠목이의 짝사랑을 되새겼다. 유사한 사건들이 종종 언론에 오르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싶다.

 

설화원에서 숨길 따라 걸으면 생태주차장에 닿는다. 생태주차장에서 호랑이 전망대로 향하는 숨길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소 캐릭터가 소개하는 한우산 철쭉 군락 안내판을 만난다. 순간, 한우산이 우리나라 소를 말하는 그 한우인가 착각이 인다. 소의 처지로 감정이입해 안내글을 읽어보면, 한우산에 철쭉이 지천으로 널린 까닭은 다 우리소 덕분이다. , 소가 철쭉을 안 먹었거든. 소에게 철쭉은 소 닭 보듯인데 사람들은 이걸 왜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소가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연상돼 재미있다.

 

제법 걸어서 호랑이 전망대에 다다랐다. 안내문을 읽어보면, 이곳에 제법 호랑이가 살았나 보다. 호랑이를 산신이니 산군이니 하고 불렀던 것은 우리네 토템과 맞닿아 있다. 그런 호랑이를 우리 조상은 어리석고 멍청한 동물로 치부해버렸으니 그 해학 또한 범과 막상막하다. 범 내려온다. 한우산 호랑이가 절벽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전망대에서 거리는 불과 10m 쯤 떨어졌을까. 저 덩치에 마음먹고 폴짝 뛰어서 넘어온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 싶으니 은근 심장이 파르르 떨린다. 백두산 호랑이라 그런지 생김이 예사롭지 않다. 표정이 딱 노려보며 여차하면 잡아먹을 테다, 크르르르 소리를 내는 듯하다.

 

호랑이 전망대에서 다시 생태주차장 쪽으로 돌아 나오다 한우산 정상으로 난 등산로를 탄다. 억새원 아래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주차장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났다. 정상은 이미 둘러봤으니 주차장으로 향했다. 북쪽 비탈이어서 그늘졌다. 그래서인지 축축한 땅이 심심찮게 나온다. 돌아볼 만큼 돌아보고 나니 촐촐하다.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 들러 의령소바도 한 그릇하고 망개떡도 한 상자 사면 여행이 완성된 듯한 기분도 들겠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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